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셋집 떠도는 고단한 인생, 예술가도 똑같네…이주요 개인전

이한나 기자(azure@mk.co.kr) 2023. 9. 14.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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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요 10년만에 개인전
‘백 개의 카트와 그 위에’
소격동 바라캇 컨템포러리
이주요 개인전 전경. <바라캇 컨템포러리>
웬 남자가 이태원에서 아침부터 소리 지르며 서럽게 울고 있었다. 경찰이 도착하자 범인은 ‘큰 흑인 하나, 작은 흑인 하나’라며 반복 대답할 뿐이다. 그는 택시 기사. 외국인 승객 2명에게 구타당하고 그날 번 돈을 털리고 말았다. 이 현장을 목격한 작가 이주요(52)는 그 장면을 영어로 기록하고 거대한 벽에 아주 고된 육체노동을 거쳐 재현하는 목재 구조물 ‘타자기’(2010)를 만들었다. 온몸으로 힘껏 발로 차서 단어를 하나하나 찍어내는 방식으로 벽에 우리 사회 약자들의 이야기를 새겼다. 그 결과물이 바로 ‘큰 흑인 작은 흑인’(2012)이다. 기사에게 범인이 그저 흑인으로만 규정되듯, 해외 활동이 잦았던 작가도 그저 ‘아시아 여자’로만 취급받던 현실에 좌절했던 기억 등 복잡한 심경을 표현해야 했다.

정처 없이 레지던시를 떠도는 예술가와 전셋집을 전전하는 우리. 예술가들의 소장품을 우리네 고단한 인생처럼 비유한 전시 ‘Of Hundred Carts and On(백 개의 카트와 그 위에)’가 소격동 바라캇 컨템포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 2013년 아트선재 이후 10년 만에 선보이는 개인전이다. 지난 2019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에 선정됐던 개방형 수장고 ‘러브 유어 디포’ 프로젝트를 발전시키고 그간 작업을 총체적으로 펼쳤다.

시작은 떠돌이 인생이었다. 지난 2004년 한국인 최초로 네덜란드 라익스 아카데미 레지던시에 입주했던 작가는 프로그램을 마치자 작품을 둘 곳이 없어져 폐기할 위기에 처했다. 이 작품들의 여정을 출판물 ‘Of Five Carts and On(다섯개의 카트와 그 위에)’로 만든 작가는 다음 거처까지 불안한 상황과 함께 일종의 저항하는 예술을 선보였고, 이후 다른 예술가들 작품을 돌보는 수장고 중심으로 연대 혹은 공동체를 형상화하는 방식으로 확장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지난해 강남구 수서동 궁마을 공공예술 프로젝트로 선보인, 천천히 회전하면서 작품을 360도 보여주는 ‘턴 디포’의 실내형 버전과 회화 등 대형 평면 작업을 슬라이딩해 볼 수 있는 ‘페인팅 플레이트’가 큰 축이다. 후자는 청년세대가 좁은 방에 활용하는 ‘왕자행거’의 예술적 버전인데 의외로 견고하게 작품을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볼 수 있게 시야를 열어준다.

이주요 개인전 전경. <바라캇 컨템포러리>
작가는 일견 거친 나무나 금속관 등을 얼기설기 엮어 불안정해 보이는 구조물을 내걸고 그 위에 작가의 후배, 동료, 선배 작가들의 작품을 실었다. 2년 마다 전셋집을 전전하는 고단한 인생처럼 끊임없이 창작하고 시장에서 외면받는 작품을 껴안고 또 다른 작업실을 찾아 나서는 예술가의 여정이 고단하다. 작가는 우리 현실의 무게를 직시하고 그것을 튼튼히 지탱하면서 움직일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법을 이야기하고 있다. 5개의 카트는 미미하지만 동료 작가들과 연대해 만드는 100개의 카트는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된다. 아트포럼 등 미술 전문 매체가 프리즈 서울 기간 꼭 봐야할 전시로 꼽았고 주요 미술관 관계자들 방문도 잇따랐다는 후문이다.

한편 이번 전시부터 바라캇 컨템포러리가 기존 바라캇 서울 소격동 본관으로 이전해 열린다.

전시는 10월 27일까지.

이주요 개인전 전경. <바라캇 컨템포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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