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강하의 대중문화평론] 반려돌과 동거, 그 알뜰하고 쓸쓸한 사랑

유강하 2023. 9. 15.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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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소리도 요구도 없이 늘 곁에 있는 독특한 관계
반세기 전 미국서 등장한 ‘펫락’
돌멩이에 눈·코 그리거나 모자 착용
차가운 돌에 표정·온기 생겨나
관계맺기 불편하지만 바라는 마음
양육일기 작성 스토리텔링 첨가
반려동물·식물 끊임없는 관심 필요
반려돌 고민·한숨 제거된 관계 가능
일방통행의 소통 흐름 여전히 쓸쓸

‘반려돌’, ‘애완돌’이 마니아층에서 유행중이다. 반려돌의 ‘돌’이 대체 무엇인지 궁금증이 생기는데, 문자 그대로 길을 걷다가 언제, 어디서든 만날 수 있는 풀보다 평범한 ‘돌’(stone, 石)이다. ‘쓸모없음’의 대명사인 ‘돌’과 ‘반려’라는 단어의 생경한 조합만으로도 기이함이 묻어나는데, 놀라운 건 ‘반려돌’이 완전히 새로운 등장이나 유행이 아니라는 것이다.

최초의 반려돌인 ‘펫락(Pet Rock)’의 등장은 거의 반세기 전, 미국의 게리 달(Gary

Dahl)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알려진다. 부드럽고 둥근 곡선을 가졌기에 사람들의 반려‘물’이 될 수 있었던 돌멩이들의 인기는 정말 높았고, 덕분에 게리 달도 성공한 사업가가 될 수 있었다. 펫락의 인기는 초반처럼 엄청나지는 않지만, 지금도 여전히 거래되고 있는 중이다. 이쯤 되면 무자본 창업이 가능한 신박한 사업 아이템이라고 부를 만하다.

무자본 창업이라고 하더라도 사업인 만큼, 돌멩이 하나만으로는 경쟁이 쉽지 않다. ‘반려돌’을 아이템으로 한 판매자들은 반려돌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포함해 패키지 상품으로 판매한다. 손재주가 좋은 판매자들은 돌멩이의 모양에 눈이나 코를 그려 넣기도 하고, 다양한 미술 재료로 머리카락이나 모자를 덧붙여 개성을 한껏 살린다. 딱딱하고 차가운 돌멩이에 다양한 감정이 표현되면서 반려돌에는 표정과 온도가 생겨난다.

‘키운다’, ‘동거한다’라는 말을 과연 써도 되는지의 고민이 무색할 정도로, 반려돌을 반려 대상으로 선택한 사람이 제법 많다. 마치 육아일기를 쓰듯, 반려돌 양육 일기를 쓰는 ‘반려자’들도 있다. 반려돌이라는 신박한 아이템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스토리텔링이 더해지고, 때로 웃음이 절로 나는 지침서도 동봉된다. 반려돌과 지내는 어떤 지침서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하루에 한 번씩 쓰다듬어 주라, 하루의 이야기를 반려돌에게 들려주라,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비밀 이야기를 해보라.” 반려돌과 이런 다정한 관계 맺기를 할 뿐만 아니라, 반려돌과 산책을 나서기도 한다. 키우다 보면, 돌이 실제로 ‘성장’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반려돌 또는 애완돌을 ‘입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일기를 읽고 있자니, 그 입양 동기와 과정이 궁금해진다. 반려돌이 반려 대상이 된다는 건 대체 어떤 의미일까. 흔한 돌멩이를 ‘구매’하기 위해 버튼을 클릭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상상해본다.

혼자 집에 들어와 반려돌에게 말을 걸고, 반려돌과 산책을 하는 사람들의 일기와 글에는 만족감이 드러난다. 가장 큰 만족감은 덜 외로움을 느낀다는 데 있다. 사람들은 책상 위에, 침대 옆에 동글동글 놓인 돌에게 말을 건다. 처음에는 어색하겠지만, 매일 같은 과정이 반복되면서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간다. 말을 걸고, 반려돌에게 하루의 일상을 나누고,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이야기를 반려돌에게 건네다 보면, 답답했던 마음이 풀리고 위안을 얻게 될지도 모르겠다.

반려돌 또는 애완돌의 입양은 사람과 사물의 연결이라기보다는 인간의 본질, 그러니까 사람이 ‘관계적 존재’임을 재확인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혼자’는 쿨하고, 거칠 것 없고,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아 자유롭겠지만, “외롭다.” 반려돌의 입양은 누군가와 ‘관계 맺기’에서 기인하는 불편함을 피하고 싶으면서도, 여전히 관계 맺기를 바라는 마음 어딘가에서 자라난 선택일 수도 있겠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생겨나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사람들은 기쁨과 행복도 느끼지만, 상처도 받고 슬픔과 분노를 느끼기도 한다. 예측할 수 없는 다양한 온도와 질감의 말[言]과 시선이 오가는 관계 속에서 사람들은 쉬이 지친다. 인간관계에 지친 사람들이 선택하는 ‘반려’ 대상에는 반려동물과 반려 식물도 있지만, 이들은 끊임없이 관심을 갖고 돌봐줘야 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의무감과 책임감을 요구한다. 그런데 반려돌과의 동거는 관계 속에서 생겨나는 갈등과 상처, 고민과 한숨이 제거된 알뜰한 사랑이다. 이런 면에서 보자면 반려돌은 최적의 관계 맺기 대상이라고 할 만하다.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아무 잔소리도 하지 않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곁에 있으니 말이다. 반려돌의 유행은 이러한 ‘편리함’의 관계성의 독특함에 기인한다. 반려돌과 반려자(또는 보호자)의 관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관계는 “일방적 방향성”을 가진다는 특징이 있다. ‘돌’에게는 구매자(또는 보호자, 양육자, 반려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단 한 순간도, 단 한 번도 거절할 수 없는 방식의 관계가 ‘부여’된다. 반려돌의 반려자(또는 보호자)가 된다는 것은 덜 외로울 수 있고, 덜 지칠 수 있겠지만, 소통의 흐름은 한 방향을 지향하고 있을 뿐이다.

그 사랑은 편리하지만, 여전히 쓸쓸하다. 만약 반려돌에게도 선택의 기회가 있다면, 그들은 반려자(또는 보호자)가 없는 빈 공간에서 그저 기다리는 결정을 했을까. 반려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면, 반려자의 알뜰하게 일방적인 사랑이 버겁고 고단할지도 모를 일이다. 강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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