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홍 칼럼]尹의 ‘이념 드라이브’, 우경화 아닌 ‘정상화’가 목적지다

이기홍 대기자 2023. 9. 14.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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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들 “선명한 외교 방향 설정과 이념 강조는
정치적 포석 아닌 尹 개인 사명감의 발로”라 설명
목표대로 ‘좌파정권 비정상의 정상화’ 이루려면
벼랑길 운전하듯 세밀하고 균형감 잃지 말아야
이기홍 대기자
최근 연이어 이념을 강조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행보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궁금증을 요약하면 ①대통령의 정치적 의도는 무엇인가 ②‘이념 드라이브’로 중도층이 멀어지는 것 아닌가…등이다.

①번 궁금증과 관련해 여러 언론이나 전문가들은 “보수진영 대주주로서 그립을 꽉 쥐기 위해” “총선 지지층 결집을 위해” 등의 정치적 포석이라는 해석을 주로 내놓는다.

하지만 필자가 접촉해 본 윤 대통령에 대해 잘 아는 인사들의 해석은 달랐다. 이 시대에 반드시 해야 하는 일종의 사명이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수의 입맛을 맞출지 주판알을 굴려 선택한 결과물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특히 한미일 공조체제를 핵심으로 하는 외교안보 노선은 대한민국이 살기 위해 가야만 하는 길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런 판단에는 서강대 이상우 명예교수를 비롯해 국제정치의 엄혹한 현실을 강조하는 학자들의 이론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공산전체주의’ 비판 등 이념 강조도 문재인 정권 5년간 이탈한 대한민국의 궤도를 되돌려 놓아야 한다는 사명감 차원이라는 설명이다. 윤 대통령의 그런 판단과 신념이 옳든 틀리든, 이를 지지하든 증오하든 그의 이런 특성을 모른 채 대응하면 오판이 될 것이라는게 지인들의 설명이다.

그러면 궁금증 ②번, 이념 드라이브는 중도층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보수 내부에서도 이념적 입지를 좁히면 중도층을 잃게 된다는 우려가 나온다.

하지만 이 문제는 보다 정교하게 접근해야 한다. 이념적 스탠스라는 광의의 개념 속에서 정치·역사·체제의 정체성을 의미하는 이념과 그밖의 인물, 지역 지지 기반, 경제사회 정책 등의 주제들은 구분해서 분석해야 한다.

선거가 다가오면 인물은 더 포용하고, 지역 기반도 넓히고, 경제사회 정책도 중간으로 가는게 유리한 건 맞다.

하지만 국가 정체성, 외교안보, 역사 관점 같은 정치적 이데올로기 사안에 대해 분명한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 선거에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유불리의 관점 자체가 무의미하다. 이념·방향성 강화는 중도층 포섭과 층위가 다른 사안인 것이다.

윤 대통령 취임 직후 중도층이 대폭 이탈한 주된 이유는 보수 이념이 싫어서가 아니다. 자영업자와 서민들은 경제 상황이 계속 안 좋은데 이걸 헤쳐나갈 리더십에 대한 신뢰와 비전이 안 보여 지지를 철회했다.

문재인 정권은 이런 난제가 닥치면 당장의 마약 같은 돈 풀기 처방을 내려 보수정권이 쌓아놓은 금고를 탕진했지만 윤 대통령은 그런 유혹을 이겨내고 있다. 선거 유불리를 떠나 긴축재정을 유지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의지가 끝까지 지켜진다면 훗날 높게 평가받을 것이다.

지지율이 떨어진 또 하나 큰 요소는 2030세대의 이탈인데, 이 역시 이념적 스탠스 때문이 아니다. 대선 때는 세대연합으로 재미를 봐놓고 선거가 끝나자 마자 2030을 후순위로 밀어낸 탓이 크다.

중도층과 무당층, 특히 2030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이념의 내용보다 구현 과정의 공정성이다.

그런 점에서 윤 대통령의 이념 드라이브는 문 정권의 대한민국 갈아엎기와 근본적으로 달라야 한다.

