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한 탄압과 경제난에 잊히는 이란 ‘히잡 시위’…그래도 투쟁은 계속된다[히잡시위 1년]

손우성 기자 2023. 9. 14.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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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잡 미착용 의문사 이란 여성 아미니 사망 1년
아미니 삼촌 체포·히잡법 제정 등 추모 저지
심각한 경제난에 “히잡은 부차적인 문제” 목소리도
타임지 “아마니 죽음, 여전히 이란 정권 괴롭혀”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지난 9일(현지시간) 히잡을 착용하지 않은 한 여성이 음악을 들으며 거리를 걷고 있다. AP연합뉴스

22세 이란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을 느슨하게 착용했다는 이유로 도덕경찰에 체포됐다가 의문사한 지 오는 16일(현지시간)로 만 1년이 된다. 아미니 죽음을 계기로 이란에선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전개됐고,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을 비롯한 이란 정부는 이를 잔인하게 탄압했다. 노르웨이에 본부를 둔 인권단체 이란휴먼라이츠(IHR)가 지난 4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시위 첫 달에만 최소 537명이 사망했다.

당시 국제사회는 분노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란 정권은 수십 년 동안 자국민의 자유를 부정하고 협박과 강요, 폭력으로 억압해 왔다”고 날을 세웠고, 유엔과 인권단체에서도 다양한 경로로 우려를 제기했다. 이란을 겨냥한 각종 제재도 이뤄졌다. 일각에선 이러한 국제사회의 압박과 연대가 이란 신정 권위주의 체제에 균열을 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아미니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지난 지금, 이란 사회에서 ‘히잡 시위’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는 “이란은 개혁하기에 이념적으로 매우 경직돼있고 무자비하다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평가했다.

지난 10일(현지시간) 이란 수도 테헤란 중심가 한 건물에 이란 초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왼쪽)와 현 지도자인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의 벽화가 새겨져 있다. AFP연합뉴스

히잡 시위가 동력을 잃은 가장 큰 원인으론 당국의 강경한 진압이 꼽힌다. 이란 보안군은 지난 5일 북서부 사케즈에서 아미니의 삼촌 사파 아엘리를 영장 없이 체포하는 등 아미니 사망 1주기를 앞두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시위에 참여했던 남성 7명이 반론권 등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은 채 사형당했다.

히잡 미착용 여성에 대한 강력한 처벌도 계속되고 있다. 이란인터내셔널에 따르면 이란 사법부는 지난 8일 건축 엔지니어인 제이나브 카젬푸어에게 태형 74대를 선고했다. 그는 지난 2월 테헤란에서 열린 ‘건축 엔지니어링 조직 연례 총회’에서 히잡을 쓰지 않은 채 연단에 올라 “스카프를 두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총선 출마를 불허하는 의회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7개월 만에 판결을 내린 배경에 대해 이란인터내셔널은 “아미니 1주기를 앞두고 이란 당국이 고조되는 분위기를 차분하게 만들기 위한 노력”이라고 분석했다.

나아가 이란 의회는 새로운 히잡법 제정도 추진하고 있다. 미 CNN 등에 따르면 70여 개 항목으로 구성된 법안엔 히잡을 착용하지 않은 여성에게 5년에서 10년의 징역형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기존엔 2개월 구금이 최대였다. 벌금도 700배 이상 인상할 계획이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해 히잡 미착용 여성을 단속하겠다는 뜻까지 내비쳤다.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한 시민이 지난 11일(현지시간) 인터넷에 접속하기 위해 가상사설망(VPN)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다. 이란 당국은 ‘히잡 시위’ 발생 1년을 맞아 일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차단했다. AFP연합뉴스

더 큰 문제는 심각한 경제난으로 대중 사이에서 히잡 시위에 대한 여론이 차갑게 식었다는 점이다. 수도 테헤란에 사는 41세 자흐라는 AFP통신에 “나는 히잡보다 경제 문제가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고, 회계사 라하 또한 “히잡은 완전히 부차적이고 개인적인 문제”라고 주장했다. AFP통신은 “인플레이션이 50%에 육박하고,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는 가운데 이란의 많은 사람은 인권보단 경제가 우선이라고 믿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최근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복원을 놓고 미국과 이란 사이에 부는 훈풍도 히잡 시위에 관한 관심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꼽힌다. 미국 등 서방이 이란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인권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여전히 이란 곳곳에선 히잡 벗을 권리를 위한 투쟁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아미니의 아버지를 인터뷰했다는 이유로 악명 높은 에빈교도소에 수감됐다가 최근 출소한 언론인 나질라 마루피안은 아미니 1주기를 앞두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노예제를 거부하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란 여성들이 지난 5일(현지시간) 수도 테헤란 최대 시장인 그랜드 바자르를 히잡을 쓰지 않은 채 걷고 있다. AFP연합뉴스

프랑스24는 “히잡 시위의 원인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며 “당국의 단속이 강화되고 탄압의 나사가 더욱더 단단해졌지만, 이란 여성들은 자신의 권리를 위해 용감하고 솔직하게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전했다. 타임지도 “아미니의 죽음은 지금까지도 이란 정권을 괴롭히고 있다”며 “이란 당국이 얼굴인식 기술 등을 도입해 여성들을 압박하고 있지만, 지금도 거리엔 히잡 착용 규칙을 무시하는 수천 명의 사람이 있다”고 평가했다.

국제앰네스티 독일 지부도 13일 발표한 성명에서 “이란 당국이 수십 년간 억압과 불평등에 저항해 온 이란 국민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잔혹 행위를 저질렀다”며 “국제 사회가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 [히잡시위 1년] 구기연 교수 “이란 정권, 히잡 시위로 민중의 힘 인식…처벌 강화는 두려움 때문”
     https://www.khan.co.kr/world/mideast-africa/article/202309141716011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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