홍범도·정율성,박정희·백선엽에게 들이대는 잣대 같아야 한다

함운경 네모선장 대표·前 서울대 삼민투 위원장 2023. 9. 15.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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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운경의 생업전선]

● 기준 세워야 의사소통 가능
● 北 인권, 상황에 따라 해석 달라져서야…
● 한쪽에만 유리한 건 기준 될 수 없어

[Gettyimage]
직접 시장에 가서 갈치를 매입할 땐 보고 사니 별문제가 없다. 하지만 나같이 전북 군산에 있는 소매업자가 전남 목포에 있는 중매인에게 갈치를 사달라고 한다면 어려운 점이 많다. 내가 원하는 갈치를 어떻게 표현할까. 갈치를 사고파는 데 흔히 쓰는 말이 '2지·3지·4지'다. 갈치 폭이 손가락 2개 너비면 2지 갈치고, 손가락 3개면 3지 갈치란 뜻인데, 각자 손가락 굵기가 달라 혼선이 있다. 이를 3㎝, 5㎝ 식으로 단위를 통일하면 의사소통하기 참 좋지만 아직까지 방법이 없다. 오랜 거래 관행이라고 이해하면서 사고팔고 한다.

조기도 비슷하다. 7석조기·8석조기·9석조기란 말이 있다. 보통 생선 상자 1상자에 7마리를 깔아 1줄이 되면 7석조기, 8마리를 깔면 8석조기, 9마리를 깔면 9석조기라고 한다. 이것은 무게로 분류하는 장치가 없을 때 쓰던 말이지만 장치가 있는 요즘도 종종 쓰는 단위다. 오히려 고령층은 7석·8석·9석이라는 말을 익숙해한다.

통일된 기준이 없으니 인터넷 판매 시엔 라이터나 볼펜 등 크기나 두께를 알 수 있는 물건을 생선 옆에 놓고 사진을 찍어서 올린다. 그래야만 크기나 두께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진을 어떤 각도에서 찍느냐에 따라 달라 보이곤 한다. 실제로 받은 생선이 생각하던 크기가 아니어서 다툼이 일어나기도 한다. 누구나 인정하는 기준이 없다는 것이 생선을 사고파는 데 어려운 점이다. 오랜 관행에서 벗어나 '기준'을 세워야 거래가 편리해진다. 의사소통이 쉬워지고 쓸데없이 싸우지 않게 된다.

北 인권에 다른 기준 왜 필요한가

나처럼 수산물을 다루는 사람은 매일 무게 재는 일을 한다. 저울 때문에 싸움도 나고 욕도 먹는다. 저울 눈금을 속이는 일이 많았던 모양이다. 물론 수산물은 물을 머금고 있어서 물 빠지기를 오래 기다리면 파는 사람이 손해다. 그래서 중매인에게 물건을 사거나 어부들에게서 물건을 바로 받을 때 덤으로 더 받는다. 인터넷 판매에선 제대로 무게를 재서 보냈지만 수분 함량 때문에 도착 시엔 무게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10% 내외 무게 변동은 감안해야 한다고 안내해도 양을 속인 것으로 오해받고 항의 전화를 받기도 한다. 공산품처럼 똑같은 물건이 찍어 나오는 게 아닌 이상 불가피한 일이다. 수산물 유통은 이렇듯 지뢰밭이 널려 있다.

수산물 유통만 봐도 이럴진대 이 세상에 통일된 기준·단위가 없다면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고 더 나아가 문명사회가 성립될 수 없다. 거래가 끊임없이 이뤄지는 현대사회에서 단위가 제각각이라면 서로 설명만 하다가 날을 샐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물건을 재는 단위, 즉 도량형 통일은 엄청난 진보인 셈이다.

