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스타샤는 어디 사람일까?

한겨레 2023. 9. 14.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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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경의 이방인 초라함의 상대성][안희경의 이방인, 초라함의 상대성]

5 _98년생 고려인 아나스타샤

아나스타샤는 한국에서 살고 싶다고 밝혔다. 그에게 몇 퍼센트 한국인인지 가늠해 달라고 제안했다. 80% 한국인 15% 고려인 5% 우즈베크인이라고 셈했다. 어린 시절 추억이 5%를 붙잡지만 해외에 나갈 여비가 생겨도 우즈베크에는 가지 않을 것 같다고 한다. 지금은 한국어가 그의 모국어다. 자, 아나스타샤는 어디 사람일까?

장 아나스타샤가 서울에서 자취할 때 찍은 신촌 야경. ‘내가 지금 당장 사라져도 아무도 모를 것 같은 이 넓은 세상에서 내 자리는 어디고 나는 누구일까?’라는 생각을 자주 한단다. 장 아나스타샤 제공

‘당신은 어디 사람인가요?’

처음엔 고향을 묻고 싶었다. 그런데 ‘고향’도 변하는 것 같다. 한국에서 살던 서른 한 해 동안 나는 부여가 고향이라고 생각했다. 여섯 살까지 살던 곳이다. 추억이 방울방울 떠오른다. 계백장군 동상으로 뛰어가다 무릎이 깨졌던 일, 아버지가 마당에서 등목하며 콧구멍을 한껏 부풀리던 여름 저녁, 곤로에 달군 고데기로 내 머리칼을 말던 엄마의 손아귀와 철컥철컥 쇠 부딪치던 소리…. 그런데 미국에서 20여 년을 보내고 나니 나의 고향은 서울이 되었다. 모든 학창 시절과 20대를 보낸 곳이다. 그리고, 내 감정을 파헤칠수록 비집고 자라난 또 하나의 멤버십이 보였다. 캘리포니아 사람. ‘사는 곳’이 주는 결속력이랄까? 그 노래가 ‘나의 태어난 고향은’이 아니라 ‘나의 살던 고향은'으로 시작하는 이유도 사는 곳에 시간과 관계가 얽혀 뿌리 박히는 힘을 알아차려서인 것 같다. 국경을 넘어 이사한 경험이 없는 이도 아나스타샤의 마음을 한 자락 느끼도록 안내하고파 이리도 길게 주절거렸다.

장 아나스타샤는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나 13살에 한국에 왔다. 중학교 전학이 막혀 6학년으로 들어갔다. 두 살 아래 아이들과 배웠고, 아이들은 머리칼을 들추며 싸움을 걸기도 했다. 아나스타샤는 생김새는 같지만 머리 모양이나 옷차림이 한국 아이들과 달라 동물원 원숭이 보듯 대한다고 느꼈다. 선생님도 이름이 너무 길다며 짧게 부르는 방법부터 물었다. 러시아어 애칭인 ‘나스쨔’를 알려드리니 그건 더 안되겠다고 도리질을 했다.

“한국어가 절대반지에요.”

아나스타샤의 핵심정리이다. 아이들은 한국어를 못 알아들으니 앞에서 무슨 말을 해도 된다고 여기는 듯 굴었다. 중학교 때부터 베트남, 필리핀 친구들이 전학 오기 시작했을 때는 한국말도 안 배우고 오냐며 ‘외국인들 귀찮아’라는 말을 하길래 ‘나도 외국인이야'라고 응대하니 ‘넌 한국말 잘해서 괜찮아'라는 답이 돌아왔다. ‘예외’라는 이름의 배제다.

아나스타샤에게 스스로 외국인이라고 생각하냐고 물었다.

“서류에는 외국인, 정체성은 완전한 한국인은 아니고, 그렇다고 외국인도 아닌… 고려인인데, 한국에 산 지 오래여서… 솔직히 저희는 우즈베크에서 태어난 순간부터도 그 나라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네, 그냥 고려인이에요.”

