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이념 전쟁 이슈, 정치적 논란보다 역사학계 의견 더 다뤘어야
‘법·부·금’ 기획은 신선하고 시의적절…다만 눈높이 너무 높았던 듯
‘교권 침해’ 보도 이어지지만 법령·제도적 개선점 집중보도 필요해
‘언론 장악’ 성실히 보도…구조와 본질 이해 돕는 해설 받쳐줬으면
경향신문 독자위원회가 지난 6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회의실에서 2023년 9월 정기회의를 열었다. 김춘식 위원장(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주재로 열린 회의에 김지원(단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신지영(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이승환(한국공인회계사회 선임), 조상식(동국대 교육학과 교수) 위원이 참석했다. 곽경란(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김봉신(여론조사기업 메타보이스 이사), 박은정(녹색연합 자연생태팀장) 위원은 서면으로 의견을 냈다. 경향신문에서는 김준기 뉴스콘텐츠부문장이 함께했다.
회의에서는 최근 집중호우와 폭염 등 기후재난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극한 호우·폭염에도 국회 갇힌 기후법안> 등 사회 전 분야에서 기후위기와 관련된 기사들을 꾸준히 발굴해낸 것이 의미 있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문제 등 이념과 역사 관련 논란에서 정치권의 주장보다는 역사학자들의 견해를 좀 더 다뤘어야 했다는 의견이 있었다. <법률·부동산·금융, 얼마나 아십니까> 시리즈는 경제 교육의 필요성을 일깨워준 기획이라는 평가가 있었다.
신지영 = 8월9일자부터 연재된 <법률·부동산·금융, 얼마나 아십니까> 기획 시리즈는 전세사기 사건 등으로 좌절하는 청년들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경제 교육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시의적절한 기사다. 일반인들이 법률이나 금융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용어가 어렵기 때문이다. 법률은 한자권 외래어, 금융은 영어권 용어가 많이 쓰인다. 전문가들이 그들만의 어려운 용어로 소비자들을 소외시키는 것이야말로 진짜 카르텔이다. 이에 대한 기획 기사도 써보면 어떨까 한다. 8월28일자 <자유총연맹, ‘댓글 공작’ 이종명 전 국정원 3차장 강사 위촉>은 경향신문이 단독으로 발굴한 좋은 기사다. 9월4일자 <‘퇴역’ 내부고발자들, 수사 외압 의혹 관련 쓴소리>는 제목과 기사에서 ‘내부고발자’라는 표현을 썼다. 과거에 많이 쓰던 내부고발자라는 표현은 부정적 의미가 느껴질 수 있어 최근에는 공익신고자로 바꿔 쓰고 있다. 경향신문도 그동안 공익신고자로 써왔는데, 이번 기사에 다시 내부고발자를 사용한 것은 유감이다. 8월14일자 <작년 ‘아동 행복도’는 몇 점?>을 보면 여아가 남아보다 차별 경험이 많다며 그 수치로 각각 18.8%와 17.5%를 제시했다. 1.3%포인트 차이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라 보기 어렵다. 자칫 기사 전체의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
김지원 = 8월16일자 <무차별 흉기난동, 좌절 사회가 불러낸 ‘병리적 증후’… 이대로 두면 더 곪는다>는 최근 잇따르는 흉기난동의 원인을 사회구조적 측면에서 분석한, 꼭 필요한 기사다. 하지만 내용 면에서는 아쉬운 점이 많았다. 최근의 한국 사회를 20년 전 일본과 비슷하다고 분석했는데, 이유로 든 거품 경제 붕괴와 양극화, 정상성에 대한 높은 사회적 압박 모두 근거가 부족해 보인다. 기사의 목적이 해법을 제안하기 위한 것이라면 원인에 관한 정확한 분석이 필요하다. 일본의 해결책을 제시하려 20년 전 일본 상황을 억지로 가져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8월23일자 <서울역 일대 ‘국가상징공간’ 만든다>는 보다 비판적 관점에서 접근했어야 할 기사다. 국가상징공간을 만든다는 자체가 전체주의적 시각이 있다. 왜 이 시점에 이것을 하겠다는 것인지, 국가 정체성을 상징물 몇개로 고정시키는 것이 올바른 시도인지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필요했다. 일본 아사히신문 출신 프리랜서 기자 마키우치 쇼헤이를 인터뷰한 8월26일자 <“일 정부, 오염수 정보 차단해 여론조작… ‘전쟁 가능 국가 만들기’에도 쓰일 것”>은 오염수 방류와 관련해 민주적·사회적 합의가 무시됐다는 좋은 지적을 담고 있다. 그의 책을 좀 더 상세하게 소개하면서 썼으면 한층 더 흥미로운 기사가 되지 않았을까 한다.
