똘똘한 비상장 자회사 덕에… ‘미운 오리’ 지주사들 반등
주가가 좀처럼 오르지 않아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았던 대기업 지주회사들의 주가가 최근 상승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계열사 주식을 갖고 있으면서 그 회사들의 사업 활동을 지배하는 회사인 지주회사는 그동안 만성적인 저평가에 시달렸다. 증권사가 기업의 목표 주가를 계산할 때 지주회사의 경우엔 순자산가치(NAV·기업 자산에서 부채를 뺀 것)의 40~50% 정도를 깎을 정도였다.
또 지주회사와 계열 자회사가 모두 상장돼 있는 경우에, 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직접 돈을 버는 자회사를 두고 지주사에 간접 투자할 유인이 크지 않다. 고객이 1개의 종합 선물 세트보다는 선물 세트 가운데 좋아하는 과자만 골라 먹으려는 심리와 비슷한 것이다. 그 때문에 국내 증권가에선 지주사 주가가 크게 오르기 힘들다는 분석이 많았다. 다만, 해외에선 지주사만 상장된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이런 문제가 없다.
그런데 최근 들어 ‘똘똘한’ 비상장 자회사 덕분에 지주회사의 주가가 오르는 모습이 국내 증시에서 나타나고 있다. 상장 자회사와 달리 비상장 자회사의 가치가 오롯이 지주회사에 반영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비상장 자회사 회복이 지주사 주가 견인
지난 4월 SG증권발(發) 무더기 주가 폭락 사태에 휘말린 CJ 주가는 7월 초 6만원 선까지 내렸는데, 14일 9만1000원까지 올랐다. CJ 주가 반등의 일등 공신은 비상장사인 CJ 올리브영이다. 올해 2분기(4~6월) CJ그룹 상장사인 CJ 제일제당과 CJ ENM의 매출이 각각 4%, 12%씩 감소하는 등 부진했는데도 시장이 CJ 올리브영의 고성장세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CJ올리브영의 지난 2분기 매출은 작년과 비교했을 때 41% 넘게 늘었고, 영업이익도 77% 가까이 증가했다. 최정욱 하나증권 연구원은 “코로나 시기 랄라블라, 롭스 등 경쟁사가 폐업하면서 시장점유율이 빠르게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CJ 주가가 더 탄력을 받을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최관순 SK증권 연구원은 “하반기에도 높은 성장세가 예상되는 CJ 올리브영 가치가 CJ 주가로 반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SK그룹의 지주회사 SK도 8월 중순 13만원대로 떨어졌다가 최근 14만원대 후반으로 반등했다. 에너지 가격 하락 등으로 재생 에너지 기업인 SK E&S의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이 작년 같은 기간 대비 45%가량 줄어드는 등 비상장 자회사의 실적이 부진해 주가가 내렸지만, 이 회사의 실적 개선 전망이 나오면서 주가가 반등한 것이다. 양일우 삼성증권 연구원은 “발전 설비 용량 확대에 SK하이닉스 이천과 청주의 LNG 유통까지 더해져 SK E&S의 내년 영업이익은 1조원을 웃돌 것”이라고 했다.
이 밖에도 비상장 자회사이자 제련 회사인 LS엠앤엠의 실적 개선이 지주회사인 LS 주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자회사 상장도 호재...상장 이후엔 유의
7월 초 5만6000원대에 머물던 HD현대도 7만원 근처까지 주가가 올랐다. 비상장 자회사인 HD현대오일뱅크의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90% 넘게 급감하는 등 ‘어닝쇼크’ 수준의 실적을 냈지만, 유가가 급등하면서 정제 이윤이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좋은 실적 흐름을 보이는 자회사 HD현대글로벌서비스의 기업공개(IPO)가 추진되는 점도 호재로 작용했다.
올해 하반기 IPO 시장의 ‘최대어’로 꼽히는 두산로보틱스의 상장이 임박하면서 모회사인 두산의 주가도 7월 초 8만원대에서 이달 12일 장중 16만6000원까지 치솟는 등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2023년 상반기 말 기준 두산이 보유한 두산로보틱스 장부상 가치는 860억원에 불과한데, 두산로보틱스 상장 이후 가치가 현재의 10배 이상으로 오를 것이란 관측 때문이다.
다만 시장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비상장 자회사의 상장 전까지는 지주회사의 주가 흐름이 좋지만, 상장 이후 주가는 변동성이 심한 모습을 보인다”며 “로봇주 등 테마주의 경우 과열 우려도 있는 만큼 투자에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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