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약을 위한 안경을 만들다 [사람IN]

나경희 기자 2023. 9. 15.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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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황한 간호사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들을 데리고 색약 보정 안경을 사러 간 유민기 대표는 깜짝 놀랐다.

"한 할아버지가 안경을 쓰고 있길래 여쭤봤더니, '어렸을 때 동생이 홍시를 따달라고 하면 눈으로는 감이 익었는지 알 수 없어서 나무에 기어 올라가 손으로 만져보고 홍시를 따다 줬는데 이렇게 전시를 보니 감회가 새롭다'고 하더라고요."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색약 안경 제조업체로서 유민기 대표의 바람은 소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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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이명익

당황한 간호사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가 숫자를 읽지 못했다. 색약이라는 결과를 듣고 집으로 돌아온 유민기 RMK 대표(50)는 혹시나 싶은 마음에 휴대전화로 색약 테스트를 찾아 둘째 아이에게 화면을 보여줬다. 둘째도 숫자를 읽지 못했다. “아이들이 어리지만 당장 생각나는 게 진로더라고요.” 색약자(의학 용어는 ‘색각 이상자’이지만, 보통 ‘색약자’라고 부름)가 가질 수 없는 직업을 검색했다. 운전·조종과 관련된 직업과 경찰·소방직은 제한이 있었다. 과거에 비해서는 규제가 많이 풀렸지만 단서 조항으로 ‘교정할 경우 가능하다’는 문구가 달려 있는 곳도 있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색약 보정 안경을 사러 간 유민기 대표는 깜짝 놀랐다. 해외에서 수입해온 제품 하나가 전부였고, 가격도 개당 60만원이 넘었다. 당시 반도체 연구소에 다니던 그는 자신이 직접 안경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반도체 위에 물질을 쌓는 것과 렌즈 위에 필터를 쌓는 과정이 비슷하기도 하거든요.” 국내 색약자 수는 약 165만명, 통계적으로 남성은 12명 중 1명, 여성은 200명 중 1명이다. 유민기 대표는 어느 정도 수요도 있을 거라고 예측했다.

그는 다니던 연구소를 그만두고 2018년 색약 보정 안경을 만드는 회사를 창업했다. 전직 연구원답게 회사 이름은 ‘연구하고 만들어서 지식을 전한다(Research Making Knowledge)’는 의미를 담아 RMK로 정하고, 만드는 안경 이름을 ‘돌튼’으로 지었다. 처음으로 원자설을 주장한 물리학자 존 돌턴 역시 색약자로, 색약에 대해 최초로 연구한 인물이다.

2021년 11월 RMK가 클라우드 펀딩 사이트를 통해 처음으로 선보인 제품은 적록색약 보정 안경이다. 적록색약은 눈에서 빨간빛을 감지하는 센서와 초록빛을 감지하는 센서가 서로 혼선을 일으켜 두 색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증상이다. 붉은색을 잘 감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고기를 못 굽기도 하고, 문서에서 붉게 쓰인 글자를 구분하지 못하기도 한다. 유민기 대표는 초록빛 센서의 민감도를 낮춰 두 센서의 영역이 서로 겹치지 않도록 했다. 아동용 안경도 개발하고, 가격도 해외 상품의 절반으로 줄였다. 유통·마케팅에 들어가는 비용을 걷어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대신 유 대표가 두 달 동안 직접 차를 타고 3만㎞를 뛰며 전국 방방곡곡 안경을 배달했다.

지난 상반기 RMK는 호암미술관의 제안으로 조도가 어두운 전시장에서 쓸 수 있는 색약 보정 안경을 개발했다. 평일에는 1~2명, 주말에는 2~3명이 대여해 전시를 관람한다. “한 할아버지가 안경을 쓰고 있길래 여쭤봤더니, ‘어렸을 때 동생이 홍시를 따달라고 하면 눈으로는 감이 익었는지 알 수 없어서 나무에 기어 올라가 손으로 만져보고 홍시를 따다 줬는데 이렇게 전시를 보니 감회가 새롭다’고 하더라고요.”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색약 안경 제조업체로서 유민기 대표의 바람은 소박하다. “색약자는 앞으로도 계속 있을 거예요. 오래가는 기업이 되고 싶습니다.”

나경희 기자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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