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태 칼럼] 사랑의 확장

한겨레 2023. 9. 14.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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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태 칼럼]지난 2월 ‘동성결합’ 상대방이 원고가 되어 제소한 건강보험료 부과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서울고법은 원고에게 보험료를 부과한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처분을 취소하는 판결을 내렸다. 결합의 핵심 내용이 혼인 관계와 동일한 한, 그 형식이나 명칭이 어떻든 국가는 제공되는 복지 부분에서 차별을 두어서는 안 된다. 이번 판결이 진정한 의미에서 사랑하는 이들의 ‘사랑의 확장’에 기여하리라 믿는다.

이석태 | 전 헌법재판관

2015년 6월 미국 연방대법원은 동성혼을 인정하는 판결을 선고했다. 이 판결에서 미 법원은 “혼인은 두 사람의 합 이상의 위대한 결합이며, 이 역동성은 홀로 찾을 수 없는 삶의 의미를 탐색하는 여정을 허락한다”고 판시했다. 이어서 “혼인의 본성은 영속적인 결합을 통해 함께하는 두 사람이 표현의 자유, 성적 결합, 정신적 결합을 포함한 여러 형태의 자유를 찾을 수 있다는 데에 있다. 이는 각자의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을 불문하고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사실”이라고 보았다. 미 법원은 “오랫동안 이성 커플에게만 혼인을 허용하는 제한은 당연하고 공정한 것으로 여겨져 왔지만, 이런 제한이 혼인할 기본권의 핵심적 의미와 모순된다는 점은 이제 명백”하며, “이러한 깨달음의 필연적 귀결로서 우리는 동성 커플을 혼인할 권리로부터 제외하는 법률이, 우리의 기본적 헌장에서 금지되는 종류의 낙인과 침해를 강제한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선언하였다. 혼인에 이른 두 사람은 살아 있는 동안 고락을 함께하며 진실한 마음으로 서로 사랑함으로써 ‘기존에 각자 존재했던 때보다 위대한 존재’가 된다. 미 법원 판결은 이성 커플이든 동성 커플이든 사랑의 아름다움이 드러내는 고유한 속성에서 차이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 것으로 여겨진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관계에서 오는 정신적 힘의 특별한 점은 오스트리아 정신과 의사 빅토어 프랑클(빅터 프랭클)에 의하여 잘 표현된 바 있다. 그는 2차대전 중 독일군에 체포되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혔다가 구사일생으로 생존한 체험이 있다. 프랑클은 수용소의 가혹한 상항 속에서도 가상의 아내와 대화하며 인간성을 잃지 않으려고 했다. “섬광처럼 불현듯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다. 그토록 많은 사상가들이 자신의 삶에서 결론처럼 이끌어낸 지혜의 말, 그토록 시인들이 노래한 진실, 그것은 바로 사랑을 통해서만 인간이라는 존재는 가장 귀하고 높은 단계로 솟아오를 수 있다는 진리였다.” 고립무원의 상황에서도 사람은 가슴속에 간직된 ‘사랑하는 이의 모습을 그윽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만함을 느낄 수 있다고 그는 회고한다.

동성애 박해 역사에서 2차대전 당시 독일 강제수용소는 특히 인권 유린이 심했다. 동성애자들은 그들에게 적용된 당시의 독일 형법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유죄 판결을 선고받아 강제수용소로 보내져 분홍색 삼각표지를 달아야 했고 대부분 살아남지 못했다. 독일은 이를 참회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뜻에서 2008년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베를린 티어가르텐에 추모비를 세웠는데, 2018년 독일 연방대통령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는 추모비 제막 10돌을 맞아 이곳을 방문해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했다.

사정은 다소 다르나 우리도 유사한 사안이 있었다. 지난 2월 ‘동성결합’ 상대방이 원고가 되어 제소한 건강보험료 부과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서울고등법원은 원고에 대하여 보험료를 부과한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처분을 취소하는 판결을 선고하였다. 공단은 애초에는 원고에 대하여 사실혼 관계에 준하는 것으로 보고 보험료를 부과하지 않았었는데, 나중에 언론 보도로 동성 커플임이 알려지자 뒤늦게 보험료를 고지한 것이다. 법원은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라는 헌법 36조 1항 등을 들어 동성혼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사실혼 관계도 마찬가지로 보았다. 우리 법제상 아직 동성 커플은 법률에 의해서든, 사실에 의해서든 혼인의 관계는 아니라고 본 것이다. 다만 사실혼 배우자 집단과 동성결합 상대방 집단을 비교할 때, “성적 지향에 따라 선택한 생활 공동체의 상대방인 가입자가 그들과 이성인지 동성인지만 달리할 뿐, 본질적으로 동일한 집단으로 평가할 수” 있으므로, 보험료 청구에서 양자를 달리 취급하는 것은 헌법에서 금하는 평등의 원칙에 위반되어 차별이라고 보았다.

이 판결에서 중요한 점은 ‘동성결합자’ 간 관계의 실질이 과연 이성 커플 부부와 다르냐는 것이다. 결합의 핵심 내용이 혼인 관계와 동일한 한, 그 형식이나 명칭이 어떻든 국가는 제공되는 복지 부분에서 차별을 두어서는 안 된다. “누구나 어떤 면에서는 소수자일 수 있다. 소수자에 속한다는 것은 다수자와 다르다는 것일 뿐, 그 자체로 틀리거나 잘못된 것일 수 없다. 다수결의 원칙이 지배하는 사회일수록 소수자의 권리에 대한 인식과 이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고, 이는 인권 보호의 최후의 보루인 법원의 가장 큰 책무이기도 하다”라는 판결의 마지막 부분이 울림을 준다. 이 판결은 비록 미 법원처럼 동성혼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으나 성적 지향에서 평등을 추구하는 소수자 옹호 정신은 같다고 생각된다. 헌법이 말하는 ‘혼인의 양성평등’은 혼인의 양상을 꼭 이성 간으로만 한정한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 오랫동안 유지되어온 가부장제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37조 1항) 이 판결이 올바른 방향에 서 있는 것이라면, 미 법원의 예에서 보듯 동성혼은 시간이 해결할 과제가 아닐까.

오래전에 한 동성동본 불혼 헌법소원 사건 변론이 생각난다. 그때 법정 밖에서 “금수로 돌아가잔 말이냐!”라는 팻말을 들고 반대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당시 이분들의 기세에 눌려 한동안 법정 내에 머무르다가 나온 일이 있다. 돌이켜 보면, 그 소송은 혼인의 부당한 제한을 넓히기 위한, 동성동본 부부들의 평등권을 회복하는 일이었다. 에리히 프롬은 저서 ‘사랑의 기술’에서 “본래 사랑은 특정한 사람과의 관계가 아니다. 사랑은 한 사람과 한 ‘대상’과의 관계가 아니라 세계 전체와의 관계를 결정하는 ‘태도’, 곧 성격의 방향이다. 어떤 사람이 다른 한 사람만을 사랑하고 나머지 동포에게는 무관심하다면 그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확대된 이기주의다”라고 했다. 이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번 판결이 진정한 의미에서 사랑하는 이들의 ‘사랑의 확장’에 기여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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