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러, 광범위한 군사협력 시사···“정치·경제·군사 모든 방면 발전”
김정은, 우주발사체 기술·시설 관심 확인
푸틴 “가능성 있다” 군사기술 협력 추진
김정은 방북 초청하자 푸틴 “쾌히 수락”
북·러 관계 격상···동북아 지형 격변 전망
북·러 정상회담에서 광범위한 군사 협력 방안이 논의됐다고 북한이 14일 밝혔다. 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군사정찰위성 등에 사용될 수 있는 우주발사체 기술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고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방북 초청을 수락하며 양국 관계가 계속 강화될 것임을 예고했다. 북·러관계를 격상시킨 이번 회담이 탈냉전 이후 동북아시아 안보 지형 변화의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공식매체들은 13일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열린 김 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 소식을 이날 일제히 보도했다. 김 위원장이 푸틴 대통령과 만나 우주기지 안팎을 둘러본 뒤 정상회담과 연회(만찬)에 참석했다는 내용을 별도 기사로 보도했다.
통신은 “호상 관심사로 되는 중요 문제들에 대한 폭넓고 깊이 있는 의견 교환이 진행되였다”며 “정치, 경제, 군사, 문화의 모든 방면에서 이룩되고 있는 괄목할 성과와 건설적인 협조 경험, 국가 부흥과 두 나라 인민들의 복리를 위한 앞으로의 발전 방향에 대한 심도 있는 의견들을 나누시였다”고 밝혔다. 회담에서 북한의 우크라이나 전쟁용 무기 지원과 러시아의 위성 개발 등 기술 이전과 관련한 광범위한 군사 협력 논의가 이뤄졌음을 시사한 것이다.
통신은 또 “제국주의자들의 군사적 위협과 도발, 강권과 전횡을 짓부시기 위한 공동 전선에서 두 나라 사이의 전략·전술적 협동을 더욱 긴밀히 하고 강력히 지지 연대하면서 힘을 합쳐 국가의 주권과 발전 이익, 지역과 세계의 평화와 안전, 국제적 정의를 수호해나가는 데서 나서는 중대한 문제들과 당면한 협조 사항들을 허심탄회하게 토의하시였으며 만족한 합의와 견해 일치를 보시였다”고 전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날 기자와 통화에서 “에둘러 표현했지만 군사 협력을 다방면적으로 강화한다는 의미”라며 “전시 물자와 무기 지원 과정에서 기술, 인력, 에너지, 식량, 원자재 등 다양한 품목이 거래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평가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북한이 회담 결과에 대한 후속 조치라는 의미를 담아 단기적으로 무엇인가를 받아내려는 형식을 취했다”고 분석했다.
통신은 “김정은 동지께서는 ‘소유즈-2’, ‘안가라’를 비롯한 운반로케트들의 구체적인 기술적 특성과 조립 및 발사 과정에 대한 해설을 들으시였다”며 “소유즈-2와 ‘안가라’ 발사종합체 건설장을 돌아보시면서 운영 및 건설 실태를 청취하시였다”고 밝혔다. 또 러시아 측이 “성의 있는 참관”을 마련해줬다며 기술적 궁금 사안을 어느 정도 충족했음을 암시했다. 김 위원장이 로켓 기술 지원에 높은 관심을 보였음을 재확인한 것이다.
푸틴 대통령도 북한과 군사 협력을 추진할 가능성을 열어뒀다. 푸틴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회담 뒤 러시아 ‘로시야-1’ 방송 인터뷰에서 ‘회담에서 군사기술 협력 문제가 논의됐나’라는 질문에 “현재의 규정(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틀 내에서도 (군사기술 협력) 가능성은 있다”며 “이에 대해 우리도 주의를 기울이고 있고 그것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과 무기·기술 거래가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위반이라는 국제사회의 비난을 의식하면서도 북한과 군사 협력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러시아가 위성과 핵 무력 관련 기술을 북한의 기대만큼 지원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 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이 회담이 끝나고 기자들에게 “북한이 원한다면 북한 우주비행사를 훈련시켜 우주로 보내는 방안이 논의됐다”고 말한 점이 이를 시사한다. 박 교수는 “우주비행사 훈련은 북한이 원하지 않는 것”이라며 “러시아가 실제 우주 기술을 전달해줄지 의구심이 든다”고 평가했다.
북한의 정상회담 보도가 두 나라 정상의 합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은 점이 특징적이다. 홍 위원은 “이벤트로서 회담에 대한 주목 효과는 누리되 결과를 두고 여러 가지 추측을 자아내며 두 나라 밀월 관계의 깊이를 가늠하기 어렵게 하는 전략적 판단”이라고 분석했다. 전날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의 회담 모두발언과 만찬 연설을 이례적으로 생중계한 점이 고려됐을 수도 있다.
통신은 김 위원장이 만찬이 끝난 뒤 푸틴 대통령에게 북한 방문을 초청했고 푸틴 대통령은 “쾌히 수락했다”고 보도했다. 이날 크렘린궁도 푸틴 대통령의 방북 수락 사실을 발표했다. 향후 추가 정상회담 가능성을 내비치며 양국 관계가 지속적으로 강화될 것임을 과시했다.
크렘린궁 대변인은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이르면 다음 달 초 북한을 방문해 최선희 외무상과 회담할 수 있으며, 가까운 시일 내에 ‘러·북 통상경제·과학기술 협력 정부 간 위원회’ 재개를 추진한다고도 밝혔다.
이번 회담은 북·러관계를 한층 강화시켜 동북아 정세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평가된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러관계가 제한적인 경제 협력과 인도적 지원이라는 전통적 친선 관계에서 국방 기술협력 중심의 전략적 관계로 격상됐다”고 밝혔다.
홍 위원은 “한·중, 한·러 수교로 동북아에서 탈냉전이 본격화한 이후 가장 일대기적인 지형 변화가 시작됐다”며 “동북아 안보 지형이 그동안 ‘북한 대 나머지 국가들’이었다면 ‘북·러 대 나머지 국가들’로 달라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날 회담을 마치고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를 떠난 김 위원장은 전용열차를 타고 하바롭스크주에 있는 산업도시 콤소몰스크나아무레로 이동했다. 교도통신은 러시아 당국 소식통을 인용해 김 위원장이 이날 저녁 도착 후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 미하일 데그탸레프 하바롭스크주 주지사 등과 만찬에 참석한다고 보도했다. 이 소식통은 김 위원장이 15일 콤소몰스크나아무레에 있는 첨단 다목적 전투기 수호이(Su)-57과 민간 항공기 등을 생산하는 ‘유리 가가린’ 전투기 공장을 시찰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박광연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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