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살장 끌려가던 개들 눈빛에…밤잠을 설쳤다"

남형도 기자 2023. 9. 15. 08:2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불법 개농장 100곳 넘게 다니며 고발하는 동물유튜버 '스나이퍼 안똘' 박성수씨(44)…음지의 개·고양이 얘기 모아 '들리지 않은 짖음' 펴내, "비좁은 곳에서 앉았다 일어서는 것만 하던 개농장 개들, 사형수도 그렇게 안 살아"
박성수씨가 마주한 개농장의 모습들. 음식물 쓰레기, 옴짝달싹할 수 없는 비좁은 공간, 뚫려 있는 바닥. 우리나라 반려인 1300만명. 그러나 여전히 이런 현실을 모르는 이들이 많다./사진=동물보호활동가 박성수씨

"아니, 사장님! 개들을 이런 데 두시면 어떡해요. 마실 물은? 물은 어딨어요. 아우, 냄새. 여기 음식물 쓰레기 다 썩었잖아요. 이걸 애들 먹으라고 준 거예요?"

작열하던 건 한여름 땡볕이었고, 개들이 발 딛은 달궈진 뜬장이었고, 소리치던 한 남자였다. 대변하던 건 불법 개농장 개들이었다. 힘들어보이던 생명이었다. 뚫린 바닥에 서 있느라 발바닥이 다 벌어지고, 그 아래엔 배변과 악취가 가득하고, 앞엔 음식물 쓰레기가 놓여 있는.

아무렇게나 구겨져 살다 땅을 밟는 찰나의 기쁨과 함께 도살장에 끌려가는 삶. 그럼에도 할 수 있는 건, 꼬릴 흔들거나 구석에 몸을 웅크리거나 하는 것뿐인 개농장 개들의 삶.

개식용을 종식하자고 사람들에게 외치던 이들. 함께 목소리를 높이던 박성수씨(왼쪽)./사진=동물보호활동가 박성수씨

그들을 대신해, 이게 사는 거냐고 개들 주인에게 소리치던 남성이 있었다. 동물보호활동가'스나이퍼 안똘'박성수씨(44)였다. 여기 불법이라고, 이 열악한 것 좀 보라며 담당 공무원이며 경찰까지 다 불렀다. 그리 없애기 위해 노력하는 거였다.

본업은 음식점을 하는 자영업자인 사람. 불현듯 개농장 철폐에 열내며 3년간 100곳 넘게 전국을 누빈 사람. 그 정체가 뭔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끌려가는 개들의 '눈빛' 본 날, 잠을 못 잤다
새끼를 낳게 하고 여기서 또 고기가 되기 위해 길러진다. 대부분 음식물 쓰레기를 먹고 8~9개월간 자란다. 그리고 도살된다. 끝없는 반복이다./사진=동물보호활동가 박성수씨
3년 전이었다. 성수씨가 아무것도 잘 몰랐던 때였다. 동물을 좋아했고, 반려견도 키우고 있었다. 우연히 유튜브 영상을 봤다. 개식용 문제에 대한 거였다. 아직도 개를 이렇게 많이 먹다니, 그 사실에 놀란 날이었다.

궁금했다. 한겨울 추운 날씨에 25명이 서울 양천구 목동에 모였다. 식약처 앞이었다. 성수씨도 거기에 있었다. 개식용을 끝내자고 목소릴 높였다. 몇 달씩이나 집회에 참여했으나 바뀌지 않았다. '과연 이걸로 바뀔까.' 회의감이 들었다.

처음 갔던 곳은 개를 사고 파는 경기도의 한 '경매장'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온 개장수들. 또 죽음을 앞둔 온갖 개들이 넘쳐났다. 그 때였다. 어떤 장면이, 성수씨 마음에 깊이 박힌 건.

"조그만 케이지에 개를 서너 마리씩 꾸겨서 넣는 거예요. 트럭에 싣더라고요. 도살장 거쳐서 보신탕집으로 가는 거지요. 그때 개들과 눈이 마주쳤어요. 삶을 포기한듯 살려달라는듯, 애달팠지요. 아무 것도 못했어요. 너무 맘이 아팠습니다. 미안한 마음에, 며칠 밤은 잠도 못 잤어요."

서너 달에 걸쳐 집회를 이어갔다. 개 경매장 철폐를 요구했다. 관할 지자체 부시장에게 답이 왔다. "철거시키도록 최선은 다하겠다." 그로부터 8~9개월 후 개 경매장은 철거됐다. 후폭풍은 셌다. 경매장 관계자들로부터 고소만 5건을 당했다. 명예훼손, 영업방해, 모욕, 허위사실 유포 등 혐의였다. 무혐의도 있었으나 벌금이 나온 것도 있었다.

물 뿌리고, 전기봉으로 지지고…그래도 살아 있으면 '망치'로 때려
개들을 싣고 가던 트럭을 잡았다. 그 안에 실려 있던 개들의 모습./사진=동물보호활동가 박성수씨
죽이기 위해 기르는 개농장으로 자연스레 닿았다. 처참한 곳이 많았다. 어떤 개농장은 많은 개들이, 눈이 빨갛게 된 채 멀어 있었다. 철제 뜬장은 매우 비좁았다.

