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예산 삭감 불똥 튄 중이온가속기
1조5000억원 들인 ‘라온’…“내년 6개월 이상 가동 힘들 듯” 주장 나와
한인식 연구단장 “해외서도 유례 없어…연구자 이탈하면 회복 어려워”
1조5000억원이 투입돼 건설된 기초연구시설인 중이온가속기 ‘라온(RAON)’이 정부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의 여파로 내년에 6개월밖에 가동될 수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정부는 지난달 29일 내년 정부 예산을 발표하면서 R&D 예산을 올해보다 16.6% 줄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인식 기초과학연구원(IBS) 희귀 핵 연구단장은 14일 서울역 회의실에서 열린 과학미디어 아카데미에 참석해 “예산이 대폭 삭감돼 중이온가속기를 내년에 6개월 이상 돌리기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2021년 완공된 대전 소재 기초연구시설인 중이온가속기는 부지 면적만 무려 95만㎡다. 축구장 137개, 여의도 면적의 3분의 1 크기다.
이 장치는 중이온을 전기의 힘을 이용해 빛 속도(초속 30만㎞)의 절반까지 밀어붙인 뒤 비교적 가벼운 이온을 우라늄 같은 무거운 표적 물질에, 반대로 무거운 이온을 탄소 같은 가벼운 표적에 충돌시킨다. 이렇게 하면 그동안 발견되지 않았던 ‘희귀 동위원소’를 찾을 수 있다.
이런 희귀 동위원소는 우주에 있는 미지의 암흑물질을 규명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손실이 일어나지 않는 전기 저장 기술을 찾는 것도 가능하다. 인체를 손상시키지 않는 암치료용 동위원소를 탐색하고 새로운 품종의 작물을 만들 수도 있다. 중이온가속기는 지난 5월 저에너지 구간 시운전에 성공했다.
한 단장은 “R&D 예산을 16% 삭감하는 것은 해외에서도 유례가 없다”며 “연구자들이 한번 이탈하면 다시 돌아오기 힘든 만큼 회복되기 힘든 수준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미 과학기술계에선 R&D 예산 삭감 여파가 정부 지원을 받는 연구기관과 기초연구계를 중심으로 밀어닥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날 한 단장의 발언과 관련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내년 중이온가속기는 정상 운영될 예정”이라며 “상세한 운영 일정은 제반 사항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추후 확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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