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인권문제 알린다는 윤 정부, 강제동원·위안부 문제 숨기기 급급
[이재호 기자(jh1128@pressian.com)]
민주주의와 인권 등 보편적 가치를 중시하며 국제사회에 북한 인권 문제를 널리 알리겠다는 윤석열 정부가 정작 일제강점기 당시 벌어진 인권 침해 문제에 대해서는 숨기기에 급급한 행태를 보였다.
13일(이하 현지시각)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54차 유엔 인권이사회 3일차 세션에서 파비안 살비올리(Fabián Salvioli) 유엔 진실, 정의, 배상 및 재발방지 증진에 관한 특별보고관(Special Rapporteur on the promotion of truth, justice, reparation and guarantees of non-recurrence, 이하 '특별보고관')은 '대한민국 방문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해당 이사회 및 세션에 참석한 한국 NGO(비정부기구) 대표단에 따르면 살비올리 특별보고관은 이 보고서에서 일본인 '위안부' 피해자 및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등 인권침해를 당한 피해자들이 고령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한국 사회에서 과거사 청산이 "국가의 시급한 과제이자 의무"임을 강조했다.
그는 이어 한국 내 과거사청산을 위한 통합적 법체계가 부재하고, 배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관련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 명시적인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살비올리 특별보고관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유엔 인권 메커니즘은 이 합의가 국제 인권 기준을 준수하지 않는 것에 대해 우려를 제기하고 피해자들의 의견을 고려할 것을 촉구했다"고 밝혔다.
살비올리 특별보고관은 권고사항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성노예제 생존 피해자들이 국제 기준에 따라 진실, 정의, 만족을 포함한 배상, 재발 방지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2015년 12월 28일 일본과 대한민국 간의 합의를 개정한다"라고 명시했다.
그는 위안부 피해자와 함께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문제도 보고서에 적시했다. 살비올리 특별보고관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지난 2018년 일본 신일본제철과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대법원 승소한 사실을 언급하며 "대한민국 법원이 강제징용 피해자를 법적으로 인정한 최초의 판결"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2023년 3월 6일, 대한민국은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의 혜택을 받은 대한민국 민간 기업의 기부금으로 조성된 공익재단을 통해 원고들에게 제3자 배상금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라며 이 결정에 대해 일부 피해자들의 반발을 언급하기도 했다.
살비올리 특별보고관은 "이 방안에 한국 법원이 배상금 지급을 명령한 일본 기업의 출연금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 일본 기업에 법적 책임 면제를 부여했다는 점, 일본의 사과를 요구하지 않았다는 점, 일부 피해자들의 동의가 부족했다는 점"등이 지적됐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도 비슷한 우려를 제기했다면서 "(한국) 정부는 피해자를 포함한 시민사회단체 대표와 정부 간의 협의 내용을 보고했으며, 피해자의 3분의 2가 합의에 동의했다고 보고했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정부는 일본 제국주의 피해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조치를 채택했다"면서도 "일본과 양자 협상은 피해자들의 구제 및 배상에 대한 권리를 효과적으로 증진시키는 인권적 접근이 부족했으며, 2015년 합의와 2013년 아미쿠스 브리프의 함의와 같은 일부 사례에서는 이러한 권리가 축소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양자 간 협상에서 피해자를 우선순위에 두지 않는 한, 피해자들은 여전히 구제를 받을 수 없다"며 "정부는 이 시급한 과제를 시급히 달성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윤석열 정부는 일본과 합의에 의해 이미 마무리된 사안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윤성덕 주제네바 대한민국대표부 대사는 '진실, 정의, 배상 및 재발방지에 관한 특별보고관의 보고서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 의견서'에서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한국 정부는 2015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를 양국 간 공식 합의로 인정하고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고 심리적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강제동원 문제와 관련해 '공식 사과'라는 제목의 단락에서 "기시다 총리는 2023년 3월 16일과 5월 7일 한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비롯한 역대 내각의 역사인식 계승을 확인했다"며 이를 공식적인 일본의 사과라고 규정했다.
이어 그는 "기시다 총리는 5월 7일 한일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에서도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해 '당시 열악한 환경 속에서 많은 분들이 어려움과 슬픔을 겪은 것에 대해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며 일본 측이 사과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이에 대해 이번 이사회에 NGO대표단으로 참여한 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을위한정의기억연대와 민족문제연구소는 14일 발표한 입장문을 통해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인정과 공식 사죄, 배상을 줄기차게 요구해온 피해자들의 의견을 전혀 반영하지 않고, 국제 인권기준에도 부합하지 않아 이미 사망선고를 받은 '2015 한일합의'를 또다시 되살리려는 한국 정부의 반역사적이며, 반인권적인 태도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반발했다.
이들은 기시다 총리의 5월 7일 발언을 한국 정부가 보고서에서 언급한 데 대해 "당시 일본 정부는 기시다 총리의 발언이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가 아니며 기시다 총리의 개인적인 입장이라는 점을 명확히 밝힌 바가 있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유엔에 제출한 공식 보고서를 통해 이를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로 인정한 것"이라며 "가해자는 사과하지 않았다는데, 피해자는 사과를 받았다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다시 재연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들은 "이는 '2015 한일합의'를 일본군성노예제 문제에 대한 '최종적 불가역적인 해결'이라고 강변해온 일본 정부 입장을 그대로 대변하는 것이며, 강제동원 문제는 '제3자 변제'로 끝난 것처럼 착각하는 윤석열 정부의 대일 굴욕외교를 그대로 반영한 또 하나의 '외교적 참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NGO 대표단은 14일 열리는 이사회 4일차 세션에 참여해 정부 입장을 비판하고 특별보고관의 권고사항을 이행할 것을 촉구했다. 대표단은 4.9통일평화재단, 민족문제연구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을위한정의기억연대, 천주교인권위원회 등으로 구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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