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교육청, 659억 들여 스마트 기기 사놓고 학생 대여 ‘강권’
수요 조사 없이 우선 구매 후
분실·고장 책임 학부모에게
비용 부담 이유로 부정 평가
고등학생 신청률 39% 그쳐
중·고등학생에게 노트북이나 태블릿PC를 1대씩 대여해주는 광주시교육청 사업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시교육청은 이미 예산 659억원을 들여 학생 수에 맞춰 스마트 기기를 구매했지만, 학부모 10명 중 4명은 대여에 동의하지 않았다.
광주시교육청은 “관내 중학생과 고등학생 전원을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는 ‘스마트 기기 보급’ 사업에 중학생 3만8019명과 고등학생 1만6838명의 학부모가 ‘대여 동의서’를 제출했다”고 14일 밝혔다.
스마트 기기를 대여받아 사용하겠다고 밝힌 중·고교생은 전체 8만5892명 중 64%에 그쳤다. 중학생(4만3084명)은 86%가 대여 동의서를 냈지만, 고등학생(4만2802명)은 39%만 대여를 신청했다.
광주시교육청은 중학생에게는 노트북, 고등학생에게는 태블릿PC를 지급할 방침이다.
교육청이 지난 7월 659억원을 들여 전체 학생 인원수에 맞춰 노트북과 태블릿을 구매해둔 만큼 상당수 제품은 포장도 뜯지 못한 채 방치되게 됐다. 학생들에게 지원되는 스마트 기기는 중학생의 경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고등학생은 학교 졸업 때까지 사용한 뒤 반납해야 한다.
교육청은 게임이나 유해 사이트에 접속하지 못하도록 했고 노트북에는 자정에서 오전 6시까지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설치했다.
하지만 교육청이 기기를 구매한 뒤 학부모 동의를 받아 ‘대여’해주는 형태여서 시작부터 논란이 됐다. 기기를 대여받으려면 학부모들은 반드시 동의서를 작성해 제출해야 한다.
특히 대여 기기를 분실하거나 고장이 나면 학부모들이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도난이나 분실 시에는 해당 기기의 구매 비용 전부를, 사용자 과실에 의한 파손 시에는 수리 비용의 20%를 내야 한다.
학부모들은 대체로 이 사업을 부정적으로 본다. 상당수 학생들이 이미 노트북이나 태블릿PC를 가지고 상황에서 교육청에서 대여 받는 기기의 관리 책임을 떠안게 된다는 것이다. 한 학부모는 “집에 컴퓨터도 있고 태블릿과 스마트폰도 있다.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책임을 져야 하는데 굳이 대여받을 이유가 있느냐”고 말했다.
대여 신청이 저조하자 광주시교육청은 애초 지난달 31일까지였던 동의서 제출 시한을 지난 12일까지로 연장했다. 장학사 26명을 일선 학교에 보내 교사들을 상대로 설명회를 열기도 했다.
한 교사는 “교육청 장학사들이 학교에 찾아오면서 교사들이 압박을 받았고 ‘수업에 필요하다’ 식으로 말하며 동의서를 제출하도록 했다”면서 “그런데도 상당수 학부모들이 동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교육단체들은 이 사업에 대해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광주교사노동조합은 “기기를 보급하기 이전에 수요 조사 등을 실시했어야 하는데 교육청은 아무런 조사 없이 기기부터 구매했다”면서 “사업을 일시 중지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학벌없는 사회를 위한 시민모임도 “스마트 기기를 강제로 대여하는 사업을 멈춰야 하며 감독기관의 감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냈다.
광주시교육청은 이에 대해 “대여를 원하지 않더라도 학생 수에 맞춰 일선 학교에 스마트 기기를 내려보낼 방침”이라면서 “분실 등으로 인한 학부모들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강현석 기자 k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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