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러시아의 ‘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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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러시아 군가 '성전(The Sacred War)'은 세계 군가 중에서도 압권이라 할 만한 명곡이다.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3일 푸틴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러시아의 '성전'이라고 표현했다는 보도를 보며 의구심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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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러시아 군가 ‘성전(The Sacred War)’은 세계 군가 중에서도 압권이라 할 만한 명곡이다. 나치 독일이 소련을 침공한 지 이틀 후인 1941년 6월 24일 소련공산당 기관지 ‘이즈베스티야’ 등에 시가 게재됐다. ‘일어나라, 거대한 나라여/일어나라, 죽음의 전투를 위하여!//중략//고결한 분노가, 파도처럼 끓어오르게 하라/성스러운 전쟁이 치러지고 있다!’는 내용의 독전시였다. 후에 소련 국가를 작곡한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프가 즉석에서 그 시에 피 끓는 분노와 장중한 격정을 불러일으키는 곡을 붙였다고 한다.
▦ 군가가 발표될 당시 소련군은 180만 대군이 동원된 나치 독일군에 파죽지세로 밀리고 있었다. 그 참담한 시기에 참호 속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성전’은 악전고투하던 소련군들에게 죽음까지 불사할 항전의 용기를 불어넣은 환각제이기도 했다. ‘성전’의 가사는 나치를 사악한 파시스트로 규정하고 독소전쟁, 곧 소련에서 말하는 ‘대조국전쟁’을 조국과 인류를 수호하기 위한 성전으로 승화시키는 내용이었다.
▦ 사실 독소전쟁은 소련으로선 성전으로 승화되지 않았다면 승리의 영광도 크게 퇴색했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피해가 막심한 전쟁이기도 했다. 스탈린의 무조건 사수 명령에 모스크바 공방전에서만 100만 명의 소련군이 전사했다. 독소전쟁 전체 기간 중 소련 측 사망자는 군인과 민간인을 합쳐 당시 한반도 인구보다 훨씬 많은 2,900만 명에 달한 것으로 추산됐다. 그런 참혹한 피해에도 불구하고 ‘성전’으로 승화됐고, 승리했기 때문에 러시아의 위대한 역사가 된 것이다.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3일 푸틴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러시아의 ‘성전’이라고 표현했다는 보도를 보며 의구심이 들었다. 우크라이나 침공은 러시아 내에서도 비판이 만만찮은데, 그걸 러시아의 역사적 ‘성전’에 갖다 붙였다면 외교적 실책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경위를 짚어 보니, 김정은이 “(러시아가) ‘정의의 위업’을 벌이고 있다”고 애매하게 말한 걸 로이터 등 외신이 ‘sacred war’로 번역해 기사를 냈고, 그걸 국내 언론이 ‘성전’으로 직역해 빚어진 해프닝이었다. 아무리 김정은이라도 우크라 전쟁을 ‘성전’으로까지 미화하지는 않았다는 게 다행이다.
장인철 수석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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