한국에서 정확한 단위를 설정해 주는 곳이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다. 여기서 인정해 준 길이·무게·시간으로 줄자와 저울, 시계를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설계 도면대로 건물도 짓고, 물건도 만들고, 상품도 생산해서 돈을 벌며 생활할 수 있다. 만일 단위가 서로 다르면 세상의 질서는 없고 아수라장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살면서 사건 혹은 현상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느끼는 것은 서로 다른 저울, 시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내가 경험한 대표 사례가 북한인권 문제다. 2002년 한 북한 인권 관련 토론회에 발제자로 나서기로 했다. 당시 열린우리당 당원교육연수센터 소장으로서 북한 인권에 대해 의견을 발표할 참이었다. '북한 인권을 언급해 북한을 자극하지 않는다'는 것이 암묵적인 분위기인 정당에서 여러 사람이 토론회에 나가는 것을 만류했다. 내가 발표하려고 한 내용은 인권에 대한 기준 문제였다. 북한 인권에 함구하자는 사람은 각각 나라가 처한 상황에 따라 인권은 달리 정할 수 있다고 여긴다. 미국의 위협 앞에 항상 노출돼 있는 북한으로서는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인권 기준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인간의 권리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인류가 도달한 현대문명이 정한 바에 있다고 본다. 바로 1948년 유엔에서 채택한 '세계인권선언'이다. 세계인권선언엔 △생명 신체의 자유 △법 앞에 평등할 권리 △주거 이전의 자유 △표현의 자유 △통신 비밀권 △재산을 가질 권리 등 인간이 보편적으로 누려야 할 권리가 나열돼 있다. 이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국가는 국제사회로부터 지적을 받고 개선할 때까지 국제사회의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2005년부터 유엔총회는 해마다 북한 인권결의안을 채택해 오고 있다. 북한은 고문, 공개처형, 정치범 수용, 성매매, 영아 살해, 외국인 납치 등 수많은 문제로 지적받고 있다. 세계 보편적 기준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수준이다. 대체 무슨 다른 기준이 필요한가. 북한 인권을 다른 기준에서 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8월 28일 군 당국이 육군사관학교뿐 아니라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 흉상에 대해서도 ‘필요시 이전’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8월 2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 흉상 모습. [뉴스1]

적어도 의사소통할 땐 같은 잣대로…

최근 역사 문제 관련 갈등을 보면 서로 가진 저울, 즉 잣대가 다름을 절실하게 느낀다. 나는 '국가'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상대는 '민족'을 말한다. 국비(國費)를 쓸 수 있는지의 문제로 보고 싶은데, 반일·항일 등 민족의식을 중심에 놓자고 한다. 정율성 기념공원을 만든다든지, 홍범도 동상을 육군사관학교 교정에 세운다는 등 문제의 본질은 여기에 있다. 서로 잣대가 다른 것이다.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안에서 살고 있다. 민족 안에 살고 있는 게 아니다. 관념상으론 민족 안에 살 수 있지만 실생활에선 민족에 세금을 내지 않고 국가에 세금을 낸다. 민족은 군대가 없지만 국가는 군대가 있다. 우리는 실생활을 살면서 납부한 세금에 대해, 군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국가의 이름으로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따져야 하는데, 반일·항일이라는 민족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한국은 공산주의자들과 싸워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냄으로써 성립한 국가다. 육군사관학교는 공산주의자들과의 싸움에서 국민을 지키는 군대를 이끌 장교를 육성하는 국가기관이다. 일본으로부터 독립운동을 추진하는 군대를 만드는 곳이 아니다. 홍범도가 독립투사였음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충직한 공산당원이었음도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에게 어떤 기준이 필요한지 분명하지 않은가.

홍범도 동상을 육사 교정에 둬야 한다는 이종찬 광복회장은 홍범도가 '편의상' 소련 공산당에 가입하고 독립군이 '유리하도록 하려고' 자유시참변 재판위원으로 활동했다고 말한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이념의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은 두 가지 색깔, 적과 나로만 보입니다. 그(정율성)의 삶은 시대적 아픔입니다"라고 했다. 나는 스스로의 잣대와 기준은 일관돼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이종찬 회장이나 강기정 시장은 백선엽이나 박정희에게는 다른 기준을 들이댄다. 백선엽이나 박정희도 '편의상' '유리하도록 하려고' 또는 '시대적 아픔'이 왜 없었겠나. 그들의 기준은 자기 쪽에 유리할 때만 쓰는 잣대인 셈이다.

생선 장사를 할 때 저울 눈금을 속이면 안 되듯 사건을 보고 판단할 때도 마찬가지다. 기준이 항상 같아야 사회가 유지된다. 생각을 모두 통일하자는 게 아니다. 똑같은 저울과 시계를 가지고도 판단은 다를 수 있고, 다른 생산물이 나올 수도 있다. 그렇지만 적어도 서로 의사소통을 할 때엔 같은 기준을 갖고 임해야 한다. 수산물 유통이나 다른 모든 세상일이나 기초 원리는 같은 셈이다.


함운경
● 1964년 출생
● 서울대 물리학과 졸업
● 前 서울대 삼민투 위원장
● 前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조직부장
● 現 네모선장 대표

함운경 네모선장 대표·前 서울대 삼민투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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