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러 결속은 한·미·일 연대 풍선효과?

박은경 기자 2023. 9. 14.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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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중·러 겨냥한 캠프 데이비드 회의
3국 중 이해관계 맞아 떨어진 북·러 결속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3일(현지시간)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4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북한과 러시아가 지난 13일 정상회담에서 밀월을 과시할 수 있었던 것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하노이 노딜 이후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 행보, 미·중 전략경쟁 등 국내외 상황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국제정치 현실 속에서 북·러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결과라는 것이다. 하지만 캠프 데이비드 합의로 준동맹 수준까지 나간 한·미·일이 북·러가 빠르게 공생 체제로 전환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푸틴 대통령은 군사협력을 상징하는 아무르주 보스토니치 우주기지에서 열린 회담에서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 기술 개발을 돕겠다”고 했고, 김 위원장은 “언제나 반제·자주 전선에서 러시아와 함께 할 것”이라면서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 의사를 밝혔다. 러시아는 북한의 포탄과 미사일이, 북한은 핵·미사일 고도화에 필요한 러시아의 첨단 기술과 원유·식량 지원이 절실해 양국 간 이해관계가 맞는다.

북·러 군사협력 가속화는 지난달 한·미·일 정상회의의 반작용이라는 분석이다.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 모인 3국 정상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규탄했다. 공동성명은 “전례 없는 횟수의 북학 탄도미사일 발사와 재래식 군사 행동 규탄”,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 “잔혹한 (러시아의) 침략 전쟁에 대항해 우크라이나와 함께 한다” 등 북·중·러를 겨냥했다. 한발 더 나아가 “공동 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지역적 도발·위협에 신속히 협의한다”는 조항으로 압박 강도는 더 올라갔다.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불룩 튀어나오는 풍선 효과처럼 한·미·일의 압력을 받은 3국 중 전략적 목표가 일치한 북·러가 재빠르게 밀착한 것이다.

러시아를 방문 중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3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걸어가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크렘린궁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12일 “중국 전문가들은 서방이 북·러 양국에 대한 고립 정책을 사용하고 있으며, 두 나라는 이를 상쇄하기 위해 협력 강화를 추진하는 것으로 본다”면서 “북·러의 긴밀한 협력은 잦은 한·미 연합훈련의 결과”라는 한 전문가 의견을 게재했다. 북·러 연대의 화살을 미국 등으로 돌린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한·미·일 중심의 가치 외교를 지향하면서 북·러 군사협력은 예정된 수순이었다는 관측도 있다. 러시아 공사를 지낸 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은 14일 통화에서 “지난해 10월 푸틴 대통령이 ‘발다이 클럽’ 회의에서 한국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가능성에 우려를 표했을 때 북·러 간 군사협력은 이미 예견됐다”면서 “그런데도 한국 외교나 언론 등이 안일하게 대응해왔다”고 짚었다. 당시 푸틴 대통령은 한국을 콕 집어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할 경우 한국과 러시아 관계가 파탄 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에 155㎜ 포탄 50만발을 ‘대여’ 형식으로 제공하거나 폴란드에 한국 K2 전차와 K9 자주포가 수출된 것을 우크라이나 우회 지원으로 판단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4월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용 무기 지원 가능성을 시사했고 7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와 만나 ‘생즉사 사즉생’ 정신의 연대를 강조했다.

자유민주주의 진영 연대에 선봉을 자처해 중·러와 외교적 운신의 폭을 스스로 좁혔다는 지적이다. 박 소장은 “국가 관계를 도덕적 관점에서 접근하면 객관적 사실에서 자꾸 멀어지게 된다”면서 “한국의 우크라이나 지원은 정의에 입각한 것이고 러시아의 북한 지원은 부도덕하고 위험한 것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윤 정부가 한·일, 한·미·일 협력을 추진하면서 북한 핵·미사일 위협 대응을 가장 중요한 명분으로 내세웠는데 되레 북한에 외교적 공간만 넓혀준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미·일에 대한 반감을 활용해 러시아에는 군사적 지원을 이끌어내고, 이를 지렛대로 대북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중국에는 경제적 협력을 받아낼 수 있는 ‘꽃놀이패’를 쥐게 됐다는 것이다. 한반도 문제 해결에 한·미·일 공조만큼 중·러와 소통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북·중·러 간 이견이나 이익이 엇갈리는 점을 파고들어 한국 외교 공간을 넓혀야 한다고 말한다. 중국은 제재로 고립돼 ‘국제 왕따’로 분류괴는 북·러와는 거리를 두는 모양새다. 또 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외무부 차관이 정상회담 전 “한국에 김 위원장의 방러 계획 세부 사항을 전달할 수 있다”고 유화적 제스처를 취한 점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14일 김 위원장 방러와 관련해 러시아 측과 소통하고 있냐는 질문에 “필요한 소통을 계속하고 있다”면서도 “구체적 사안은 공개적으로 언급하기 어렵다”고만 답했다.

박은경 기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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