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노동자 두 배 오는데...지원센터 44곳 내년에 전부 폐쇄
보조금 사업 재검토, 세수 부족 등 이유인 듯
"20년 노하우 사라지고, 사회 통합 약해져"
"투표권 없는 외국인 예산 후려치기" 비판도
"우리 외국 사람 아프거나, 월급 안 주거나, 기숙사 없거나 문제 많을 때 (외국인 근로자 지원센터) 사람에게 연락하면 다 설명해줘요. 센터 없어진다는 얘기 듣고 기분 진짜 불편하고 안 좋았어요. 저는 12년 한국 살아서 괜찮아도 새로 오는 사람들 너무 불편할 거예요."
스리랑카 출신 노동자 디네시(가명·32)
정부가 지방과 중소기업 인력난 해소를 위해 외국인 노동자 규모를 대폭 늘렸지만 정작 이들을 지원하는 전국 44개 센터는 내년도 예산이 전액 삭감돼 폐쇄 위기에 몰렸다. 관공서가 같은 역할을 이어간다고 하지만 '기능 공백' 우려와 함께 '사회적 약자 예산 후려치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14일 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내년에 '외국인 근로자 지원센터' 정부 예산은 '0원'으로 편성됐다. 2004년 고용허가제 시행과 함께 첫 지원센터가 설립된 후 20년 동안 전국 9개 거점센터와 35개 소지역센터가 운영됐는데 예산 0원은 처음이다. '국고 보조금 사업 원점 재검토'와 '세수 부족에 따른 긴축재정' 등이 배경으로 전해진다. 지원센터는 고용부가 비정부기구(NGO) 등 민간에 운영비를 주는 위탁 운영 방식인데, 매년 70억 원 안팎이 배정됐다.
지원센터는 외국인 노동자 임금 체불, 사업장 변경 같은 노무 상담은 물론 병원·주거·범죄피해 등 실생활 고충 상담, 한국어·산업안전 교육, 국가별 커뮤니티 형성, 쉼터 제공 등 지역을 기반으로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 사회에 정착하도록 돕는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다.
기재부의 '2023년 국고보조사업 연장평가 보고서'에서도 "향후 이민자와 이주 근로자 증가가 예상돼 정책적으로 상당한 의미"가 있으며 "성과지표도 우수"하다고 평가됐다. 예산에 대해서는 "실질적 운영에 필요한 최소 수준"으로 적정 규모라고 판단됐다. 이 같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고용부는 지원센터들과 아무런 협의 없이 최근 폐쇄 결정을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정부가 운영한다"지만 "적극적 구제 안 돼" 우려
정부는 사업 중단이 아니라 사업 성과·효율성 향상을 위해 △노무·고충 상담은 다국어 상담원을 추가 채용해 지방고용노동관서에서 맡고 △교육 기능은 산업인력공단에 이관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지원센터 관계자들은 물론 전문가들도 관공서 이관 시 제 역할이 어려울 수 있고 '외국 인력 도입 확대'라는 정책 기조와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6만9,000명이었던 고용허가제(E-9) 규모는 올해 12만 명, 내년에는 12만 명 이상으로 늘어날 예정이다.
고용부는 '센터 상담·진정-노동관서 행정 처리'로 이원화된 체계를 상담·행정 원스톱 제공으로 효율화한다는 설명이지만 지원센터들은 우려를 표한다. 류지호 의정부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상담팀장은 "센터에서 면담 후 입증 자료를 확보해 민원을 제기하면 센터와 노동관서가 사실관계를 두고 다투는 식인데, 행정기관이 전담할 경우 빠른 문제 해결이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휴가 사용이 어려운 외국인 노동자는 보통 주말에만 시간이 나 현재 지원센터들은 대부분 주말에도 문을 연다. 일요일 일일 상담 건수는 평일 대비 4배, 특히 내방 상담은 5배 수준이다. 주말이 휴무인 관공서는 접근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에 고용부는 '주말 전화 상담 서비스 확대'를 대책으로 내놨다.
지원센터 폐쇄로 십수 년의 경험과 노하우를 가진 전문 인력이 유실되는 것도 문제다. 19년 경력의 이효정 한국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팀장은 "고용주와 노동자 간 갈등이 생기면 직접 사업장에 방문해 애로 사항을 듣고 노동자 출신국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인한 갈등도 중재한다"고 말했다.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한국인 고용주가 느긋한 성격의 태국인 노동자를 "게으르다"고 여기면 현지 문화나 관습을 잘 아는 센터 직원이 중간에서 '윤활유' 역할을 하는 셈이다. 윤자호 유니온센터 연구위원은 "센터 폐쇄 시 상담, 교육, 공동체 지원을 하면서 쌓인 노하우와 지역 네트워크가 모두 사라지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외에도 '사랑방' 같던 지역사회 내 지원센터와 달리 관공서는 심리적 문턱이 높아지는 문제, 외국인 직원을 주축으로 한 커뮤니티·정보 전달 네트워크의 상실, 시민단체나 노무·법률·의료 지원 연계 등 민간단체라서 적극적으로 가능했던 협력 체계 상실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예산 부족에 투표권 없는 외국인 지원부터 삭감"
손종하 한국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장은 "프랑스와 영국 등에서 보듯 이주민 사회 통합 실패는 폭동 등 사회 불안의 단초가 됐다"며 "외국인 노동자가 더불어 살 수 있는 통합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혁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외국인 노동자 도입 규모만 늘리고 체류 관리나 지원은 방기하는 게 아닌지, (센터 폐쇄가) 한국 사회에 가져올 악영향에 대한 고민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한 지원센터 관계자는 "국가 예산이 부족해지니까 투표권도 없고 민원도 못 넣는 외국인 노동자 예산부터 삭감한다"고 날 선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현장과 전문가의 우려가 큰 만큼 당장 내년에 폐쇄하기보다 일부 예산이라도 편성해 운영하고 제대로 된 공론화와 협의 과정을 거쳐 바람직한 사업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정의당 이은주 의원은 지원센터 존속 필요성에 공감한다며 "국회 예산안 심사 단계에서 최대한 예산을 되살려보려 한다"고 밝혔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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