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배터리 지금이 기회..중국처럼 하라!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2023. 9. 14.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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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희의 思見]
[편집자주] 재계 전반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사견(私見)일 수도 있지만, 이보다는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라는 누군가의 에세이집 제목처럼 세상의 문제를 깊이 있게 생각하고, 멀리 내다보자는 취지의 사견(思見)을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서울=뉴스1) = 지난 5~10일(현지시간) 독일 뮌헨에서 열리는 'IAA 모빌리티 2023(옛 프랑크푸르트 모터쇼)' 삼성SDI 부스 전경. (삼성전자 제공) 2023.9.4/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U집행위원회가 지난 13일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반(反)보조금 조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이는 중국 전기차의 급성장에 대한 EU의 두려움의 표시다. 또 EU 자동차 시장을 더 이상 저가의 중국 전기차에 내주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미국에 이어 EU와 중국의 충돌은 우리 전기차 및 배터리 업계에는 기회다. 그동안 폐쇄적인 중국의 보조금 정책으로 중국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고, 유럽 시장에서는 저가의 중국 전기차와 경쟁했던 우리에겐 돌파구가 생긴 셈이다.

우리 정부와 기업은 이번 기회를 통해 전기차와 배터리 시장에서도 메모리 반도체와 같은 영광의 길을 찾아야 한다. 그 길을 가기 위해선 중국이 배터리 산업 육성을 위해 걸어온 길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유럽은 전통적인 자동차 강국이었다. 산업혁명의 시발점인 영국에서 출발해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 등에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자동차 회사들이 즐비하다.

이들의 내연기관 엔진기술은 타의추종을 불허했다.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더욱 공고해진 기계와 엔지니어링 기술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을 주름잡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은 전세계에서 가장 먼저 친환경 에너지 정책을 폄으로써 스스로의 강점인 내연기관의 발목을 잡았다.

그런 내연기관의 기술 경쟁력을 하루 아침에 무너트린 것이 전기 자동차다. 2만개 이상의 부품이 결합돼 만들어지는 내연기관 자동차는 오랜 역사를 농축한 종합예술이지만, 새 패러다임인 전기차는 배터리와 모터만 있으면 어쨌든 굴러가는 시스템으로 모두에게 생소한 분야다.

기존 내연기관 체제에서 중국이 유럽 자동차 업체들을 따라잡기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모두가 동일한 출발선에 서 있을 때는 기존 사업이 없는 중국 쪽이 더 유리하다. 테슬라가 단번에 전기차 시장의 강자로 올라설 수 있었던 것도 내연기관보다 부품이 10분의 1로 줄어 상대적으로 진입장벽이 낮았던 이유도 있다.

기존 내연기관 사업을 하던 업체들은 새 사업에 발만 담궈놓을 때 중국은 전기차에 올인했다. 그 결과는 지금 나타난 것과 같다. 전세계 2차 전지 업체 톱10 중 6개사가 중국 기업이다. 세계 1위와 2위인 중국의 CATL과 BYD는 전세계 전기차 배터리의 절반 이상을 공급하고 있다.

우리의 LG에너지솔루션(3위)과 SK온(5위), 삼성SDI(7위)를 합친 것(23.5%)보다 2배 이상 많다. 한 때 세계 1위였던 일본의 파나소닉은 4위로 떨어졌다.

중국이 이처럼 빠르게 세계 전기차 시장을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은 자유시장경제 체제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사회주의 공산체제의 쇄국적 산업육성 정책의 영향이 컸다.

2009년 미국의 테슬라가 모델S를 공개한 후 발아기를 맞았던 전기차 시장은 2016년부터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당시 중국이 경쟁국인 한국의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에는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는 방식으로 쇄국정책을 펴며 자국 배터리 업체를 키웠다.

보조금지급과 함께 핵심적으로 추진했던 정책이 빅데이터의 수집이다. 2017년 중국 정부는 전기차 OEM(주문자상표부착방식) 업체들에게 배터리 매니지먼트 시스템(BMS: Battery Management System) 데이터를 의무적으로 정부에 제공하도록 했다. BMS 장치에는 주행·충전 시 배터리의 전압·전류·온도·저항 등의 데이터가 생성된다.

이 데이터는 배터리 안전과 사고 예방, 제품 및 생산 품질 제고, 배터리 수명을 최대화 할 수 있는 기술 개발에 필요한 정보들이 담겨 있다. 중국 정부는 보조금을 주는 대신 이런 데이터를 취합해 자국 기업경쟁력 제고에 활용했다.

모든 초기 산업은 시행착오가 많을 수밖에 없다. 이는 신약을 개발하는 것과도 비슷하다. 인간을 대상으로 한 많은 임상시험을 통해 부작용을 찾아내고 이를 개선해 최선의 약효 가진 물질을 누가 빨리 찾느냐가 성패의 관건이다.

중국은 초기 전기차 시장에서 발생한 온갖 사고가 논란이 되기 전에 언론통제를 통해 막고, 대신 BMS 데이터 분석을 통해 안전성 관련 규제와 가이드라인을 제정했다. 중국 전기차 사용자를 대상으로 대규모 임상시험을 한 것과 같다. 이를 통해 OEM 뿐만 아니라 배터리 제조사인 CATL에게도 다량의 BMS 데이터를 제공해 배터리 사업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도록 했다. 이것이 CATL이 세계 1위 배터리 제조업체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던 배경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가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을 지급함에도 불구하고 데이터 수집이나 관련 제도 및 인프라가 없는 상황이다. 전기차 업체들이 BMS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으나 이를 배터리 업체나 재사용 사업자에게는 제공하지 않고 자체적인 시스템 개선에만 사용하고 있어 반쪽 짜리 정보로 전락하고 있다.

전기차의 안전과 성능 품질 향상을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금을 받는 전기차는 그 정보를 협력업체들과 공유하는 것이 옳다. 중국과 같은 막무가내식 방법은 옳지 않지만 개인정보가 노출되지 않는 빅데이터는 공공자산으로서 관리돼야 한다.

저가의 중국산 CATL이나 BYD의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에 우리 국민의 세금을 그냥 퍼줄 수는 없다. 세금이 투입된 만큼 이 데이터를 활용해 우리 K-배터리 기업들이 기술혁신에 나서 국부를 키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해당 데이터를 공공정보화해 국민 누구나 열람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BMS 데이터 공유의 제도화가 시급하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hunte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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