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원의 말글 탐험] [204] ‘서둘어’선 안 되고, ‘서둘러’야
5학년 2반 62번 양혜원. 4학년 때까지 멀쩡했던 이름이 바뀌었다. 남자애치고 별나다 싶었으련만. 선생님이 좀 무심했다고 색바랜 생활통지표가 속삭인다. 하긴 ‘혜’가 아니고 ‘해’라고 말씀드리면 됐을 텐데. 선생님 대하기가 어렵고 서툴러서 그랬을까, 서툴어서 그랬을까.
‘서툴다’는 ‘서투르다’의 준말. ‘서툴고, 서툴지, 서툴게’처럼 쓴다. 한데 준말은 모음으로 시작하는 어미(語尾)가 오면 ‘서툴어서, 서툴었고, 서툴었으니’로 쓰지 못하고 본딧말로 돌아가서 활용해야 한다. ‘서툴러서, 서툴렀고, 서툴렀으니’로 써야 한다는 얘기다.
‘김씨는 10년 전 대학 행정직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다.’ ‘내딛다’도 ‘내디디다’의 준말로 어미 활용법이 ‘서툴다’와 똑같다. 자음 어미가 오면 ‘내딛고, 내딛지, 내딛는’으로 쓰되, 모음 어미가 붙을 때는 ‘내딛어, 내딛을, 내딛음’이 아니라 ‘내디뎌, 내디딜, 내디딤’으로 써야 한다.
‘갖다(가지다), 머물다(머무르다)’도 마찬가지. ‘갖고, 갖지/머물고, 머물지’는 쓸 수 있으나 ‘갖아, 갖은/머물어, 머물었네’로는 쓸 수 없다(→’가져, 가진/머물러, 머물렀네’) ‘갖으면, 갖으니까, 갖음으로써’ 따위도 ‘가지면, 가지니까, 가짐으로써’가 맞는다.
‘그는 휴대전화에 매이기 싫어 300명 이상의 전화번호를 외어 버렸다.’ 앞서 살핀 규칙으로는 ‘외워’로 써야 할 듯하지만 ‘외우다’의 준말 ‘외다’와 ‘거두다’의’ 준말 ‘걷다’는 예외. 모음 어미가 와도 ‘외워/외어, 외웠지/외었지’ 두 형태 다 쓸 수 있다. ‘외어’ ‘외었지’는 다시 ‘왜’ ‘왰지’로 줄여 쓸 수 있다. ‘걷다’도 마찬가지로 ‘거둬/걷어, 거둔/걷은’ 모두 쓴다. 표준어 규정 제16항에서 두루 밝혀 놓았다.
학생 이름 잘못 써 마음 상하게 했다고 ‘아동 학대’니 ‘직무 유기’니 시달리는 선생님은 혹시 없을까. 상상 초월 행패가 무수히 벌어지는 현실, 서둘어 말고 서둘러 대책을 세워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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