영어로 말하면 코리언(Korean)이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한국인.

옛 소련권 국가들은 민족으로 자신을 소개한다. 민족별로 차이가 있음을 아니 상대의 행동을 예측하는데 주요 정보가 된다. 고려인이라고 하면 성취욕이 강하고 교육 수준이 높고 기민하다는 예상을 할 것이다. 아나스타샤의 외할머니는 회계사였고, 엄마도 회계학과를 나왔으며 외삼촌은 정보기술(IT) 엔지니어였다. 아빠는 도시의 온수를 공급하는 기관의 수석 엔지니어로 대학생 때 옛 소련연방 해체를 맞았다. 민족주의가 득세하는 시점이다. 고려인들은 관청뿐 아니라 공기업에서도 진급이 막히면서 해외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아나스타샤의 아빠와 외삼촌은 한국에서 부품 조립을 하고 엄마는 컴퓨터칩을 검사한다. 고려인이 있는 공장에는 ‘앞에는 공학박사 뒤에는 교수 옆에는 음악가가 일한다’는 농담이 떠돈다. 모두 최저임금을 받는다.

사회적 지위가 하락했을 때 사람은 쉬이 우울감에 빠진다. 특히 자신의 생각, 감정, 상황을 설명하기 힘든 경우, 입을 열 때마다 상대가 미간을 좁히며 집중해야 소통이 가능하다면 폐 끼치기 싫은 마음이 초라한 마음과 함께 찾아온다. 집 현관은 심호흡하고 건너야 할 일상의 국경이다. 우울은 자책을 낳기에 아나스타샤에게 반복되던 학교폭력이 혹여 ‘내 잘못일까’ 생각한 적은 없는지 물었다.

“줄곧 1등만 해서 온 세상이 저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줄 알았어요. 한국에 온 순간, 그 질서가 무너졌죠. 능력을 빼앗긴 느낌. 답을 찾으려 애썼어요. 그래, 상황은 바뀔 수 있고 주변 사람도 바뀔 수 있다! 그때 정신적으로 성장한 거 같아요.”

이민 가정 아이들은 빨리 어른이 된다. 소녀 아나스타샤는 러시아어로 글만 쓰며 보냈다. 사람들이 다양한 만큼 다양한 생각이 있기에 이상한 이름을 가진 아이가 나타날 때 거리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며 2년을 보내는 동안 한국말이 들리고, 학교에서 들리는 대로 적은 내용이 집에 와 사전을 찾으면 퍼즐처럼 맞춰지는 신기한 시간을 맞았다. 그리고 중3 때 반장이 됐다. 급우들이 추천했다. 이상한 이름이 빛을 발한 반전이다. 2학년 때 티(T)볼 선수였고 연극 동아리 활동 속에서 ‘아나스타샤’였기에 더 눈에 띄었던 것이다. 고교에서도 부반장을 했고 2019년 3월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신입생이 되었다. 지금은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다.

그의 고려인 친구 대부분은 대학에 가지 않았다. 공부가 어려워 우즈베크로 돌아간 친구들도 있고 심한 인종차별을 감수하고 우즈베크보다 보수가 나은 러시아로 간 친구들도 있다. 무엇보다 경제적인 이유로 포기했다. 한국인보다 더 비싼 학비를 내야 한다. 장학금도 찾기 어렵다.

