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보호하는 게 영아 지키는 길”… ‘비정한 모정’ 다시 본 그 판사 [심층기획-‘예고된 비극’ 영아유기]
“피고인을 징역 3년에 처한다. 다만, 이 판결 확정일부터 4년간 위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
Q. 해당 사건을 심리했을 때 가장 고민됐던 지점은.
A. 판결 이유에도 적혀 있는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 임신과 출산이 여성에게 행복의 충분한 원천이 되지는 못할망정 또 다른 고통이나 불행의 씨앗이 돼서는 안 된다. 하지만 현실에서 여성은 아이를 낳는 순간 쉽게 죄인이 된다. 아이들이 아파도 죄인, 말썽을 부리거나 공부를 못해도 죄인이 된다. 이건 뭔가 잘못된 것이지 않나.
과거와 같이 가부장적 사회에서는 여성이 아이를 낳는 사람, 대를 이어주는 사람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다. 헌법부터 여성과 남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보고 있다.
형법에선 ‘책임주의’를 이야기한다. 그게 뭘까, 고민했다. 이 단어를 ‘비난 가능성’이라고 바꿔 생각해보면, 우리가 죄를 지은 이 사람을 사회적으로, 도덕·윤리적으로 얼마만큼 비난할 수 있는가, 결과에 대해서도 비난하지만 동기에 대해서는 얼마만큼 비난할 수 있는가? 라는 문제로 구체화할 수 있었다.
즉, ‘우리가 이 사람에게 사회적, 윤리·도덕적으로 어떤 행위를 기대하고 요구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다. ‘아이를 낳았으니 무조건 잘 키워’라고 말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헌법 제36조 제2항은 “국가는 모성의 보호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한 사회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그거밖에 못 하냐?’라고 비난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사회에서 이 여성에게 아기를 잘 키울 환경을 베풀었어야 했다고 본 것이다. 잘못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잘못한 만큼의 책임을 지우는 것을 의미했다.
당시 보건복지부나 여성가족부에 사실 조회를 해보니, 소득 하위계층 있는 사람이 지자체로부터 산후도우미 서비스를 지원받기 위해선 70만원이라는 자기부담금을 내야 했다. 70만원조차 낼 수 없는 피고인과 같은 집안에 국가의 지원은 상대적으로 많이 소홀하더라. 사회는 대체 무엇을 해주었는지 살펴본 것이다.
Q. 피고인의 산후우울증에 대해서도 오랜 기간 심리했다. 산후우울증에 주목한 이유는.
A. 이 사건에 대해 ‘영아살해죄’ 가능성이 있는지도 검토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생후 1개월에 발생해 *영아살해죄 단계(분만 중 또는 분만 직후)를 이미 벗어났다. 다만 이 법을 만들 당시에 산후우울증의 개념이 명확하지 않았는데, 그렇다면 이 법을 조금 더 넓게 해석할 여지는 없나 고민했다.
분만 후라는 개념을 막연하게 시간적인 개념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정신과적인 의미에서의 시간 개념으로 생각할 여지는 없는 거냐 검토했다. 피고인의 경우 우울증이 분만 전 임신기부터 와서 분만 이후 더 극단적인 산후우울증으로 이어졌다. 단절되지 않고 출산의 연속선상이라고 해석할 여지가 없나 본 것이다.
우리 형법은 근본적으로 정상적인 상황 판단을 할 거라고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는다. 가장 대표적으로 ‘자기 범죄에 대한 증거 인멸’은 형사처벌하지 않는다. 자신의 범죄에 대해 증거를 인멸하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의 특성 중 하나이고, 그것에 반해서 행동하리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처벌하지 않는 것이다.
분만 중 또는 분만 직후처럼, 산후우울증으로 이성적인 판단이 어렵고 스스로 통제되지 않는 상황에서 정상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 요소로 본 것이다. 산후우울증은 의학적 지식이지만, 법률가가 받아들이면 인문학적 지식이 된다. 정신과적 현상을 사회적으로 이해하는 것 역시 판사의 역할이라고 봤다. 비난 가능성 속에서도 고려되는 요소들이 모두 ‘법’이 될 수 있고, 무엇이 법인지 찾아내고 발견하는 것이 판사들이 더 고민할 영역이다.
*영아살해죄 : 직계존속이 치욕을 은폐하기 위하거나 양육할 수 없음을 예상하거나 특히 참작할 만한 동기로 인하여 분만 중 또는 분만 직후의 영아를 살해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형법 제251조)로, 지난 7월 영아살해·영아유기죄를 폐지하는 형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며 폐지됐다.
A. 영아를 살해하는 행태는 굉장히 다양하다. 일반 살해죄 동기보다 더 복잡하다. 다른 범죄들을 보면 나에 대한 존재를 타인이 공격했을 때, 부당한 허영심, 치정 등이 관련돼 타인과 나와의 직접적인 관계에 기반을 둔다. 하지만 영아를 살해하는 동기는 ‘자기 삶에 대한 적개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 삶에 지치고 적개심이 드는 것. 영아를 매개고리로 한 엄마와 그 엄마의 삶의 관계인 것이다.
결과만 보고 ‘아이를 죽였어, 살인자네.’ 라는 식으로 바라보는 것은 임신, 출산, 육아의 과정을 총체적으로 보지 않는 것으로 위험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여성은 점점 더 출산에 대해 두려울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출산은 두려운 일이다. 여성은 출산하면 체형부터 자신의 꿈까지 모두 바뀐다. 그것이 자신이 원해서 삶이 바뀌었다고 한다면은 자신이 선택한 길이니까 책임을 져야 하지만, 자기가 원하지 않는 삶이다? 그렇다면 여성은 엄청난 불안을 갖게 된다. 이는 삶의 존재를 건드리는 불안이다.
