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030] 무한한 사랑에 빠진 시간
며칠 전 아빠가 됐다. 난산(難産)이었다. 산달을 코앞에 두고 아내 온몸에 발진이 생겼다. 임신성 호르몬 변화가 원인이라 출산 전까진 좋아지기가 어렵다고 했다. 혹여 아이에게 문제가 생길까 노심초사하며 완화제 맞고 버티기를 며칠. 증상이 점점 심해져 결국 입원을 했다. 10시간 진통을 겪고도 유도분만에 실패해 수술대에 올랐다. 응급 제왕으로 몇 분 만에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분만실 밖에서 들었던 아이의 첫 울음소리는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우리 부부가 아이의 유일한 세상인 지금 “부모가 되면 비로소 어른이 된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온 힘을 다해 마음껏 사랑하라고 신이 주신 이 시간을 보내며, 한때 내게도 일방적이고 무한한 사랑을 받았던 시절이 있었음을 생각한다.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을 퍼주던 존재에게 이제는 다 컸다는 이유로 투정 부리고 짜증 내며 상처 입힌 일들이 떠올라 울컥해진다.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내리사랑의 깊이를 이토록 절실히 공감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렇게 누린 사랑의 감사함을 깨닫고, 이제는 누군가에게 그런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게 아닐까.
결혼과 출산이 인생의 ‘선택 사항’으로 간주되고, 오히려 적극 권유되지 않는 시대를 살고 있다. 특히 출산이 결혼에 딸려 오는 순리(順理)로 인식되던 시대는 끝났다. 주변을 둘러봐도 결혼은 했지만 아이는 낳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꽤 많다. 아이 대신 반려동물을 키우기도 하고, 아이 키우는 데 들어갈 생애 양육 비용을 스스로에게 투자해 인생을 즐기겠다는 이들도 있다. 인생에 정답은 없기에 이런 결정이 문제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사실 ‘합계출산율 0.7명’이라는 숫자가 더는 놀랍지도, 새로워 보이지도 않는다. 현재와 비교해 집값이 절반 수준이던 2018년 이전 부동산 매매 실거래가를 보는 것처럼 합계출산율도 의미 없는 숫자로 읽힌다.
저출산 시대의 진정한 비극은 ‘인생에서 아낌없이 사랑에 빠져볼 시간’을 박탈당한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젊은 층에게 비출산이 장려돼 이런 기회가 사라진다는 것은, 부모와 자녀가 한 시절 서로 오직 사랑으로만 결속돼 서로의 전부가 되어본 ‘공통의 경험’이 사라진다는 것을 뜻한다. 젊은 세대는 부모 세대가 준 헌신과 사랑에 감사하고, 부모 세대는 맞벌이가 아니면 아이 한 명 키워내기 버거워진 달라진 현실을 공감해볼 기회를 잃게 되는 것이다. 세대 간 갈등이 격화하는 요즘 이런 공감대의 상실이 무서운 속도로 떨어지는 합계출산율 숫자보다 더 뼈아프게 느껴진다.
출산하고 일주일 후 수술 부위 실밥을 제거하러 아내와 병원에 들렀다. 진료 전 간호사 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리러 엘리베이터를 타고 신생아실이 있는 9층 버튼을 눌렀다. 사람을 한가득 태운 엘리베이터는 산모들이 진찰받는 4층에서 한 번, 난임(難妊) 시술이 이뤄지는 6층에서 한 번씩 섰다. 그 사람들이 몇 달 후 우리처럼 9층에서 내려 신생아실 창밖에서 아기 얼굴을 보고 즐거워하는 상상을 했다. 막 태어난 아기가 우렁차게 울면서 신생아실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 울음소리가 마치 “우리 힘내서 사랑해보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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