"몸을 아예, 좌우로도 움직일 수 없게 해놨어요. 무게가 많이 나가는 개들 있잖아요. 꺼낼 때 힘이 세니까, 수고를 덜기 위해 그렇게 해놓은 거예요. 앉았다 일어섰다만 할 수 있는. 사형수도 그렇게 안 살잖아요."

개들에겐 주로 '짬밥(음식물 쓰레기)'을 먹인단다. 군부대 등에서 받아오는 거다. 파리, 모기 유충, 구더기가 득실거리고 썩은 내가 진동하기도 했다. 아예 물 한 번 못 먹는 개들도 많다. 짬밥을 아주 묽게 만들어, 밥그릇에 짜주는 거다. 건강 상태가 안 좋은 경우가 많다.

개들도 표정이 있다. 눈빛엔 많은 마음이 담겨 있다. 그걸 읽는 이들이 있고, 외면하는 이들도 있다./사진=동물보호활동가 박성수씨

거기에 항생제를 넣는다고. 성수씨는 "워낙 병균이 많은 데라 일찍 폐사할까봐, 죽이기 전까진 살려야하니 약을 타서 먹이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다보니, 구조한 뒤에 병원에 와서 죽는 경우도 많단다. 약 기운으로 겨우 버틴 삶이었던 거다.

살기 위해 구겨진 뜬장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먹으며 연명한다. 그렇게 8~9개월. 그 시간이 지나면 죽인다. 도살한다. 개들에게 물을 뿌린다. 감전이 잘 되도록. 이어 전기봉으로 지진다. 그래도 움직이면 망치로 머릴 때리거나, 칼로 목을 찌른단다. 털을 태우고 내장을 빼고. 빼낸 내장을 다시 개들에게 주기도 한단다.

죽을 때가 되어서만 나올 수 있는 곳, 불법 개농장./사진=동물보호활동가 박성수씨

그러니 개농장에서 돌아설 땐 항상 "미안하다"는 말을 중얼거리곤 했다. 집에 와서 반려견에게도 말했다. 자꾸 비워서 너희들에겐 미안하다고, 그렇지만 내가 가야한다고, 오늘 죽은 애들이 너무 많다고. 개농장을 없애기 위해 관련법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다. 알아야, 불법적인 부분을 신고해 합법적인 공권력으로 개농장을 철폐할 수 있어서다.

'들리지 않는 짖음'…성수씨가 '책'을 쓴 이유
박성수씨가 가장자리에 있는 개들을 알리기 위해 쓴 책, '들리지 않는 짖음.'/사진=남형도 기자
오랜 시간 노력해 폐쇄시킨 '개 경매장'. 얼마 후 성수씨는 제보를 받고 한 개농장을 찾았다. 그런데, 개 경매장에서 봤던 이들이 있었다. 다른 곳에 가서 또 개 경매장을 하고 있던 거였다.

끝이 없단 생각을 했다. 반려인구 1300만명.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음지' 얘기엔 관심이 별로 없다고 느꼈다. 책을 쓰기로 맘 먹은 이유였다. 성수씨가 말했다.

"개농장, 이런 음지에 관심 있는 분들이 1~2%나 될까요. 무관심한 거지요. 그러니 최소한 '궁금증'이라도 갖게 하자, 그런 취지였어요. 펫샵에서 사서, 내 아이만 예뻐하고, 우리나라는 아직 그런 분위기여서요. 도대체 어디서 왔고, 뭘 먹여 키우는지, 어떻게 죽이는지, 알게 하자는 거지요."

꺼낸 개들을 차에 싣는 박성수씨. 비로소 살기 위한 시간이 흐르는 거다./사진=동물보호활동가 박성수씨

최근에 책이 나왔다. 제목은 '들리지 않는 짖음(책과나무)'. 표지를 봤다. 문서인 작가 그림이었다. 반씩 나뉜 개의 얼굴. 거기엔 많은 의미가 있었다. 왼쪽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키운단 소형 반려견인, 하얀 몰티즈. 오른쪽은 개농장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도사견. 그림은 묻고 있다. 정말, 개농장 개는 따로 있는 거냐고. 다르냐고.

한쪽에선 키우고, 한쪽에선 죽이고 먹는 역설. 그걸 끝내기 위해선 관심이 필요하기에, 책엔 개농장 문제를 포함해 알아야 할 동물권 문제가 두루 담겼다. 이와 관련해 15명을 인터뷰한 글도 담았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 개그맨 박성광씨, 배우 이용녀씨, 김정난씨, 안정훈씨, 제주 행복이네보호소 고길자 소장, 가수 조현영씨, 유아라씨 등이 참여했다.

바라보려 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개들은 동네 산책 길에, 동물병원에, 아늑한 집에만 있는 게 아니다. 어떤 개들은 이런 곳에 있다. 꼬물이들은 그런 현실도 모른 채 어미 젖을 빨고 있다. 어미가 바라본다. 우리 이야기를 알고 있느냐고./사진=동물보호활동가 박성수씨

책을 덮을 무렵에 성수씨가 남긴 글이 이랬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 갇혀 신음하고 있다. 조금만 귀 기울이면 말 못하는 아이들의 짖음이 들릴 거다. 이를 대신해 들어주고 목소릴 내어주고 싶었다."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