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오타니의 양명학, 장훈의 주자학

김동규 (국제시사문예지 PADO 편집장) 2023. 9. 15.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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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류'(二刀流)의 오타니가 부진하다.

야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인 오타니 쇼헤이는 일본의 이상(理想)을 대표한다.

일본 야구의 '레전드' 장훈은 야구계 대선배로 "이도류는 신체에 무리가 되니 투수와 타자 중 하나를 택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오타니와 장훈을 보면 일본과 한국의 세계관이 어떻게 다른지 잘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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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규(국제시사문예지 PADO 편집장)

'이도류'(二刀流)의 오타니가 부진하다. 야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인 오타니 쇼헤이는 일본의 이상(理想)을 대표한다. 반면 재일동포 야구영웅 장훈은 한국적이다. 오타니가 투수와 타자를 겸하는 '이도류' 선수로 일본에서 휩쓸고 있을 때다. 일본 야구의 '레전드' 장훈은 야구계 대선배로 "이도류는 신체에 무리가 되니 투수와 타자 중 하나를 택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오타니는 이도류를 고집했고 금욕적이고 철저한 단련을 통해 위대한 업적을 쌓았다. 미국으로 건너가서는 메이저리그 최고선수상(MVP)까지 거머쥐었다. 올해 들어서도 시속 160㎞ 넘는 초강속구로 최고투수 경쟁을 펼쳤고 홈런부문에서도 선두를 다퉜다. 그의 활약은 '초현실적'이었고 일본 야구만화에나 나올 법한 것이었다. 그런데 여름에 접어들어 부진의 늪에 빠졌다. 몸에 탈이 난 것이다. 아직 오타니의 열정이 옳았는지 장훈의 냉정이 옳았는지는 모른다.

오타니와 장훈을 보면 일본과 한국의 세계관이 어떻게 다른지 잘 드러난다. 두 나라는 가장 가까이 있고 생김새나 언어나 식생활 등에서 가장 유사하지만 세계를 보는 관점은 세상에서 가장 다르다. 중국 명대 철학자인 왕양명을 따르는 학문은 오래됐지만 '양명학'(陽明學)이라는 이름은 근대 일본에서 탄생했다. 그리고 양명학적인 세계관은 오랫동안, 아니면 지금까지도 일본인들의 머리를 지배한다. 의지, 결단, 창의력 등 '인간중심'적 주관주의가 매우 일본적인 형태로 자리잡았다. 이는 '세상의 법도(법칙)', 진리, 필연성을 중시하는 한국적 세계관과 대조적이다.

독일의 법·정치 사상가로 카를 슈미트가 있다. 그의 사상을 '결단주의'라고 하는데 이 사상의 반대쪽에 있는 것이 자연법이다. 어느 나라가 건국한 후 길에서의 좌측통행과 우측통행을 놓고 논의하고 있다. 슈미트의 관점에선 진리는 없고 '합의'해서 '결단'하면 되는 문제다. 반면 자연법론자들은 좌측과 우측 중 어떤 것이 자연에 걸맞고 인간 법도에 걸맞은가를 고민한다. 일본인들은 결단주의적이다. 그래서 다른 나라가 뭐라든 자기네들끼리 합의해서 결단할 뿐이다. 합의와 결단은 잘한다. 길에서의 통행은 합의와 결단만으로 충분하지만 다른 문제에서는 충분치 않다. 내부합의가 바깥세상과 불화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인들은 진리를 합의 위에 놓는다. 그래도 바깥세상을 의식하기에 그렇게 위험한 합의를 이끌어내진 않는다.

일본 미술가로 무라카미 다카시가 있다. 그의 그림은 매우 창의적이지만 인간의 신체나 자연을 왜곡해 오랫동안 두고 보기엔 너무 그로테스크하다. 건축으로 말하면 창의적인 건축물이지만 물리학적 법칙에 어긋나 쉽게 무너진다고나 할까. 의지와 창의를 중시하는 '인간중심' 사상에도 옳은 부분이 있다. 반면 조심스럽고 밋밋하지만 자연의 법칙성을 중시하는 '자연중심' 사상에도 분명 옳은 부분이 있다. 어쩌면 일본과 한국 사이에 놓인 세계관의 '현해탄'을 먼저 파악하는 작업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오타니의 이도류가 꽃을 한번 피웠으니 이제는 장훈의 조언에 따라 무리하지 않고 롱런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김동규 (국제시사문예지 PADO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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