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 청소로 담임교체 요구…대법 “교권 존중돼야”

진선민,이호준 2023. 9. 14.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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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교권 침해 논란과 관련해 오늘(14일) 대법원에서 의미 있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수업을 방해한 아이의 이름을 칠판에 붙이고 벌 청소를 시켰다는 이유로 학부모가 담임 교체를 요구하고 아동학대로 고소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2년 넘게 이어진 법적 분쟁 끝에, 대법원은 학부모의 지나친 간섭과 요구는 교권 침해가 맞다며 교사 측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먼저 진선민 기자입니다.

[리포트]

30년 넘게 초등학교 교사로 일해온 A 씨.

2년여 전, 초등학교 2학년 담임을 맡았을 때, 수업을 방해한 학생을 훈육했습니다.

생수병으로 소리를 내며 계속 장난을 쳐서 이름표를 칠판 레드카드 칸에 붙이고, 방과 후 14분 동안 교실 청소를 시킨 겁니다.

[교사 A 씨/음성변조 : "아이들의 문제 행동을 개선하기 위한 그냥 하나의 방법이었지, 학대하기 위한 것도 아니었고…."]

그런데 학생이 하교한 직후 학부모가 학교로 찾아왔습니다.

담임이 아동학대를 했다면서 교체를 요구했고, 아이를 사흘 간 결석시키기도 했습니다.

A 교사는 스트레스로 일시적으로 기억상실 증상을 보여 119로 이송되기도 했지만, 학부모는 몇달 간 지속적으로 담임 교체를 요구했습니다.

[교사 A 씨/음성변조 : "119가 왔어요. 근데 안 탄다고 그러더래요. 저는 그날 상황이 전혀 기억이 안 나요."]

학부모의 문제 제기가 교육청 민원 접수에 경찰 고소로까지 이어지자, 해당 학교 교권보호위원회는 학부모가 반복적이고 부당한 간섭으로 교육활동을 침해했다며 간섭을 중단하라고 권고했습니다.

학부모 측은 이에 반발해 법원에 교권보호위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냈습니다.

A 교사는 이 와중에 인권 교육을 받아야 했고, 아동학대로 기소유예 처분까지 받았습니다.

[교사 A 씨/음성변조 : "항상 두렵고 억울하고 어디 가서 하소연할 데도 없고 도와주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자기한테 불똥이 튈까 봐…."]

학부모 측의 소송에 1심은 교권 침해가 맞다고 판단했지만, 항소심은 학부모 손을 들어줬고, 대법원은 오늘 2년 만에 교권 침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KBS 뉴스 진선민입니다.

촬영기자:정성수/영상편집:이현모/그래픽:박미주

[앵커]

대법원은 학부모가 교육 활동에 불만이 있더라도 의견 제시는 교권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교권이 무엇이고, 어디까지 존중돼야 하는지 대법원이 처음으로 기준을 제시한 겁니다.

이어서 이호준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A 교사 사건을 놓고 항소심은 학부모 손을 들어줬습니다.

학생에게 경고를 주는 이른바 '레드카드제'는 정당한 교육 활동이라고 볼 수 없어 학부모의 문제 제기가 부당한 간섭이 아니란 취지였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학부모가 간섭한 건 '레드카드제'가 아니라 교사의 직무 수행 전체였다며 항소심 판단을 뒤집었습니다.

대법원은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을 규정한 헌법 31조를 근거로 들며, 전문적이고 광범위한 재량이 존재하는 학생에 대한 교육 과정에서 교사의 판단과 교육 활동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존중돼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또 학부모가 자녀 교육에 의견을 제시할 순 있다면서도 이런 의견 제시는 교원의 전문성과 교권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담임 교체에 대한 의견을 낼 순 있지만, 다른 수단을 써봐도 안 되는 '비상 상황'에 한해 허용해야 한다는 겁니다.

[정은영/대법원 재판연구관 : "(교사의) 정당한 교육 활동에 대한 반복적이고 부당한 간섭은 허용될 수 없다는 점을 처음으로 명시적으로 선언한 판결입니다."]

교원 단체들은 대법원이 교사의 재량권을 폭넓게 인정했다며 환영했고, 이번 판결이 교권 회복의 출발점이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조성철/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 : "이번 대법 판결은 무분별한 악성 민원에 대해서 경종을 울리고, 부당한 담임 교체는 교권을 넘어서 학습권 침해라는 인식도 분명히 밝히는 판결이라고 봅니다."]

A 교사는 레드카드 제가 아동학대라며 기소유예한 검찰 판단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한 상태입니다.

KBS 뉴스 이호준입니다.

촬영기자:조세준/영상편집:김지영/그래픽:강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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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선민 기자 (jsm@kbs.co.kr)

이호준 기자 (hojoon.le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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