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수입보장보험 가입 ‘바늘구멍’…지역농협만 ‘좌불안석’

김광동 2023. 9. 15.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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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 시합하듯 선착순 판매
다수 직원 달라붙어 신청해도
계약성사 어려워 농민들 분통
국조보조액 규모 갈수록 줄어
재배면적·생산물량 등 고려해
지역별로 할당 가입 유도해야
경남 창녕 이방농협 직원들이 컴퓨터 단말기로 마늘농가의 농업수입보장보험 계약 현황을 들여다보고 있다.

“보험 판매 개시일만 다가오면 밤잠을 설쳐요. 이게 무슨 ‘군대 선착순 달리기’도 아니고 개시 몇분 만에 모니터에 가입액 한도가 다 찼다는 창만 뜨니 이럴 거면 보험상품을 뭐하러 만들었나 싶어요.”

“농민 소득 보장해주려 만든 보험 아녜요? 그런데 가입하고 싶어도 가입할 수 없는 보험이 무슨 보험이에요? 해마다 애먼 농협 직원에게 지청구를 쏟아내니 속상하기 이를 데 없어요.”

농작물재해보험의 2024년도 농업수입보장보험 판매를 앞두고 전국 마늘 주산지에 긴장감이 돈다. 보험 가입이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처럼 어려워 농가는 물론 농협 직원의 심리적 압박이 상당해서다.

경남 창녕 이방농협(조합장 공정표) 직원 역시 10월 보험 판매를 앞두고 “바늘방석에 앉아 있는 것 같다”며 불편한 속내를 털어놨다. 마늘 주산지인 만큼 농협 조합원 대다수가 이 보험에 가입하길 원한다. 국가가 보험료의 50%를 보조하는 데다 지방자치단체 지원금까지 더하면 농가 본인은 보험료의 10%만 부담해도 마늘 수확량 감소분과 수확기 가격 하락분까지 보장받을 수 있어서다.

NH농협손해보험이 정부 위탁을 받아 판매하는 이 보험은 해당 지역 농협에서만 가입할 수 있다. 문제는 보험 가입을 원하는 농가가 많아 계약하기가 만만치 않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사례를 보면 이방농협에서 보험 가입을 하려는 건수는 102건인데 이 가운데 62건만 성공했다.

올해는 아직 공식적으로 보험 판매 개시일이 공지되지 않았지만, 직원들은 대략 10월4일에 판매를 시작할 것으로 전망한다. 하종택 신용상무는 “지난해 보험 판매 개시일 정시에 컴퓨터 단말기가 있는 직원 15명이 달라붙어 가입 절차를 밟았는데, 불과 10분도 지나지 않아 국고 보조액 한도가 다 차 전산망이 닫혀버렸다”며 “가입을 못한 농가들은 눈앞에 있는 직원을 원망해 난감한 상황이 연출됐다”고 귀띔했다.

이런 일이 수년째 이어지자 이방농협은 궁여지책으로 보험 가입을 원하는 조합원을 미리 한곳에 모아 추첨으로 순번을 정하기도 했지만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보험 계약 개시일에 많은 직원이 동원됐으나 전산에 등록할 사항이 많고 컴퓨터를 다루는 기술도 개인차가 있어 뒷 순번이 계약에 성공한 반면 앞 순번은 ‘탈락’하는 기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3만3057㎡(1만평) 규모로 마늘농사를 짓는 박정묵씨(64)는 “5년 전부터 매년 이 보험에 가입하려고 농협을 찾았지만 한번도 계약에 성공한 적이 없다”며 “짜증이 확 올라 농협 직원에게 화풀이하기 일쑤”라고 말했다.

마늘 주산지인 충남 서산·태안 지역도 사정은 비슷하다. 서산 부석농협(조합장 우상원)에 따르면 마늘 수입보장보험 가입을 원하는 농가는 해마다 100여명에 달하지만 가입에 성공하는 농가는 많아야 5∼6명, 적게는 1∼2명에 불과하다.

부석농협 관계자는 “마늘 수입보장보험은 판매를 시작하기 1주일 전에 농가로부터 사전접수를 받은 후 판매 당일에 직원 여러명이 달라붙어 신청해도 한 사람이 잘해야 1건 정도 가입하곤 한다”고 귀띔했다.

전남 고흥의 농협 관계자 역시 “농업수입보장보험 도입 이후 지금까지 우리 사무소에서 가입에 성공한 사례가 딱 한건”이라며 “며칠 전부터 농지원부(농지대장) 등 필요한 서류를 다 갖추고 미리 준비하는데도 시작하자마자 끝나버리니 허탈하다”고 했다.

현재 이 보험에 들 수 있는 지역은 경남 창녕을 비롯해 충남 서산·태안, 전남 고흥, 경북 의성, 제주 제주·서귀포가 전부다. 하지만 보험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국가 예산규모가 줄면서 수요가 공급을 크게 초과해 해당 지역 농협은 해마다 곤욕을 치른다. 실제 농업수입보장보험은 2015년 3개 품목(콩·양파·포도)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2018년엔 마늘·양배추·고구마·가을감자로 범위를 넓혔다.

하지만 전체 예산은 시범사업 첫해인 2015년 31억원에서 2020년에는 52억원까지 늘었지만, 2021년 절반 넘게 깎인 25억원으로 줄더니 현재까지 큰 변동이 없다. 마늘의 경우 2019년 12억8700만원에서 2022년 7억6100만원, 올해 6억6500만원으로 크게 줄었다.

공정표 조합장은 “정책보험 국가 보조액 규모를 줄여놓고, 보험 판매를 담당하는 일선 농협에 달리기 경주를 시키듯 선착순으로 계약 성패를 결정짓게 하는 것이 큰 문제”라며 “먼저 예산을 늘리는 것이 시급하고, 여기에다 정부가 재배면적·생산량을 고려해 지역별·농협별로 보조 총액을 정한 후 보험 가입을 유도하는 운용의 묘를 발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송영철 고흥 풍양농협 조합장은 “올해 마늘은 수확량 감소에도 가격까지 하락해 농가 어려움이 많았기 때문에 보험 가입 수요는 더 늘어날 것”이라면서 “정부가 전국 마늘농가가 고루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장치를 적극적으로 마련해달라”고 촉구했다.

농업수입보장보험 가입이 어렵다는 지적에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수입보장보험은 농산물의 수확량이 감소했지만 시장가격이 높아 농가 수입이 늘어났을 때에도 보상을 해준다는 비판도 있고, 농산물 가격안정을 목적으로 한 다른 정책과 상충하는 문제도 불거져 수혜자를 늘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의견도 존재한다”며 “보험상품을 개선한다는 전제하에 예산이나 대상 품목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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