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상륙’ 美노병 “반겨줬던 한국인들 생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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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엔 큰 건물이라 부를 만한 게 없었어요. 서울 상황은 최악이었죠. 72년 만에 다시 한국에 와서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된 모습을 보니 내가 그때 가치 있는 일을 한 것 같아 뿌듯합니다."
14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만난 빈센트 소르델로 씨(91·사진)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을 찾은 소감을 묻자 "온갖 감정이 다 든다"며 이같이 말했다.
소르델로 씨는 한국인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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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인천상륙 73주년 맞아 방한
“상륙 전날까지도 작전내용 몰라
그때로 돌아가도 다시 참전할 것”
14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만난 빈센트 소르델로 씨(91·사진)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을 찾은 소감을 묻자 “온갖 감정이 다 든다”며 이같이 말했다. 소르델로 씨는 6·25전쟁 당시 미 해병대 1사단 3대대 무기중대 소속 이등병으로 참전했다. 1950년 9월 15일, 6·25전쟁 전세를 역전시킨 인천상륙작전에 직접 참가하는 등 핵심 전선에서 북한에 맞서 한국을 지켰다. 그는 해군 초청으로 전날 입국했다. 15일 인천 앞바다에서 열리는 제73주년 인천상륙작전 전승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소르델로 씨는 작전 수행 당일을 떠올리며 “작전 전날까지 인천 상륙에 대해 듣지 못했다”고 했다. 이어 “방파제에 기어 올라가야 한다는 것도 몰랐다”며 “(그 사실을 듣고) 걱정은 됐지만 두렵진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불타는 건물과 항구의 수많은 배들이 생생하게 기억난다”고도 했다.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한 뒤 그는 김포비행장 탈환 및 서울 수복 등에도 투입됐다. 그는 “한국인들은 우리를 격렬하게 환영해줬다”며 “마포에 도달했는데 눈에 보이는 모든 게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승리할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고 했다.
이어 원산상륙작전과 장진호 전투, 흥남철수작전 등에도 참여해 중공군의 대규모 공세를 막는 데 기여한 뒤, 부상을 입어 1951년 4월 미국으로 돌아갔다. 23년간 군 복무를 한 그는 1971년 대위로 전역했다.
18세에 참전해 91세가 돼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나는 참전한 사실을 후회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과거로 돌아가도 똑같은 결정을 할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6·25전쟁 미군 참전용사인 재미교포 3세 앨프리드 김 씨(94), 정전 직후 한국에 파병 와 접경 지역 순찰 작전 등에 참여한 캐나다군 출신 로널드 포일 씨(89) 등도 소르델로 씨와 이번에 한국을 찾았다.
소르델로 씨는 한국인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나와 내 동료들이 옳은 일을 했다고 생각하게 해줘서 정말 감사합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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