사실 영아살해죄는 영아를 두텁게 보호한 법안이었다. 분만 중이나 분만 직후 영아살해에 대해 낙태죄가 아닌 영아살해죄를 적용한 것은, 분만 과정에서의 영아를 사람으로 인정하고 ‘네가 아무리 흥분 상태에서 기대 가능성이 없다고 하더라도 너를 처벌할 것’이라는 의미의 조항이었던 셈이다. 분만중 분만 직후라는 것도 극히 흥분한 상태를 의미를 했었던 것으로, 원래 영아살해죄 범위가 넓지 않았다. 폐지해야 했을 수 있지만 좀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Q. 세계일보 취재진이 최근 10년(2013~2022년) 국내 영아유기·영아살해 판결문 250건을 분석한 결과, 생부의 책임을 언급한 판결은 희박했다. 어떻게 보는가.
A. 이 사건에서도 엄마가 ‘독박육아’를 하고 있고, 산후우울증이 아주 심한 상태에서 남편에게 계속 SOS를 쳤다. 남편이 이렇게 되면 뭔가 문제가 터질 수도 있겠다고 판단한 영역을 충분히 고려한다면 남편도 형사 책임의 영역에 들어올 수 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삶의 영역을 깊숙이 들여다보고, 생부를 배우자로서 질책해야 한다. 재판의 대상자가 되는 것이다.
만약 가상으로 영아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한다면, 아빠도 엄마랑 같이 나를 잘 키웠어야지 왜 엄마한테만 맡겨놨냐며 아빠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거 아닐까? 그런 경우에 아빠가 형사 책임에서 항상 방치된다는 건 아닌 것 같다.
서로 동의 하에 아이를 낳았는데 사건이 일어났는데, 아빠가 몰랐다? 적어도 방조죄는 되는 것이지, 일정한 영역이 되면은 아빠도 공동정범의 책임을 우리가 검토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법원으로서는 피고인을 재판하기도 버거운데, 피고인의 삶에 깊숙이 들어가 남편이나 남자친구를 살피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전혀 못 할 바는 아니지만, 그렇게 하려면 훨씬 근본적으로 문제의식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양육비 문제도 마찬가지. 처음에는 오랜 기간 동안 양육비 안 낸다고 형사처벌까지 하나 생각하며 이상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유기를 하면 처벌을 받더라. 그걸 생각하니 부양료를 안 내는 거랑 유기하고 무슨 차이냐 생각이 들었다.
A. 집행유예라는 판결에서 갖는 의미가 교도소를 가냐 안 가냐를 따져서 자유를 뺏기냐 안 뺏기냐의 관점에서 보면 월등히 가볍다. 판결이 가볍지 않다고 말하는 쪽의 입장은 판단 기준이 다르다. 즉, 도덕·윤리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다.
징역형을 살아버리게 되면 누범 문제밖에 안 남는 것이고, 징역을 다 살고 나와서 죗값을 다 치렀다고 홀가분해질 수 있다. 하지만 집행유예 판결은 ‘너의 행위는 굉장히 무거운 거야. 많은 비난을 받아야 돼. 그렇지만 다른 사정 때문에 선처를 하는 것이고, 그 사정들은 다음에는 절대 고려가 안 되는 거야’라는 점을 명확히 알려주고, 유예 기간 동안 또는 평생에 걸쳐 죄책감을 느끼고 도덕성을 회복하라는 것이다. ‘네 삶이 정말로 의미 있고 중요하고, 존재가 가치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을 하라는 것’이니 얼마나 어깨가 무겁겠나.
이 판결의 피고인도 평생 잘 살겠다고, 그렇게 함으로써 아이한테 책임을 갚겠다고 얼마 전 편지를 보냈다. 더 이상 반성문을 안 써도 되고 우리한테 편지를 안 써도 상관없는 건데, 자기 삶에 대한 다짐인 것이다. 삶의 무게라는 것은 저울로 잴 수도 없지 않나. 교도소를 가냐 안 가냐의 문제와 삶의 무게의 측면 두 가지를 단순 비교하긴 어렵다. 논의의 수준이 다르다고 본다.
[심층기획 - ‘예고된 비극’ 영아유기]
프롤로그 - 유령아빠, 불행의 씨앗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10509604
①[단독] 애 아빠 없이 ‘나홀로 출산’… “극도의 패닉 상태서 범행”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10508352
②‘국가의 부재’ 속에 아기가 떠난 그날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12500544
③벼랑 끝 내몰려 ‘아이 버릴 결심’ 하기까지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13500163
④아빠가 먼저 ‘두 사람’을 버렸다…부양 점수 5점 만점에 1.3점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13520264
⑤“엄마를 보호하는 게 영아 지키는 길”… ‘비정한 모정’ 다시 본 그 판사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15500252
⑥“주민등록 말소, 이사 등 온갖 꼼수”… ‘도망간 아빠’ 찾아 삼만리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15513897
⑦“책임 안 지면 빨간 줄…‘히트앤드런 방지법’, 왜 안 생기나요?”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15513915
⑧외국인 미혼모와 ‘무등록’ 아동…“아이 성년 되면 생이별”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19510570
⑨“가부장적 체류 제도가 ‘투명 아동’ 양산…핏줄·혼인 중심 틀 깨야”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20510203
⑩‘살아남은 유기 영아’ 이야기…원가정도, 새 가정도 없다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20512263
⑪“누구에게도 기댈 생각을 못해요”… ‘버팀목’ 없이 고립되는 청년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22502617
⑫[좌담회] “예기치 않은 임신은 재난상황…생부에게 더 책임 물어야”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22513086
에필로그 - 이중잣대에 지친, 미혼모들의 속마음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24502371
수원=김나현 기자 lapiz@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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