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의 창] 불행한 미래를 함께 방어하는 존재

2023. 9. 14.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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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불행을 함께 방어하는것
그것은 혈연보다 연대에 가까워
해체가 아니라 재정의되어야

소설을 쓸 때 나는 가족 관계로 맺어진 인물을 자주 등장시킨다. 그런 이유로 북토크 자리에서 가족의 의미를 묻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때마다 나는 이렇게 답한다. "가족이란 불행한 미래를 함께 방어하는 존재인 것 같다." 우리 대다수는 살면서 행복한 일보다 힘든 일을 더 많이 겪었을 것이고, 가족이나 친구의 격려와 위로로 고난을 극복한 적이 많을 것이다. 나는 인생의 고비가 파도처럼 주기적으로 온다는 것을 깨닫고 난 뒤로 소설에 가족을 자주 등장시키게 되었다. 그러나 혈연 기반의 가족만을 떠올린 것은 아니다. 최소 단위의 공동체라는 의미에서 '가족'이라고 칭한 것일 뿐, 느슨한 연대를 가진 공동체여도 충분하다.

서울시 기준으로 고립 은둔 청년이 10만명을 넘어섰다. 고립 청년의 기준은 다음과 같다. 힘들 때 정서적으로 의지할 사람이 없는 정서적 고립과 대면 교류가 없는 물리적 고립을 모두 겪고 있는 사람으로 6개월 이상 고립 상태가 지속된 경우다. 은둔 청년은 취미 활동이나 필수적인 소비 활동 등을 제외하곤 집에만 머물러 있는 사람으로 구직 활동이나 학업을 전혀 하지 않고 6개월 이상 은둔 상태가 지속된 경우다.

가족과 함께 살아도 은둔 청년이 되는 경우가 있다. 한집에 살지만 대화가 단절된 상태이거나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없어서 소통을 포기한 상태라면 그럴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선 당연히 가족 공동체의 기능이 제대로 발휘될 수 없다. 내가 혈연 기반의 가족만 고집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어떠한 이유로든 대화와 소통이 단절된 공동체가 되었다면 더 이상 공동체라 부를 수 없다. 함께 살더라도 고립과 은둔의 영역으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가족의 개념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는 이 시대에 다소 염려되는 것은 가족의 가치를 폄하하며 해체를 주장하는 방향으로 오도되는 상황이다. 기존의 가족 '제도'가 갖고 있는 문제점은 해체되어야 하는 것이 맞는다. 그러나 가족이라는 최소 단위의 공동체가 해체되는 것은 고립 은둔 청년은 물론이고 그런 중장년까지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편견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가족 제도는 해체되어야 마땅하지만, 가족이라는 최소 단위의 공동체는 우리에게 여전히 소중하다. 고립 은둔 청년이 증가하는 이 시대에는 더더욱 그렇다. 다만 가족이라는 개념의 재정의가 병립되어야 할 필요성은 있다. 미래의 가족은 현재의 가족과 달라야 한다는 의미다. 가족이 되기 위해 필요한 조건 및 개념의 정의에 있어서 많은 것들이 달라져야 한다. 최소 단위 공동체의 기능을 북돋우는 방향으로 향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미래의 가족은 특정한 조건을 갖춘 사람들의 결합이 아닐 것이다. 성적 지향에 상관없이 가족이 될 수 있으며, 우정이나 연민을 기반으로 한 유사 가족 역시 가족이 될 수 있다. 누군가를 돌보는 사람의 마음엔 포기 대신 희망이 깃들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반려동물은 물론이거니와 반려식물 역시 가족이 될 수 있다.

가족의 의미를 확장해 현재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 볼 수도 있다. 한집에 살지 않더라도 마음이 맞는 사람들로 구성된 커뮤니티가 있다면 그 구성원들과도 가족이 될 수 있다. 느슨한 연대로 만들어진 공동체 역시 가족이 될 수 있다. 가족이라는 개념을 크게 확장해 우리가 서로에게 가족이 되어줄 수 있다면, 고립 은둔 상태에 놓인 많은 사람들에게 연결성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직장에 다니고 가족과 친구가 곁에 있더라도 심리적으로 고립 상태에 놓여 있다고 느끼는 이들에게도 새로운 의미의 가족이 필요하다. 가족의 해체가 아니라 가족이라는 개념의 확대가 필요한 시대다. 우리에겐 불행한 미래를 함께 방어하는 존재가 필요하다.

[이서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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