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칼럼] 20년 독과점이 불러온 5G 시장실패
“LTE(4세대 이동통신)와 속도 차이를 못 느끼는데 왜 요금은 더 비싸게 내는지 모르겠다.”
기자는 2021년 5월 휴대폰을 바꾸면서 LTE에서 5G(5세대 이동통신)로 갈아탔다. 통신 3사를 통해 휴대폰을 최신형으로 교체하면 LTE로 가입하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단말기 가격을 제외한 휴대폰 요금(월 기준)은 1만3000원가량 비싸졌다. 당시만 해도 통신요금을 더 내더라도 통신사의 “5G는 LTE보다 20배 빠르다”라는 광고를 보고 혁신적인 서비스를 체험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도 LTE와 속도 측면에서 크게 달라진 것을 못 느끼고 있다. 이는 기자 개인에 국한된 사례가 아니다. 현재 “5G와 LTE 요금 간의 차액을 돌려달라”라고 집단소송을 낸 이용자가 1000명에 달한다. 20배 빠른 속도를 전제로 약탈적 요금을 받아놓고 이를 지키지 않으니 사기라며 차액을 돌려달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특정 장소에서라도 빠른 속도를 체감할 수 없는 이유는 지난해 KT, LG유플러스에 이어 올해 5월 SK텔레콤까지 LTE보다 20배 빠른 속도를 실현할 핵심 주파수인 28㎓를 반납했기 때문이다. 통신 3사는 해당 주파수를 총 6223억원에 따놓고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다”라며 포기했다. 이용자 입장에서는 통신사가 전략을 바꾸면서 고객들과 약속한 속도는 느낄 수 없는데 왜 이를 전제로 상대적으로 비싼 5G 요금을 계속 내야 하는 지 억울하다.
박윤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차관은 지난 2월 20일 “우리 통신 산업을 보면 시장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해 가격에 의해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되지 못하는 ‘시장실패’ 상태에 있다”라고 진단했다. 통신 산업을 수술하지 않으면 산업은 도태되고, 피해는 국민이 떠안아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다수의 전문가는 통신 3사가 20년 넘게 내수산업인 통신 시장에서 과점체계를 형성하면서 경쟁이 둔화됐고, 각 사가 망 투자에도 소홀했다고 이야기한다. 정해진 시장을 3사가 나눠 갖다보니 암묵적으로 비슷한 요금을 출시하고, 약속이라도 한듯 투자를 등졌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 과정에서 정부도 책임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정부는 2019년 국제표준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세계 1등”에 집착해 성급하게 5G 상용화를 밀어붙였다. 과거 통신 가입자가 급증할 때는 정부가 강력하게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고 사업자들이 투자하면서 정부와 사업자 간 이해관계가 잘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시장이 포화된 상황에서는 사업자들이 투자를 꺼려 정부와 사업자 간 불협화음이 나는 것이다.
지금 와서 누구의 잘못을 따지는 것이 의미는 없다. 사업자와 정부의 엇박자 속에서 피해는 고스란히 이용자에게 ‘값비싼 통신요금’으로 돌아간 상황이 답답할 뿐이다. 통신 사업자가 1개인지, 100개인지도 중요한 게 아니다. 하지만, 과점적 상황이 경쟁을 저해하고 있어 변화가 필요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정부가 6월 내놓은 ‘통신 시장 경쟁 촉진 방안’에서 제안한 제4 통신사 유치와 알뜰폰 육성은 시장에 전혀 긴장감을 주지 않고 있다. 정부 또한 반복적인 대책보다는 사업자가 경쟁할 마음이 들 대안을 꺼내고, 이들이 경쟁 수단을 마련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통신 3사 역시 통신이 사치재가 아닌 필수재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통신비가 올라가면 가계 지출이 늘어난다. 통신사도 어느 정도 사회적 책임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통신사 역시 이익을 추구해야 하는 민간 기업이기는 하지만, 사회의 핵심 인프라를 담당하는 만큼 책임이 필요하다.
통신 3사가 영업이익 4조원을 내며 과점 이익을 향유하고 있는 사이 국민은 통신비에 분통이 터지고, 한국의 네트워크 위상은 흔들리고 있다. 영국 시장조사기관 오픈시그널은 13일 “다른 나라가 한국보다 먼저 28㎓ 5G를 구축하면서 한국의 5G 리더십이 위험에 처했다”라고 진단했다. 시장실패 상황을 고치지 않으면 국민의 피해는 물론 한국이 세계무대에서 밀리는 것은 한순간이다.
[안상희 통신인터넷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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