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신냉전’ 심화 섣부른 이념외교…‘북·중·러 실리외교’ 전환을

신형철 2023. 9. 15.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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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러 밀착]전문가들, 북-러 회담 평가·분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3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을 했다고 조선중앙TV가 14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지난 13일 열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북-러 정상회담에 관해 외교 전문가들은 양국 관계를 역대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동시에 한국으로서는 가장 까다로운 대러 관계에 직면했다고 분석하면서, 이념이 아닌 실리와 유연성에 바탕을 둔 북·중·러 외교를 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겨레는 14일 김준형 전 국립외교원장, 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 소장,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위성락 전 주러시아 대사, 제성훈 한국외대 교수(러시아어) 등 5명의 전문가에게 북-러 정상회담 평가와 분석, 전망 등을 들었다.

왼쪽부터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김준형 전 국립외교원장, 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

■ 북-러 관계 새 이정표 만든 회담

전문가들은 북한과 러시아가 정상회담을 통해 과거 어느 때보다 돈독한 관계를 구축했다고 평가했다. 위성락 전 주러대사는 “북-러 관계가 아주 극적으로 강화됐다는 점이 부각됐다”며 “정상회담이 특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기존 제재 결의나 국제 규범 등을 무시하는 듯한 방식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충격이 컸다”고 말했다.

제성훈 한국외대 교수(러시아어)도 “북-러 관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썼다”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인한 서구의 대러 제재 등이 러시아가 새로운 선택을 하도록 강요했고 이를 북한이 이용해 새로운 북-러 관계를 형성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만든 국제사회의 변화가 가져온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반도 주변 신냉전 구도는 더욱 강화됐다고 봤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러시아가 북한을 우크라이나 전쟁의 보급기지로 사용하려는 것 같다”며 “이번 정상회담으로 한·미·일과 북·러의 대결 구도와 신냉전 구도가 더 심화됐다”고 말했다. 김준형 전 국립외교원장은 “지난달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담이 끝났을 때 이제 신냉전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확실히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위성락 전 주러 대사, 제성훈 한국외대 교수

■ 무기 거래 수준은 미지수

전문가들은 북·러가 경제·군사 등 여러 분야에서 교류를 확대할 것으로 예측했다. 다만 무기 거래의 수준이 어느 정도일지에 관해서는 전망이 일치하지는 않았다. 푸틴 대통령은 북한에 위성 개발을 지원하겠다는 뜻을 표시했고, 러시아 쪽은 “발표되지 말아야 할 민감한 분야의 협력을 이행한다”며 우크라이나전을 치르는 러시아에 대한 북한의 재래식 무기 지원을 암시했다.

위성락 전 대사는 “양국이 시인은 안 하겠지만 (북한의 대러) 무기 지원 문제도 논의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푸틴 대통령이 위성 기술 전수에 긍정인 태도를 보인 것을 언급하며 “위성도 군사 정찰용으로 쓰일 수 있다”고 말했다. 양무진 교수도 “북한은 포탄을 전달해주고, 러시아는 정찰 위성에 대한 기술 지원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반면 김 전 원장은 “러시아로는 한국이 앞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에 취하는 태도를 봐서 북한과의 군사협력 수준을 결정할 것”이라며 “이번 회담만으로 민감한 군사기술을 북한에 이전하기로 결정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제 교수도 “러시아가 북한의 위성 발사를 도울 것이라고 했고, 우주협력을 하겠다고 말했지만 군사 협력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없었다”며 “구체적인 사항은 이번 회담에서 합의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 북·중·러 밀착 수순

전문가들은 북-러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러가 중국과의 접점도 넓히려 할 것으로 예측하면서도, 밀착도는 한·미·일보다 헐거울 것이라고 봤다.

제성훈 교수는 “중국은 한·미·일 3각 협력에 대응하려면 북·중·러 연대를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며 “중국은 북한이 냉전 시절 중국·소련으로부터 이득만 취하려 들던 외교 방식이 재현될까 경계할 수는 있다”고 했다. 박병환 소장은 “2차 대전 이후 러시아와 중국, 북한의 관계는 연대하면서도 견제하는 삼각관계였다. 3국이 한·미·일처럼 똘똘 뭉친다는 것에는 부정적이다”라고 말했다. 위 전 대사는 “중국은 미국 주도의 동아시아 질서에 반대하는 러시아의 움직임에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따라서 큰 흐름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연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 윤석열 정부, 이념 대신 실리 외교 펴야

전문가들은 윤석열 정부가 외교적 난관에 직면했다며 한·미·일 중심의 가치, 이념 중심 외교에서 벗어나 북·중·러와 실리 외교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제 교수는 “북-러 정상회담으로 윤 정부 외교 노선이 대실패했다는 점이 드러났다”며 “세계질서 대전환기에 너무나 섣부르고 이념적인 결정으로 선택지를 줄여버렸다. 이를 돌파하려면 중국·러시아와 깊이 있는 대화를 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위 전 대사는 “한·미·일 공조를 하다 보면, 북·중·러의 반발이라는 기회비용이 발생한다. 이것 또한 잘 관리해야 한다”며 “지금 윤석열 정부 외교는 미국과 일본에 대한 정책만 있고, 중·러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나온 것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신형철 기자 newir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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