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는 어쩌나”… 신원식 국방장관 내정에 엇갈리는 시선들 [박수찬의 軍]
“(해군 잠수함) 홍범도함은 어쩌느냐.” 이달 초 이종섭 국방부 장관 후임으로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이 유력하게 거론되던 것에 대해 군 관계자가 보인 반응이다.
안보라인에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면, 군 관계자들은 기대감이나 호기심을 먼저 드러낸다. 긴장감이나 우려를 표시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국방부는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 수사 과정에서 불거진 외압 의혹과 육군사관학교 내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으로 곤욕을 치르는 상황이다.
흉상 철거를 주장해온 신 후보자의 장관 취임 직후 행보에 따라 국방부는 이념 논란의 소용돌이에 더욱 깊이 말려들 가능성도 있다.
◆군인과 정치인의 길을 걸었던 신 후보자
신 후보자는 육군사관학교 37기로서 1981년 임관한 ‘박지만 동기’ 그룹으로 분류됐다. 대령 시절 작전 분야 요직으로 꼽히는 합참 작전본부 합동작전과장을 맡았다.
준장 진급 후 육사 생도대장과 합참 전투준비태세검열실 차장, 국방부 국방정책실 정책기획차장을 지냈다. 소장 시절엔 3사단장과 국방부 정책기획관, 중장 시절에는 수도방위사령관과 합참 작전본부장·합참 차장을 맡았다.
“다른 사람과는 차원이 달랐다. 국방부에 있었는데도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돌아가는 걸 다 알았다. NSC 구성원들이 뭘 얘기 할지, 대통령의 입장은 무엇일지가 머릿속에 다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겠다’는 식으로 김관진 당시 국방부 장관에게 답을 쥐어주고 내용을 이해할 수 있게 했다.”
신 후보자가 합참 작전본부장(2013~2015)과 차장(2015~2016)이었을 때도 이같은 면모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작전본부장 시절 신 후보자는 부하들에게 “기자들이 문의해오면 ‘본부장님이 정확하게 알고 설명해줄 것’이라고 하고 나한테 전화를 넘겨라”라고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 8월 북한이 경기 연천 비무장지대(DMZ)에 포격도발을 감행했을 때, 신 후보자는 합참 차장으로서 언론에 북한군 동향과 우리 군의 대응 등을 알렸다.
군 관계자는 “매커니즘을 다 아니까 (기자들이) 뭘 물어도 설명할 수 있으니 합참에서 그렇게 하지 않았겠나”고 말했다.
군에서 요직을 섭렵했던 그였지만 대장 진급에는 실패했다. 이를 두고 육사 동기이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이자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EG 회장과의 친분이 독이 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군복을 벗은 신 후보자는 정치에 발을 들여놓는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비례대표 공천 후보 대상자가 됐으나 원내 진입에 실패했다. 이후 바른정당에서 활동하다가 2018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에 돌아왔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당선됐다.
정치인으로서 신 후보자는 선명성과 강성 행보가 두드러졌다. 국무위원들이 대야 공세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를 원하는 현 정부의 ‘투사형 국무위원’ 기조와 맞아떨어지는 부분이다.
“홍범도 장군이 봉오동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고 하나 자유시에서 거의 1500명 되는 독립군의 씨가 마르는 데 주역이었다. 레닌한테 가서 레닌의 권총도 받고, 소위 소련군이 된 이분을 굳이 흉상을 세우고 육사에 만들라고 했는지, 왜 육사 교과과정에서 저런 것을 했는지 굉장히 의문이다.” 국방부가 최근 흉상 이전 이유로 내세운 논리와 큰 차이가 없다.
군의 대선배인 이종찬 광복회장과 의견이 다르게 되자 “판단할 능력 없으면 사퇴하라”고 말하기도 했다.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 수사에 외압이 작용했다고 주장하는 박정훈 대령에 대해선 지난달 11일 “군인이 아닌 저질 삼류 정치인이나 할 법한 망동”이라고 비판했다.
지난해 말 북한 무인기가 서울 용산 대통령실 인근 비행금지공역(P-73)을 침범한 것으로 보인다는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주장에 대해 북한과의 내통설을 제기, 야권의 반발을 초래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이같은 전력 때문에 국회 인사청문회가 순탄하게 진행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국방부와 국회 안팎에선 청문회가 열려도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은 불발될 수 있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국가안보의 특수성을 고려, 가능하면 청문보고서를 채택했던 과거의 관례가 통하지 않을 수도 있는 셈이다.
