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백로에 찾아오는 꽃게와 전어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지난주(9월8일)에 '백로(白露)'가 들었다.
바로 '꽃게'와 '전어'가 주인공이다.
그런데 이 꽃게와 전어가 기후변화로 인해 희비가 엇갈렸다.
늘 모자라는 꽃게에 비해 전어는 너무 많이 잡힌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난주(9월8일)에 ‘백로(白露)’가 들었다. 하얀 이슬이 맺힐 때면 당장 날씨가 선선해야겠지만 강렬한 여름이 남기고 간 잔열로 한낮에는 무덥다. 그래도 최대 명절인 추석을 앞둔 시기로, 만물을 거두는 시간이다. 논밭의 곡식을 거두고, 고추도 따서 말리고, 호박을 따고, 깻잎과 고구마순도 거둔다. 산채를 말려 나물로 준비한다. 이때는 농촌뿐만 아니라 어촌에서도 축제가 벌어진다.
특히 가을이 제철인 수산물은 서해안이 으뜸이다. 바로 ‘꽃게’와 ‘전어’가 주인공이다. 그래서 요즘같이 화창한 날에는 많은 사람이 식도락 여행을 떠난다.
그런데 이 꽃게와 전어가 기후변화로 인해 희비가 엇갈렸다. 서해안의 수온이 꾸준히 올라가면서 찬물을 좋아하는 꽃게는 지속해서 조업량이 줄고 있다. 게다가 중국에서 온 불법 조업선들 때문에 해경과 쫓고 쫓기는 살벌한 풍경이 벌어진다. 그렇게 잡아간 꽃게는 중국이 수출하는 수입 수산물이 돼 우리네 밥상에 오른다. 국내 수요보다 공급이 모자라니 이런 아이러니가 상식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최근 눈이 번쩍 떠지는 뉴스가 있었다.
이탈리아에서는 ‘푸른 꽃게’가 급증하며 어패류를 먹어치우고, 생태계를 파괴하는 문제에 직면했단다. 푸른 꽃게는 원래 대서양에서 나는 종인데, 화물선을 통해 지중해 연안으로 확산됐다. 수온 상승도 개체수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 이탈리아는 꽃게 요리가 대중적이지 않아 푸른 꽃게를 잡아 폐기하는 사람에게 포상금을 준다.
그런데 이 푸른 꽃게, 우리가 먹어도 될까? 확인해보니 우리는 이미 먹고 있었다. 이탈리아와 똑같은 처지에 놓인 튀니지·바레인·예멘에서 절단 냉동 상태로 그 꽃게를 수입하고 있었던 것이다. 식용 가능한 수백종의 게 중에서 유독 꽃게를 사랑하는 한국인들과 기후변화가 만든 참으로 ‘웃픈(웃기면서 슬픈)’ 사회적 풍경이다.
늘 모자라는 꽃게에 비해 전어는 너무 많이 잡힌다. 이것도 아이러니하게 기후변화로 수온이 상승해서다. 따듯한 바다를 좋아하는 전어는 남해안에서 서해안·동해안 등지로 북상했다. 전어가 가장 많이 잡히는 곳은 8월에는 경남 사천, 9월은 충남 서천이다. 즉 전어는 우리나라에서 여름부터 가을까지 내내 잡히는 것이다. 덩달아 며느리는 무척이나 바쁘게 친정집과 시댁을 오가게 생겼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속담에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가 돌아온다’ ‘며느리 친정 가면 전어 구워 먹는다’가 있다. 백로 때는 농사일이 한가해져서 선조들은 며느리에게 친정에 다녀올 수 있는 휴가를 줬다. 그런데 마침 이때가 전어철이었던 것이다. 그러하니 친정집에 간 며느리는 자기 빼고 전어 구워 먹을까 급히 시댁으로 돌아오려 하고, 시어머니는 며느리 돌아오기 전에 아들하고 급히 먹어치우려 했나보다. 실제 그러했다기보다는 고소한 전어 맛을 두고 우스갯소리로 만든 말일 것이다. 근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요즘엔 며느리에게 줘도 안 먹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이상엽 사진작가
Copyright © 농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