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 피해자 보호, 언제까지 가해자 '양심'에 기댈건가요"
스토킹 범죄 올해 1월~8월 112신고만 2만 1817건
가·피해자 분리할 긴급응급조치, 잠정조치 위반율 각각 10.6%, 7.5%…10명 중 1명 다시 스토킹
유치장 구금할 수 있는 '잠정조치 4호', 경찰 신청 중 절반만 법원 인용돼
스토킹으로 검거된 6381명 중 339명이 재범…가해자-피해자 '분리' 절실
"가해자 '양심'에만 기대는 접근금지를 왜 내리는지 모르겠어요 … 접근금지 명령을 받고 4시간 만에 풀어줬어요. (피해자와) 분리가 전혀 안 되잖아요. 피해자에게 자기 목숨은 자기가 지키란 건가요"
7월 17일 오전 5시 54분쯤 인천시 남동구 아파트 복도에서 30대 남성이 과거 연인이자 직장동료였던 이은총씨를 살해했다.
당시 가해자는 접근금지 명령을 받았지만, 이를 무시하고 출근길 피해자에게 범행을 저질렀다. 유족은 가해자가 자발적으로 피해자를 피하도록 기댈 수밖에 없는 피해자 보호 제도에 울분을 토했다.
지난 14일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이 발생한 지 1년이 되도록 누군가는 일터에서, 집 앞에서 여전히 스토킹 피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신당역 사건을 일으킨 전주환의 범행 이후 스토킹처벌법(스토킹범죄의처벌등에관한법률)에서 '반의사불벌죄' 조항이 폐지되는 등 일부 법 개정이 이뤄졌지만, 정작 스토킹 강력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피해자 보호' 제도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은총씨의 사촌언니 A씨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사건 당일을 떠올렸다. 그는 은총씨가 자신의 어머니와 딸이 보는 앞에서 살해당했다고 말했다.
교제 초반부터 은총씨에게 집착하던 가해자는 은총씨가 이별하자고 말하자 은총씨 팔뚝 전체에 피멍이 들 만큼 폭력을 휘둘렀고, 차로 은총씨의 뒤를 쫓기도 했다.
은총씨가 지난 5월 남성을 고소했다가 이를 취하하자 오히려 위협은 더 심해졌다. 법원은 8월 9일까지 은총씨에게 접근·연락을 하지 말라는 '잠정조치' 결정까지 내렸지만, 가해자는 4시간 만에 풀려났고 한 달 뒤 피해자를 살해했다.
유족은 피해자로부터 가해자를 완전히 떼놓을 수 없는 현실을 제일 답답해했다. A씨는 "피해자가 범죄자가 아닌데 왜 피해자 팔목에다 스마트 워치를 채워놓는지 모르겠어요. 사건 발생 나흘 전인 13일에 경찰은 '동선이 겹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스마트워치를 반납하라고 안내했지만, 그날 새벽에도 가해자는 (집앞에) 와 있었어요"라고 호소했다.
스토킹 범죄는 끊이질 않고 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무소속 이성만 의원실이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스토킹 관련 112 신고 건수는 2만 1817건으로 집계됐다. 2020년 4515건에서 2021년 1만 4509건, 작년 2만 9565건으로 매년 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스토킹 신고는 3만 건을 훌쩍 넘을 전망이다.
인천 스토킹 살인, 신당역 전주환 사건, 그 전에 세 모녀를 살해한 김태현 사건 등 일련의 참혹한 범죄에서 보듯 스토킹은 강력 범죄를 부르는 단초다.
스토킹 범죄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 간의 분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 경찰은 직권으로 '긴급응급조치'를 내릴 수 있다. 스토킹 가해자의 피해자 주거지 등 100미터 이내로 접근 금지, 통신 접근 금지하도록 하는 명령이다.