◆선명성이 ‘양날의 칼’ 가능성
차분하고 신중한 스타일이었던 이종섭 국방부장관은 국방혁신 4.0을 비롯한 국방정책을 조심스럽게 설계하고 집행했다.
신 후보자의 경우 정책 집행에 속도를 내면서 선명성을 뚜렷하게 하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흐지부지되거나 애매한 스텐스를 취하지는 않으리라는 것이다.
이념적 측면이 강한 문제가 선명성과 결합한다면, 파장은 더욱 커질 수 있다. 이명박정부 시절이던 2008년 사회적 논란을 초래했던 국방부의 불온서적 문제가 대표적이다.
당시 국방부는 23권의 책을 불온서적으로 지정해 차단대책을 지시했다. 대상에는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비롯해 분류 기준을 명확히 알 수 없는 책들이 상당수였다.
“이게 왜 불온서적인지 모르겠다”는 인식과 함께 해당 서적의 판매량이 크게 늘어 출판계에선 “우리 책도 불온서적으로 지정했으면 좋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신 후보자가 장관 취임 후에도 국회의원 시절 주장했던 것처럼 선명성을 띠게 되면, 해군 잠수함 홍범도함은 이름이 바뀔 수 있고, 국방부 청사 앞의 홍 장군 흉상도 사라질 수 있다. 모두 정치적 파장이 작지 않은 것들이다.
인사청문회는 물론 다음달 열릴 국정감사와 연말 예산 국회, 내년 총선 정국까지 국방부가 정치적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될 수 있다.
국방부가 추진하는 핵심 현안이 여론의 주목과 지지를 받지 못한 채 밀려날 수도 있다.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과 홍 장군 흉상 논란으로 지난달 실시됐던 한미 연합 을지 자유의방패(UFS) 연습 등의 성과와 주요 국방 현안들이 묻혀버린 것이 대표적이다.
신 후보자가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지금까지는 정치인으로 활동했지만, 정책 결정을 내리는 장관의 입장은 다르다는 것이다.
한 예비역은 “신 후보자가 인사청문회를 준비하며 방향을 정할 것이다. 그걸 들어봐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내부 총질’을 멈춰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는 모양새다. 군이 이념 문제에 매달리기에는 국내외 정세가 심각하고, 풀어야 할 과제도 많다는 것이다.
한미 양국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을 반영한 연합작전계획을 새롭게 가다듬어야 하고, 확장억제 실행력을 강화하는 등의 중요한 국방 현안이 산적해 있다.
군의 전투력을 높이기 위한 훈련태세도 다잡아야 하며, 서울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ADEX)를 비롯한 방위산업 진흥책도 진행해야 한다.
그 결과로 북한은 우주 등 러시아의 첨단 과학기술에 접근할 수 있게 됐다. 러시아의 지원이 있다면 북한의 군사과학기술은 빠르게 발전할 전망이다.
한국군의 ‘주적’이 러시아와 손을 잡는 상황은 한반도 정세에 큰 영향을 미친다. 홍 장군 흉상 문제 등의 정치적 문제와 채모 상병 순직 사건에 매몰되지 말고, 거시적 차원의 국방정책과 훈련 강화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신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출구 전략’을 밝히고, 자신이 국무위원으로서 품격과 자격을 충분히 갖췄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 대목이다.
정치권에서도 출구 전략의 필요성이 거론되고 있다.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은 14일 YTN 라디오에서 “신원식 장관 내정자 청문회가 중요할 것 같은데 홍범도(논란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신다면 저도 못 도와드린다”며 “우리 당 다수가 홍범도(논란이) 확대되는 걸 원치 않는다. 잘 좀 반영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 후보자는 지명 발표 직후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대내외 안보 환경, 여러 도전이 굉장히 심각하다”며 “군인다운 군인, 군대다운 군대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군을 정치적 문제에서 자유롭게 하고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도록 하면 군인다운 군인, 군대다운 군대는 자연스레 만들어진다. 실체가 불분명한 추상적인 적 대신 러시아와 새로운 전략을 꿈꾸는 북한을 상대할 준비에 몰입해야 할 때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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