아나스타샤의 연세대 진학에 한국인들의 눈이 더 휘둥그레지곤 하는데 속으로 이런 질문을 품을지 모른다. ‘외국인 전형이라 쉬운 거 아냐?’ 그럴 리가. 선생님들은 그의 성적에 생활기록부면 외국인 전형이 아니어도 서울 안에 있는 좋은 대학을 골라갈 수 있다고 했다. 봉사 시간만 300시간이다. 센터에서 한국어를 가르쳤고 안산 거리극 축제에서 진행 자원봉사를 했다. 몇 시에 어디서 무얼 하는지 축제의 비밀들을 알던 그 시간이 너무나 재밌었다고 아나스타샤는 생글거렸다. 휴일이면 한국 청소년 통역단원으로 서울에서 활동했는데 모두 인터넷을 뒤져 찾아갔다. 엄마는 입시에 대해 아직도 모른단다. 남동생도 올해 고려대 공대에 입학했다.

계획을 물었다. 플러그 뽑힌 풍선 광고판처럼 풀이 죽었다. 공부는 경제적 문제로 계속할 수 없고, 취업은 이중언어 실력을 살리면 좋겠지만 통역만 하다 보면 의욕을 잃을 것 같아 고민이란다. 500만원이 넘는 남동생의 등록금도 부담이다. 이번 학기에도 지난 1년 휴학 동안 모은 월급을 부모님께 드렸다. 20대의 삶, 뚜렷한 계획이나 꿈을 갖는 청년이 드문 시절이다. 그도 고려인이라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청년이라서 꿈이 없다고 헤실헤실 웃었다. 친구들은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는 그래도 연대잖아' ‘너는 러시아어라도 잘하지’. 터널을 걸어가는 청년들에게 우리 사회가 무얼 해주면 좋을지를 물었다.

“등록금이 싸져야 하지 않을까요?”

동포 비자가 있어도 그는 국가 장학금을 받을 수 없다. 미국은 최근에 정부의 학비 보조 혜택을 취업 비자 자녀뿐 아니라 서류미비자 자녀까지 확대해 소득에 따라 지원하는 주가 늘었다. 인권의식이라기보다 가성비 높은 우수 노동자원 확보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나스타샤의 한국인 동급생들도 국가장학금을 받지 못한다. 부모에게 집과 차가 있으면 연간 천만 원 학비를 그대로 납부한다. 보통의 대학생이 평균 학력을 유지하기 위해 빚을 지고 사회에 나간다. 기업이 활용할 생산 인력들이다. 특히 코로나 이후, 기업들은 사회 경험을 주요하게 평가하는데 무보수로 몇 달씩 인턴 스펙을 쌓기엔 경제력이 뒷받침 돼야 한다. 청년의 우울감이 깊어질 수밖에.

아나스타샤는 한국에서 살고 싶다고 밝혔다. 영주권을 받으려면 연 수입 7천만원이 넘어야 한다. 국적을 취득하려면 6천만원 이상의 금융재산과 공시지가 6천만원 이상의 부동산을 소유해야 한다. 그에게 몇 퍼센트 한국인인지 가늠해 달라고 제안했다. 80% 한국인 15% 고려인 5% 우즈베크인이라고 셈했다. 어린 시절 추억이 5%를 붙잡지만 해외에 나갈 여비가 생겨도 우즈베크에는 가지 않을 것 같다고 한다. 지금은 한국어가 그의 모국어다. 자, 아나스타샤는 어디 사람일까?

안희경 | 재미 저널리스트.

2002년 미국으로 이주, 문명사적 성찰과 대안을 소개하는 글을 쓰고 있다. 인류 생존을 위한 10년 전략을 제시하는 대담집 ‘내일의 세계’, 세계 지성들과 코로나19의 원인과 미래를 탐색하는 ‘오늘부터의 세계’, 리베카 솔닛 등 세계 여성 지성들과의 대담 ‘어크로스 페미니즘’, 문명의 현재와 이를 만들어온 개인의 마음 운용 실체까지 노엄 촘스키를 비롯한 세계 지성 29인과의 대담 3부작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 ‘문명, 그 길을 묻다’, ‘사피엔스의 마음’, 현대미술 작가들과의 대담 ‘여기, 아티스트가 있다’, ‘이해인의 말’, ‘최재천의 공부’, 에세이 ‘나의 질문’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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