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시한의말글못자리] ‘축제’라는 말

2023. 9. 14.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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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축제의 계절이 돌아왔다.

각 단체가 특징을 부각하고 실적을 쌓기 위해 경쟁하듯 만들었는데, 실제 과정과 내용을 보면 축제라기보다 실리적 목적으로 벌이는 행사, 곧 '이벤트'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물론 축제의 모습이 일정하지 않고 옛것을 그대로 따름이 최선도 아니나, 그 개념에 부합하는 무엇을 찾기 어려운 '관제 행사'가 다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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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축제의 계절이 돌아왔다. 지자체들이 빠짐없이 벌이는 요란한 행사가 가을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지역의 장소, 특산물 등에 항상 ‘축제’라는 말이 붙어 있어 명칭대로 부르지만, 과연 적절한지 의문이다. 말에는 역사와 문화가 배어 있고, 그것을 사용하는 현재의 풍속과 욕망이 관여한다. 말도 현실도 변하므로 둘의 어울림을 따지기는 쉽지 않으나, 그러는 가운데 실상이 드러나고 나아갈 길이 열릴 것이다.

축제(祝祭)는 축하의 제전이다. 그것은 인류가 아득한 예로부터 뜻 깊은 일을 기념하던 제사에서 비롯되었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일정한 때와 장소에 모여 초월적 존재에 감사하고 안정과 번영을 축원하며 함께 놀았기에 ‘잔치’와 ‘놀이’의 성격도 아울러 지니고 있다. 그래서 올림픽이 고대 그리스의 제우스 제전에서 비롯되었듯, 축제는 운동 경기, 연극을 비롯한 여러 예술, 한가위(추석) 같은 세시 풍속 등의 기원이 되었다. 세월이 흐르며 많이 바뀌었지만, 그것은 기독교 문화권의 카니발(사육제), 한국의 단오제 따위에 그 원형적 모습이 남아 있다.

한국에서 ‘축제’가 흔해진 것은 기초 지방자치단체가 구성된 1990년대 후반부터로 보인다. 각 단체가 특징을 부각하고 실적을 쌓기 위해 경쟁하듯 만들었는데, 실제 과정과 내용을 보면 축제라기보다 실리적 목적으로 벌이는 행사, 곧 ‘이벤트’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물론 축제의 모습이 일정하지 않고 옛것을 그대로 따름이 최선도 아니나, 그 개념에 부합하는 무엇을 찾기 어려운 ‘관제 행사’가 다수이다. 연예 공연으로 사람을 모으며 칸막이를 여럿 해놓고 전시나 판매에 치중하는, 지역민은 단지 ‘먹고 노는 판’의 손님에 불과한 예도 여럿 보았다. 전문 기업이 기획한 듯 보이는 그런 ‘축제’는 실체와 매우 거리가 있는, 어쩌면 다른 정체를 감추기 위한 거짓 기호에 불과하다. ‘개성’, ‘인권’, ‘환경보호’ 등과 같이 우리 사회에 그득한 말뿐인 허상들이 대개 그렇듯이.

오늘날 축제의 핵심 요소로 이어받을 점은 주민의 참여와 소통이 아닌가 한다. 무엇을 축원하고 자랑하든, 그 마당에서 벌이는 행사의 준비와 실행 과정에서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고 청소년한테 지역 문화를 전승할 때, 비로소 축제라고 부를 수 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말의 허상을 깨고 현실을 개혁하는 하나의 실천이 될 터이다.

최시한 작가·숙명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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