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골공원, 조선시대 시간과 방위 측정의 기준점이었다”
공원 관련 다양한 해석 나와
백탑파·개화파 개혁 논의도
구 “논의 바탕으로 정비 추진”
시계가 흔치 않았던 조선시대, 한양 어디서나 쉽게 보였던 남산 봉우리에 해가 걸리면 정오였다. 하지만 관측자와 지형물 방위에 따라 달라지는 태양의 위치는 어디를 기준으로 고정했을까. 조선시대 원각사 자리인 탑골공원이 그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궁궐과 종묘에서 멀지 않고 백성들도 쉽게 찾을 수 있어 관측과 접근성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종로YMCA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탑골공원 성역화 학술대회’에서는 공원 위치와 건축물 의미에 대한 다양한 시각이 소개됐다. 15일까지 이틀간 진행되는 학술대회는 탑골공원 성역화 발기인회에서 개최했다. 공원 담장과 원각사지 10층 석탑의 보호각을 없애 공간을 개방하는 전환 작업을 하고 있는 종로구가 발족한 단체다.
종로2가 탑골공원은 대한제국 시절인 1897년 조성된 첫 공원으로 3·1운동의 근거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우선 인하대 임정규 교수와 한국천문연구원 양홍진 박사는 조선의 천문학·지리학 연구에서 탑골공원을 기준으로 삼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근거들을 제시했다. 태양이 남산 가장 위에 떴을 때 높이 솟은 원각사 석탑의 그림자는 방향 기준이 돼 이에 따라 도성의 남북선이 놓이고 동서 기준선도 정해졌을 것이라는 가설이다.
한양전도를 보면 경복궁을 비롯해 종묘와 창덕궁 등 주요 장소 아래에 있는 남북 방향 도로는 남산과 탑골공원을 잇는 남북 자오선과 수평하게 배치돼 있다. 동서대로(東西大路) 역시 원각사 터를 기준으로 수직 교차한다.
조선시대 원각사가 있던 공원의 위치에 대해 정치·사회적 권력 구도로 접근한 연구도 나왔다. 반정으로 왕이 된 세조가 정권의 정통·도덕성을 확보하기 위해 불교를 동원해 권위를 확립하고, 백성을 위로·화합하는 공간으로 궁궐 앞에 사찰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최건업 한국불교학회 이사는 “법회와 빈민구휼의 장소였던 탑골공원 위치는 한양의 중심지였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시대별 개혁이 논의됐던 탑골공원 공간성에 대한 조망도 이뤄졌다. 18세기 조선 후기 박제가·박지원·유득공·이덕무 등 ‘백탑파’가 토론한 장소였고 당초 파고다공원 건립을 제안한 개화파의 철학이 공유된 장소라는 것이다.
최철호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장은 “‘인간화’를 주장한 개화 지식인들은 대중 의견을 표출하는 민주 공간으로서 공원을 제공하려 했다”며 “고종도 관민공동회와 만민공동회 전후 근대의식을 지닌 민중 불만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종로구는 학술대회를 통해 이뤄진 연구 등을 바탕으로 문화재청 및 서울시와 협의해 탑골공원 정체성을 회복하고 공간적 특성을 살리는 방식으로 공원 구조를 바꾸는 정비를 추진할 예정이다.
김보미 기자 bomi8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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