이승환 = <법률·부동산·금융, 얼마나 아십니까>는 사회생활에서 법률과 부동산, 금융 공부가 중요하다는 점을 일깨워준 좋은 기획으로 평가된다. 모의고사 방식으로 시리즈를 시작한 것도 신선했다. 다만 눈높이가 너무 높았던 것 같다. 지난달 육군사관학교 내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과 관련된 논란이 많이 보도됐다. 국방부 주장이나 정치권 논란보다 역사학자들의 의견을 좀 더 다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파행과 관련된 기사들도 많았다. 정부가 뒷수습을 위해 대회 후반부에 많은 돈을 들여 각종 행사를 벌였다. 잼버리 파행이 국격을 떨어뜨린 차원을 넘어서 얼마나 많은 세금을 낭비하게 했는지 등도 분석해 보도했으면 좋겠다. 8월2일자 <서울 학원, 전국의 17%인데 사교육 카르텔 신고는 70% 몰렸다>의 핵심 내용은 통계적으로 당연한 얘기다. 서울에 대형 학원들이 몰려 있다 보니 신고도 많을 수밖에 없다. 신고 건수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신고 내용이 무엇인지 확인해서 비판했으면 좋은 기사가 됐을 것 같다. 8월8일자 <학부모·특수교사 “장애 학생 아닌 교육시스템 붕괴가 갈등 본질”>은 웹툰작가 주호민씨의 장애인 자녀를 둘러싼 논란을 단순 중계식으로 보도하는 차원을 넘어 장애인 교육시스템의 본질적 문제까지 파고든 의미 있는 기사다.
조상식 = 윤석열 대통령이 ‘이념전쟁’을 선포한 상황에서 기사뿐 아니라 오피니언 면의 외부칼럼들에서도 문제점을 지적하는 내용이 많아 적절했다고 본다. 다만 이번 이념전쟁의 중요한 축인 역사 문제를 다루는 역사학자들의 글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외국인 가사노동자 사업에 관해 대부분 언론이 노동 문제로 접근하는데, 강은미 정의당 의원을 인터뷰해 9월2일 나온 주간경향의 <“외국인 가사근로자? 다른 육아 환경 다 갖춘 다음에나 고려”>는 출산 장려에 대한 이 정부의 관점이 얼마나 협소한지 잘 보여주고 있다. 9월5일 보도된 <“집중력 저하와 과도한 긴장”… ‘수술실 CCTV’ 두고 헌법소원 낸 의사들>은 수술실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는 문제를 두고 대체로 환자 입장에서 쓰였지만 의사협회 입장도 충분히 넣어 쟁점이 공평하게 다뤄졌다고 평가할 수 있다. 교사들의 극단적 선택이 이어지면서 교권 침해 문제가 계속 보도되고 있다. 이제는 아동학대처벌법이 문제라는 점이 본격 제기되고 있는데, 법령과 제도적 부분에서의 개선점에 대해 집중적인 보도가 필요하다. 8월15일자 <학교 행정직이 민원 전담… 학내 ‘폭탄 돌리기’>는 정부가 발표한 교권 침해 방지책이 학교 현장에서 실제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정확하게 발굴한 좋은 기사다.
김봉신 = 8월3일자 <극한 호우·폭염에도 국회 갇힌 기후법안>은 기후위기 대응에 둔감한 정치권을 향해 좋은 메시지를 던진 기사다. 정부 정책을 따라 심은 전략 작물에 피해가 발생하는 등 농민들의 안타까운 상황을 전하는 같은 날자 <“호우·폭염에 병충해 급증… 병든 열매 보면 속 타들어가”>도 기후위기가 우리 현실임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기사다. 부실한 잼버리와 관련해 정부의 미흡한 준비와 대응을 적절히 지적했지만 조금 더 깊이 들어가 기후위기에 관한 인식 부족도 짚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한다. 8월11일자 <‘대의원 투표 폐지’ 폭탄만 던지고 51일 만에 문 닫는 김은경 혁신위>와 <‘내로남불’ 극복 방안 못 내고 ‘팬덤정치’ 논쟁 불씨만>은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회에 대해 제대로 평가한 기사다. 특히 대의원제 축소를 가장 큰 현안으로 띄운 혁신위 안을 놓고 ‘내로남불’과 ‘팬덤정치’라고 지적한 것은 민주당에 쓴소리가 되는 좋은 평가다. 일본 프리랜서 기자 마키우치 쇼헤이 인터뷰 기사는 프로파간다를 통해 오염수 방류에 성공한 일본 자민당이 같은 방식으로 ‘전쟁 가능 국가 만들기’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다뤘다. 새로운 정보로서의 가치도 커서 기사를 좀 더 크게 다뤘으면 좋았을 것 같다. 향후 보다 심화된 내용으로 추가 인터뷰가 있으면 좋겠다.
