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틀린 그림 찾기'는 틀렸다

송길호 2023. 9. 15.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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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후 관점 디자이너
[박용후 관점 디자이너] “난 네 생각과 틀려!” “틀린 그림 찾기” 이런 말을 한번 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과연 맞는 말일까? 이미 어법으로도 틀렸다. 왜 우리는 일상의 대화에서 ‘다른 것’을 ‘틀렸다’고 표현하는가. 다른 것(different)을 틀렸다(wrong)고 말하는 순간 대화는 이상한 방향으로 흐른다. 이런 것들이 우리 생각의 바탕에 깔려 갈등의 원인을 만들고 사회를 멍들게 한다.

우리는 제시된 여러 개의 답 가운데 ‘하나의 정답을 골라내는 능력’으로 평가기준을 삼아 서열을 정하는 객관식 사회에서 살아왔다. 때문에 부모의 관심은 “몇 점 받았냐?” “몇 등 했느냐?”에 쏠릴 수밖에 없었다. 아이의 생각이 건강한지, 어떤 세상을 꿈꾸며 살아가는지보다 남보다 윗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생존의 방법이고 잘 사는 방법이라고 여기며 아이들에게 강요하며 살아왔다.

이러한 ‘무의식적 사회적 심리관성’은 함께 잘사는 삶보다는 남을 이기는 삶 중심으로 사회분위기를 만들어왔다. “사돈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배고픈 건 참아도 (남이 잘돼서) 배아픈 건 못 참는다”는 식의 잘못되고 비상식적인 정서가 마음의 밑바탕에 깔리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생각이 다르면 토론(debate)이 시작돼야 한다. 증거, 근거, 논거를 갖고 서로가 가진 생각의 차이를 좁혀가야 한다. 비난(blame)과 비판(criticism)은 엄연히 다르다. 상대방을 비난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보면 첫째, 내 생각과 다른 것을 마치 틀린 것처럼 여긴다는 점이다. 이미 머리 속에 정답을 정해놓고 상대방의 생각을 모두 오답처리한다. 호불호(好不好) 즉 좋고 나쁨의 문제를 사실(fact)과 대충 섞어 싫은 것을 틀렸다고 우기니 논리는 빈약하고 감정이 앞선다. 사실보다 상대방의 태도나 말투같은 것을 꼬투리잡아 상대방을 몰아붙인다. 둘째, 이야기의 주제를 벗어나 내 감정이 우선이고 내가 가진 것이 우선이다. 상대방을 배려할 마음은 전혀 없고 상대방을 이기는 데 온 힘을 쏟는다.

이런 모습을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국회다. 그 자리가 무슨 자리인지, 왜 그곳에서 그런 질문을 하는지는 온데간데 없고 그냥 상대방은 뭉개버려야 하는 마음 뿐이라는 것이 너무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아주까리 기름을 먹었느냐?” “깐족댄다” 같은 감정적인 언어들이 국회의원의 입에서 그것도 민의의 장에서 거침없이 쏟아진다. 상대방이 답변할 시간 따위는 전혀 관심 없다. 자신의 의견과 다른 말이 시작되면 바로 말을 막아서고 소리를 지른다. 분명 자신이 했던 말이 거짓으로 이미 밝혀졌음에도 사과할 마음따위는 전혀 없다. 심지어 당당하기까지 하다. 선출직, 즉 “국민이 뽑은 사람이니 우리가 가장 높은 사람”이란 논리로 모든 것들을 자신의 눈 아래에 둔다.

군주론의 저자 마키아벨리는 “겸손은 강한자의 특권”이라고 말했다. 이 말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 정치를 해야 하지 않을까. 어느 야당의원에게 물었다. 의원님은 오른쪽이세요, 왼쪽이세요? 그 의원은 이렇게 답했다. “저는 앞으로 입니다” 그 의원의 카톡 프로필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빚진 마음으로” 이 얼마나 감동적인가?

젊은이들이 ‘꼰대’라는 단어를 이렇게 정의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수신은 불가능하고 송신만 하는 인간” 어찌 이리 정확한가? 또한 꼰대의 태도에 대해 이런 말도 했다. “꼰대는 자기가 무엇을 모르는지 모른다.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이 말을 듣고 대화의 기본적인 태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이미 정답을 정해놓은 생각을 버리자. 설득할 마음 반, 설득당할 마음 반을 갖고 사람을 대하자고.

꼰대는 나이의 문제가 아니다. 한 젊은 청년이 이렇게 말했다. “100세가 넘으신 김형석 교수님을 저희가 꼰대라고 하나요? 꼰대는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생각의 태도문제입니다. 나이가 어려도 꼰대가 있습니다. 그런 친구들을 어꼰(어린 꼰대)이라고 하죠.” 이제 질문을 시작해야 한다. 대화를 할 때 상대방에게 설득당할 마음이 절반 정도는 준비됐는가를.

송길호 (khsong@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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