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기증 10년만에 최저… 이식 대기자, 기증자의 122배
간질성 폐질환을 앓는 A씨는 2018년부터 5년간 매일 3㎏ 무게의 산소통을 어깨에 메고 살고 있다. 양치질이나 세수를 해도 숨이 찬다. 산소통의 호스에 연결된 콧줄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 유일한 희망은 폐 이식이다. 올해 첫 이식 기회가 찾아왔다. 하지만 뇌사자(기증자)의 폐 손상이 심해 이식을 받지 못하고 병원을 나와야만 했다. 그는 “이 고통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고 했다.
심장·폐·간 등 주요 장기(臟器)가 회복 불능으로 손상된 사람을 고통에서 건질 수 있는 길은 장기 이식밖에 없다. 그러나 장기 기증자는 매년 줄어들고 있다.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 등에 따르면 지난해 뇌사 판정 후 장기를 기증한 사람은 405명으로 1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반면 장기 이식 대기자는 매년 2000~3000명씩 급증하고 있다. 작년 대기자 수는 4만9765명으로 역대 최고치였다. 작년 기준으로 따지면 장기 이식 대기자가 장기 기증자보다 122배 많다. 이로 인해 매일 이식 대기자 7.9명이 사망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작년 뇌사 장기 기증자는 100만명당 44.5명이었다. 2020년에 비해 100만명당 장기 기증 인원이 6명 늘었다. 스페인과 영국의 작년 기증자 인원도 100만명당 각각 46.03명과 21.08명으로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그러나 한국은 작년 기증자가 100만명당 7.88명으로 미국의 17%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2년 전에 비해 1.3명 감소했다.
강치영 한국장기기증협회 회장은 “우리나라 국민은 본인과 내 가족의 몸에서 장기를 떼어내는 것에 대한 거부감과 불안이 크다”며 “여기에 장기 기증자와 그 유족에 대한 국가·사회적 예우가 부족하다 보니 장기 기증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실제 2017년 장기 기증자의 시신 수습 및 이송 비용을 국가가 부담하지 않고 모두 유족에게 떠넘겨 예우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이후 시신 이송 비용은 국가가 책임지고 있지만, 여전히 지원과 예우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가령 대부분의 선진국엔 장기 기증자 이름을 새긴 기념 공원이 있다. 그러나 한국엔 전남 순천만 ‘주제 정원’이 유일하다. 또 해외 주요국의 경우 기증자 유족의 심적 고통을 치유하기 위한 심리 치료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지만 한국엔 이런 프로그램이 거의 없다.
복지부 관계자는 “뇌사자 장기 기증을 위해선 유족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코로나로 유족 접촉이 어려웠던 것도 한 원인”이라며 “뇌사자가 주로 발생하는 교통 사망 사고, 뇌혈관 질환 등이 줄어든 구조적 영향도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근본적 해결을 위해선 법을 손질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나라 장기 기증자 대부분은 뇌 기능을 잃은 뇌사자다. 한국은 법적으로 ‘뇌사 장기 기증(DBD)’은 인정하고 있지만, 해외 주요국들이 채택하고 있는 ‘순환 정지 후 장기 기증(DCD)’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순환 정지 후 장기 기증’은 뇌사 상태가 아닌 심정지 환자에 대해서도 본인의 사전 동의에 따라 심폐소생술을 시행하지 않고 5분간 기다려 전신의 혈액 순환이 멈추면 장기를 적출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미국은 전체 장기 기증 중 ‘순환 정지 후 장기 기증’ 비율이 30%를 넘는다. 영국·네덜란드 등 유럽 주요국은 이 비율이 40~50%에 달한다. 국내에서 이 제도를 도입하면 장기 기증자가 지금보다 최소 2배 늘어날 것이란 관측도 있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 관계자는 “정부와 지자체가 뇌사자의 장기 기증 동의를 받기 위해 유족을 설득하는 전문가를 양성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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