그러나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된 재작년 10월부터 올해 8월까지 결정된 긴급응급조치 위반율은 10.6%(승인 6442건 중 위반 688건)에 달했다. 10명 중 1명은 경찰 명령을 어기고 다시 스토킹한 셈. 피해자 보호를 가해자가 알아서 스토킹을 자제하도록 호소하는, 가해자의 자발적 의사에 기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보다 더 강한 조치로 법원이 결정하는 '잠정조치' 1호~4호도 있다. 서면 경고, 100m 이내 접근금지, 전기통신 이용 접근금지 뿐 아니라 유치장 또는 구치소 구금까지 가능하다. 하지만 이 역시 2021년 10월부터 올해 8월까지 결정된 잠정조치 전체 1만 2961건 중 위반율은 7.5%(982건)를 기록했다. 올해 1~8월에도 잠정조치 위반 건수가 391건(잠정조치 결정 5675건)에 달했다.
인천 스토킹 살해범도 잠정조치 명령을 받은 상태였다. 가해자는 '잠정 조치 2·3호'를 받았지만, 이를 무시하고 은총씨에게 접근해 흉기를 휘둘렀다. 범행 전에도 이미 다섯 차례나 더 찾아왔던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기도 했지만, 우리의 피해자 보호제도는 가해자를 멈춰세우지 못했다.
'재범 위험성'이 강할 때 경찰은 가해자를 최대 1개월 동안 유치장·구치소에 가둘 수 있는 '잠정 조치 4호'를 신청할 수 있다. 하지만 해당 조치가 법원 문턱을 넘기는 쉽지 않다.
올해 1월부터 지난 8월까지 경찰은 잠정조치 4호를 총 301건 신청했지만, 법원에서 인용한 사례는 166건으로 절반(55.1%)만 받아들여졌다. 지난해엔 경찰의 잠정조치 4호 신청 자체도 295건에 불과했고, 이 가운데 168건(56.9%)만 인용됐다.
수사기관과 법원의 안일한 태도에 가해자가 구속되는 일은 더욱 드물다. 지난해 경찰은 스토킹 관련으로 496건의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이 중 165건은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아 기각률이 33%에 달했다. 같은 기간 성폭력 범죄 구속영장 기각률이 24%(신청 1909건, 기각 474건)인 것과 비교하면 스토킹 관련 구속영장 기각률이 유독 높다.
반면 지난 1월~7월 스토킹처벌법으로 6381명이 검거됐는데, 이중 재범자가 339명이나 됐다. 지난해에는 9999명이 붙잡혔고 589명이 같은 범죄를 저질렀다.
국회 입법조사처 허민숙 조사관은 "스토킹 재범률이 높은 것은 가해자와 피해자 분리가 되지 않는 상황과 관련된다"며 "수사기관과 사법부는 여전히 가해자를 제재하는 데 망설인다. 이는 가해자에게 '자신의 스토킹 행위가 이해받을지도 모른다'는 잘못된 신호를 국가가 주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스토킹 예방법의 첫 번째 원칙은 가·피해자 분리"라며 "분리만 되면 피해자는 사망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1년 전 신당역 살인 사건 이후, 지난 6월 스토킹처벌법이 개정돼 기소 전이라도 가해자에게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할 수 있게 되는 등 변화는 있었다. 하지만 전자발찌 부착 명령은 공포 6개월 후인 내년 1월에나 시행된다.
은총씨 유족은 이렇게 말했다. "전자발찌라든가 이런 건 언제 시행이 될까요? 그리고 오늘도 아마 누군가는 경찰에 가서 내가 지금 스토킹 당하고 있다고 말하겠죠. 경찰은 똑같이 스마트워치를 지급해 주고 접근금지 명령을 내릴 테고요. 진짜 이런 일은 다른 사람이 절대 겪지 않았으면 해요"
이은총씨를 살해한 가해자는 재판부에 3~4일 간격으로 반성문을 제출하며 형량을 낮춰달라고 말하고 있다. 첫 공판은 오는 19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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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임민정 기자 forest@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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