박은정 = 집중호우와 폭염 등 기후위기로 인한 재해 관련 보도들이 잘 이어졌다. <극한 호우·폭염에도 국회 갇힌 기후법안>은 정부와 국회가 기후위기 대책에 소홀한 점을 잘 보여줬다. 이상기후로 병해충이 급증하고 양식어류가 폐사하는 등 농어민들의 실질적인 피해에 대한 기사, 건설노동자와 배달노동자에 대한 폭염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기사도 연결성이 있다. 8월7일자 <작년 매출액 상위 30대 기업… 재생에너지 비중 겨우 ‘10%’>, 8월11일자 <‘폭염이 당신의 지갑을 태운다’ 지구촌 식탁에 히트플레이션>, 8월18일자 <발효·뙤약볕… 이주노동자엔 너무 어려운 ‘폭염 재난문자’> 등 사회 전 분야에서 기후위기와 관련된 기사를 발굴하고 꾸준히 다뤘다. 국제사회는 기후위기를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로 다루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시급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문제로 취급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경향신문이 기후위기를 무게감 있게 지속적으로 다뤄 인상 깊은 한 달이었다. 8월10일자부터 시작된 <노동사(死), 그 후의 이야기> 시리즈는 많은 노동자가 노동 현장에서 목숨을 잃고 있는 지금 꼭 필요한 기획이다. 우리 사회가 너무 자주, 너무 많은 죽음을 목격하면서 죽음에 무감각해지고 있는 듯한 상황에서 기사를 통해 유족들의 고통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고, 죽음 이후에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 바뀌지 않은 사회를 되돌아볼 수 있었다.
곽경란 = 8월30일자 <‘민판연’ 소속 이균용, 법관 독립·재판 공정성 우려>는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법관과 변호사가 함께하는 판례연구모임(민사판례연구회) 소속이어서 공정한 재판을 할지 우려된다는 내용인데, 경향신문의 기존 보도 태도에 비춰볼 때 일관되지 않는다. 경향신문은 지난 6월 우리법연구회 소속 법관을 정치편향이라고 한 국민의힘을 비판했다(6월18일자 <노조 손배 판결이 입법 폭거? 대통령실과 여당의 도 넘은 ‘사법부 흔들기’>).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지명 때는 우리법연구회 소속을 지적하는 것을 두고 ‘이념 공세’라고 하기도 했다(2017년 9월17일자 <이념 공세 벼르는 야당… 사법개혁 의지로 넘을까>). 우리법연구회 역시 민판연처럼 변호사와 법관이 함께 참여하는 데다, 조직 규모가 작아 친밀도가 높다. 법관의 커뮤니티 소속에 대해 일관되고 객관적인 관점을 갖지 못하고 ‘우리법은 되고, 민판연은 안 된다’고 하면 진영논리로 읽힐 수 있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임명 과정에서 새롭게 드러난 과거 사건들, 정치권에 의한 미디어 장악 이슈를 독자들에게 성실히 전달해줬다. 다만 독자들이 방송사업의 소유·지배 구조나 방송규제의 기본 구조에 관해 이해하고 있지 않으면 문제 본질을 조망하기 어려울 수 있었다. 상세한 해설 기사가 받쳐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김춘식 = 지난달 주목한 기사 중 하나가 8월24일자 <연 847만원 현물 복지, 소득 양극화 줄여줬다>다. 통계청 소득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무상교육이나 무상보육, 건강보험과 같은 정부의 현물복지가 양극화를 완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내용이다. 흔히 복지에 대해 보수는 비판적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기초노령연금을 확대 개편해 기초연금을 도입한 것은 박근혜 정부 때다. 복지 등과 관련해 정치권에서 논쟁이 벌어질 때 기존 편견으로 보지 말고 정파성을 벗어난 과감한 평가도 필요하다. 이동관 방통위원장 취임으로 공영방송 독립 문제가 부각되고 있다. 공영방송은 정치적·경제적 독립이라는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에서도 공영방송이 정치적으로 독립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공영방송 독립에 관해 특정 정파적 이익을 넘어 이론적 틀을 제시하는 접근을 할 필요가 있다. 공영방송 전문가의 칼럼을 받아보는 것도 방법이다. <감사원, 누가 감사하는가> 기획 시리즈 중 8월8일자 <“감사원이 청와대 사정팀 일원 되면 안 돼”… YS 때 감사원장 이회창, 기획 사정 거부>를 보면 감사원 독립을 위해 애쓴 감사원장으로 이회창씨와 최재형씨 사례가 소개돼 있다. 정파성을 넘어선 과감한 접근의 예로 평가할 수 있다.
정리 |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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