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음파 사용' 한의사, 9년만에 무죄…첨단의료기기 사용 족쇄 풀리나
의협 "참담함 금할 수 없어…국민 건강·생명에 심각한 위험 초래"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초음파를 사용한 한의사의 의료행위를 둘러싸고 9년간 끌어온 법정소송의 승자는 한의사였다.
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9부(부장판사 이성복)는 오후 2시 의료법위반 혐의로 기소된 한의사 박모 씨에 대한 파기환송심에서 원심 판결을 기각하고 무죄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전체 의료행위, 경위, 목적, 피고인의 경력 등을 비춰 볼 때 피고인이 초음파 진단기를 보조적으로 사용해 진단한 행위가 한의학적 원리에 의하지 않았음이 명백하다거나 그로 말미암아 통상의 의료행위 수준을 넘어서는 보건위생상 위해가 발생했음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사건의 시작은 1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자궁내막증식증을 앓고 있던 A씨는 2010년 3월부터 2012년 6월까지 자궁·난소 치료 전문 한의원에서 초음파 검사 68회를 받으며 한약을 지어 먹었다. 하지만 병에 차도를 보이지 않자 산부인과를 찾은 A씨는 자궁내막암 2기 판정을 받았고, 한의사 박씨는 2014년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 금지조항'을 위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과 2심은 한의사 박씨에게 유죄판결을 내렸다. "초음파 진단기기가 한의학 이론이나 원리에 기초해 개발됐다고 볼 수 없고, 한의학 전문 과목에 영상의학과가 없다"는 게 요지였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한의사 박씨에게 벌금 8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돌려보냈고,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전원합의체 논리를 따라 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법조계는 이 같은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단이 앞으로 첨단 의료기기 사용을 둘러싸고 이어지는 양의계-한의계 갈등의 법원 판단에 계속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했었다.
실제로 한의사 초음파 사용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지난달 뇌파계 사용에 대한 대법원 판결과 전날(13일) 열린 엑스선 골밀도측정기 1심 판결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의사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에 대한 전원합의체 판결 요지는 다음과 같다. △관련 법령에 한의사의 해당 의료기기 사용을 금지하는 규정이 있는지 △기본적·전문적 지식과 기술 수준에 비추어 한의사가 진단의 보조수단으로 사용하게 되면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는지 △한의사가 그 진단용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한의학적 의료행위의 원리에 입각하여 이를 적용 내지 응용하는 행위와 무관한 것임이 명백한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문제될 게 없다는 취지다.
엑스선 골밀도 측정기 사용과 관련한 1심에서도 재판부는 전합의 이같은 논리에 근거해 소아환자의 성장판 검사를 한 혐의(의료법 위반)로 기소된 한의사 B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줄줄이 이어지는 소송에서의 잇단 승전보에 대한한의사협회는 환영의 뜻을 표하며 정부에 후속 대책 등을 요구하고 있다.
권선우 대한한의사협회 의무이사는 "지난해 한의사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은 합법이라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이 나온 이후 뇌파계와 엑스선 골밀도측정기까지 승소가 잇따르고 있다"며 "이렇게 양의사와 한의사가 계속해서 갈등을 빚으며 가느니 하루빨리 정부가 전향적으로 입장을 바꿔 물꼬를 터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의 진료 선택권 확대와 진료 편의성 제고를 위해 건강보험 급여화가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며 대한민국 3만 한의사가 자유롭게 모든 현대 진단기기를 진료에 활용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반면 대한의사협회는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의협은 "이 판결들로 국민의 건강과 생명에 대한 심각한 위험이 초래될 것"이라며 "현행 형사소송 절차에서 허용되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국민 건강권이 외면되지 않는 올바른 사법부의 판단이 다시 내려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가장 관심을 모았던 뇌파계와 초음파 사용에 대한 판결이 끝이 나긴 했지만 양의사-한의사의 법정 다툼은 계속될 전망이다.
오는 11월엔 한의사들이 질병관리청을 상대로 제기한 코로나19 신속항원검사(RAT) 사용에 대한 행정소송1심 판결이 예정돼 있다. '한의사들도 신속항원검사를 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에 질병청이 질병보건통합관리시스템 접속을 차단하자, 한의사 13명이 질병청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한 건이다.
또 같은 달 한의사의 '리도카인' 사용 소송 선고 공판이 10일 열린다. 국소 마취에 사용하는 전문의약품인 '리도카인'을 봉약침액과 섞어 사용한 한의사 C씨가 의료법 위반 혐의로 벌금 800만 원의 약식명령을 받은 뒤, 이에 불복해 정식 재판을 청구한 건이다.
sssunhu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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