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식의 이세계 (ESG)] 진짜 사장님의 진솔한 사과가 중대재해를 예방한다
2014년 2월17일 밤 9시11분, 경주시에 있는 코오롱그룹 마우나오션리조트의 강당 지붕이 폭설로 무너졌다. 이 사고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진행 중이던 부산외국어대학교 학생 10명이 사망하고 부상자가 204명이나 발생했다. 부상을 당한 한 학생은 8년간 37번의 대수술을 받았다.
당시 서울에서 사고 보고를 받은 이웅열 회장은 곧바로 대책반을 꾸리고 밤새 폭설을 뚫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새벽 6시 현장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열고 ‘엎드려 사죄 드립니다’라며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리고 졸지에 꽃다운 자식을 잃은 유족을 직접 만나 정중히 사과를 했다. 난항이 예상됐던 사고 보상 합의도 사고 34시간이 지난 2월19일 오전 10시에 이루어졌다. 유족의 아픔을 직접 위로하고 자신의 사재 출연도 감수하겠다는 이 회장의 진솔한 태도가 유족의 신뢰를 얻었다. 불행한 사고였지만, 이 회장의 신속한 판단과 진정성 있는 처신은 중대재해 발생 시 실질적 책임자 태도의 전형을 보여줬다.
10여년 전의 이 사고를 소환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중대재해가 여전히 심각함에도 이 회장과 같은 처신을 보기 힘들어서이다. 실질적 책임자의 신속하고 진솔한 사과는 조직을 안정시켜 미래의 사고를 예방한다. 그리고 이는 윤석열 정부의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달성에 핵심적인 요소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중대재해율은 심각하다. 사망사고 만인율((사고사망자 수/산재보험 적용자 수)×1만)이 8년째 0.4‱(퍼미리아드)에서 0.5‱ 사이에서 정체되고 있다. 2020년 기준 제조업은 1.29‱, 조선업은 2.92‱나 된다. 하루에 2~3명이 출근한 후 가정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OECD 38개 회원국 중 34위인 이러한 중대재해율을 2026년까지 OECD 평균인 0.29‱ 수준으로 낮추기 위해 작년 11월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발표했다. 핵심은 중대재해 감축 정책의 패러다임을 ‘규제와 처벌’ 중심에서 ‘참여와 협력’을 기반으로 하는 ‘자기규율 예방체계’로 전환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노사가 같이 위험을 파악하고 위험 수준을 결정하고 대책을 마련하고 현장과 공유하는 활동이다. 그리고 이를 추진하기 위해 지난 5월 전국 39개 지역에 기업·정부·언론·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안전문화 추진단을 출범해서 주기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로드맵을 준비하면서 정부는 영국의 사례를 참고했다. 1972년 영국은 자기규율 예방체계를 핵심으로 하는 ‘로벤스 보고서’를 채택했다. 그 결과 영국은 매년 1000명 이상 발생하던 중대재해가 50년이 지난 2022년에는 123명으로 감소했다.(고용노동부)
기존 정책이 사후 처벌을 강조하다보니 현장에선 안전=법령기준을 맞추는 것에 급급했다. 따라서 실질적인 중대재해 예방을 위해 노사가 자율적으로 재해 예방 역량을 높이도록 하자는 것이 고용노동부의 취지다.
그러나 산업현장 경험에 의하면 중대재해 예방의 가장 큰 걸림돌은 실질적 책임자의 책임의식 결여와 정규직·비정규직 간의 소통과 안전의식 부족이다.
2022년 1월 50인 이상 사업장부터 중대재해 처벌법이 시행됐다. 같은 해 11월부터는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이 시행됐다. 2023년 5월에는 로드맵 이행 추진단을 발족했다. 그러나 문제는 자기규율 예방체계로 정부 정책이 전환되는 이러한 사이에 중대재해 발생은 다시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법 시행 1년이 지난 후인 지난 1분기 중대재해는 전년 동기 대비 전체적으로는 147명에서 128명으로 12.9% 감소했다. 기타업종은 25명에서 32명으로 7명 증가(28%)했으나 건설업은 71명에서 65명으로 8.5% 감소했다. 제조업은 51명에서 31명으로 39.2%나 감소했고 특히 법의 적용을 받는 50인 이상 사업장은 30명에서 9명으로 70%나 감소했다. 그러나 2분기에는 반대의 현상이 벌어졌다. 전체적으로는 전년 동기 대비 10명(5.8%) 감소했으나 건설업은 81명에서 82명으로, 제조업은 49명에서 50명으로 각 1명씩 증가했다.
자기규율 예방체계의 핵심은 실질적인 책임자의 진솔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한 안전의식의 내재화다. 진솔한 리더십은 진솔한 사과에서 시작된다. 여기에는 법적인 이슈도 없다. 사과한다고 없는 책임이 따라오는 것도 아니다. 진솔한 사과는 대체로 네 가지 의미가 있다. 앞서 소개한 코오롱 이웅열 회장이 좋은 예다. 외부적으로 무엇보다 망자에 대한 깊은 애도와 유가족의 아픔을 위로해 준다. 그리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통해 그 기업이 사회와 같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주게 된다.
내부적으로는 사고 예방을 위한 조직의 안전문화 정착에 좋은 계기가 된다. 정부에서 강조하는 자기규율 예방체계는 이 점을 중시해야 한다. 대기업·장수기업들은 실질적 책임자 곁에 측근 참모들이 있다. 이들은 월급 사장보다 진짜 사장을 위해서는 형사 처벌을 대신 감수할 정도로 충직하다. 진짜 사장이 유가족을 만나 손잡고 사과하면 이들은 존경하는 사장님이 애처로워서, 또는 보좌를 제대로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몸 둘 바를 모른다. 그래서 더 이상 중대재해가 없도록 최선을 다하게 된다.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일반 직원들은 사회에 대한 부채 의식으로 트라우마가 생긴다. 자기 직장에 대한 회의감이 든다. 이럴 때 진짜 사장의 진솔한 사과는 직원들의 사내 안전문화에 대한 열정을 살리게 된다.
지난달 22일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 일하던 포스코DX 직원이 중대재해를 당했다. 포스코DX 대표이사는 바로 유가족에게 깊은 애도의 사과문을 발표했다. 반면에 그렇지 않은 기업도 많다. 유가족의 눈물이 바닥나고 사회의 지탄을 받아 마지못해 하는 사과는 의미가 없다. 실권 없는 안전책임자(CSO) 뒤에 숨는 진짜 사장의 행태도 분노만 더 키운다.
예컨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8명이 사망한 DL이앤씨(전 대림산업 건설부문), 중대재해가 끊이지 않는 SPC그룹, 11개월 사이 3명이나 숨졌음에도 사과하지 않고 사회와 담을 쌓는 현대비앤지스틸 같은 기업들이 걱정이다. 중대재해 빈발 기업의 진짜 사장들의 진솔한 사과 없이는 고용노동부의 ‘자기규율 예방체계’ 정책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이미 금년 2분기 중대재해 현황이 보여주고 있다.
김경식 ESG네트워크 대표·<착한 자본의 탄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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