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미래] 매우 다른 대한민국
자녀를 경제적 부담으로 인식
희망의 부재는 결혼·출산 억제
해답은 고용… ‘판교’에 미래 있어
모두가 동의하는 이론이나 공유하는 경험에서 벗어나 잘 설명되지 않는 현상을 학자들은 예외나 일탈로 정의한다. 우리 사회는 빠른 경제성장으로 개발도상국의 지위에서 선진국에 진입한 유일한 사례이며 짧은 시간에 출산율 0.78 수준까지 떨어진 초스피드 고령사회다. 지난 20여년간 500시간이 넘는 연간 근로시간을 단축했음에도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CED) 평균보다 150시간을 더 일하는 나라이면서(2022년 1901시간), 근로자의 노동시장 은퇴 연령이 가장 늦다(약 72세).
일에 부여하는 가치와 직업을 대하는 태도 또한 예외적이다. 영국 킹스칼리지 정책연구소가 세계 주요국 국민을 조사해 지난 7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열심히 일하면 결국 잘살게 될 것이다’에 동의한 한국인은 16%에 불과하다. 조사 대상국 가운데 가장 낮다. 반면 ‘일과 운이 성공에 똑같이 중요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우리가 압도적으로 높다(70%). 일만 열심히 해서는 안 되고 운이 받쳐줘야 잘살 수 있다는 생각이다. 서울대 아시아연구소가 지난해 세계 주요 대도시 시민 1만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도 유사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열심히 일하면 결국 성공한다’에 응답한 사람(24.3%)에 비해 ‘열심히 일하는 것보다 배경이 좋아야 성공한다’에 응답한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56.7%). 다른 도시의 응답 경향은 정반대다. 근로조건이나 일의 가치 및 기대감 모두에서 만족도가 세계 최저수준이니 노동시장이 이대로 지속가능할지 걱정이다.
일과 직업의 중요성은 인정하나, 그것만으로 경제적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특히 자기 일에 대한 만족도 수준은 매우 낮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으로 분단된 노동시장, 그것이 초래한 사회적 계층화와 이동의 단절에 따른 신분화가 예외적 인식을 결과한 것으로 보인다. 열심히 일해도 잘살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85%는 분단된 우리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한 축을 그대로 반영한다.
걱정거리는 사회 어디에도 해법과 해결 능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책과 정치가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고 대안적 미래를 열어주지 않으면 사회경제적 불만은 제도 밖에서 집단화 될 가능성이 높다. 대낮 도심의 ‘묻지 마 폭력’, 주말이면 광장에 모여드는 시위대 모두 중증 동맥경화 상태의 노동시장이 초래한 문제다. 무엇보다 일에 불만족하며 자녀를 경제적 부담으로 인식하는 사회에 미래가 있을 수 없으며, 희망의 부재는 결혼을 유보하게 하고 출산을 억제한다. 저출산 고령화의 가속페달을 노동시장이 밟고 있는 셈이다.
만족을 주는 일자리가 적고, 소수의 일자리를 둘러싼 다툼이 치열하며, 경쟁에서 탈락한 다수가 불만인 대한민국 노동시장에서 어떠한 ‘노동개혁’도 사상누각이다. 노동시장 혁신의 핵심은 다시 일자리다. 일자리 간 이동성, 일자리 질의 균등성, 임금과 근로조건 결정의 합리성 등이 전제되어야 직업을 통한 성공 가능성이 커지며, 일에서 만족할 수 있다. 대기업이 일자리를 더 만들거나, 중소기업 일자리의 질이 획기적으로 좋아져야 하는데 둘 다 불가능하다.
좋은 일자리를 공급할 역량이 가장 큰 시장은 ‘판교’다. 이동이 활발하고 일자리의 질은 균등하다. 근로조건 결정도 내부노동시장이 아닌 직무형 외부시장이 규율한다. 그곳에서 희망의 커리어가 생산된다. 10년 내에 ‘판교’ 10개를 만들지 못하면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지구상에서 가장 빨리 사라지는 나라가 될 것이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전문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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