역사 바로 잡기에서도 좌파와의 질적 차이를 보여줘야 한다. 좌파권력의 역사 장악은 이중잣대, 균형 상실로 요약된다.

최근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을 놓고 좌파에서 ‘부관참시’ 운운하지만 사실 현대사 부관참시는 좌파의 전유물이다.

평생을 독립운동 지원과 민족자강에 헌신했던 민족지도자들이 그 시대를 살아보지도 않은 수십 년 후 좌파 인사들에 의해 ‘친일파’로 낙인찍혔다. 일제 강점기 말 불가항력으로 생긴 한두 가지 흠집을 파헤쳐 평생 쌓아온 공적을 싸그리 뒤집어버리는 수법이었다. 해방 직후 반민특위는 물론 동시대인 누구도 문제 삼지 않고 존경했던 지도자들을 느닷없이 친일파로 몰아붙여 현대사의 정통성을 소매치기했다. 그러면서 같은 흠집이 있어도 좌파계열 지도자라면 면죄부를 주는 이중잣대를 들이댔다.

우파는 이성과 합리성을 바탕으로 한다. 역사적 인물의 평가는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진영에 관계없이 동일하고 공정한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

홍범도 장군이 자유시참변, 소련 공산당 입당 등의 흠결이 있다고 해도 뚜렷한 독립운동 족적은 그것대로 존경받고 기려져야 한다.

흉상 이전은 육사의 정체성과는 맞지 않으므로 독립기념관이라는 명예롭고 더 적절한 장소로 정중히 옮기는 차원 이상도 이하도 아니어야 한다.

좌파 일각에서는 집권세력 내 누군가가 홍범도 장군을 아예 독립운동사에서 퇴출시키고 흉상을 파기해버리자는 과격 언행을 해주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을 것이다. 역사바로잡기를 친일로 몰아가기 위해서다.

족보를 멋대로 바꾸듯 국군 창설의 역사와 정신마저 분칠하려고 육사 내 흉상을 고집한 문 전 대통령의 이념적 아집이 결과적으로 홍범도 장군을 욕보인 것이다.

최근 박민식 보훈부장관과 문 전 대통령 간의 소송전으로 비화된 문재인 부친 논란도 마찬가지다. 박 장관의 취지는 문 전 대통령 부친이든 백선엽 장군이든 누구든 일제하에서 태어나 그 체제를 절대적 숙명적 조건으로 여기며 자란 20대 초반 청년들이 그 체제에서 공무원이나 군인의 진로를 택한 것을 무조건 친일행위로 매도해선 안된다는 것이었음을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윤 대통령 부친이 일제시대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면 좌파진영은 친일파 시비를 걸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파는 그래선 안된다. ‘너희가 그러니 우리도 그런다’가 아니라. ‘너희가 권력을 쥐었을 때 자행한 그런 행태를 바로 잡겠다’가 되어야 한다.

역사뿐만 아니라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에 문 정권이 내지른 배설물이 놓여 있다.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목적지를 향한 길은 평탄대로가 아니다. 벼랑길을 운전하는 신중함과 세밀함, 균형감각을 대통령실과 내각, 여당 모두 갖춰야 한다.

윤 대통령은 옳다고 생각하면 밀어붙이는 직진형이라고 한다. 사명감과 뚜렷한 방향성도 중시한다. 그런 확신 사명감은 자칫 불통을 낳을 수도 있다.

요즘 윤 대통령이 사석에서 자주 인용하는 골프 용어로 비유하면, 문재인 정권이 내지른 악성 훅 OB(공이 왼쪽으로 심하게 휘어 경기장 밖으로 나가버리는 것)를 고치려다 너무 힘을 주면 슬라이스(오른쪽으로 심하게 휘는 것)가 난다. 유연함과 균형감을 잃지 않아야 공이 곧게 간다. 지도자의 유연함은 허리나 관절이 아닌 귀에 달려 있다.

이기홍 대기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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