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된 지도자'의 활로 '북중러 vs 한미일'…가능성에 한미 '손사래'
한미 양국 정부 고위 당국자들이 북러 정상회담을 계기로 재조명되고 있는 이른바 '한미일 대 북중러'식 세력 구도론에 대해 사실상 괴담이라는 반응을 잇따라 내놨다. 북러 양국 간에 전망되고 있는 군사 분야 협력에 중국이 가세할 만큼 북중러 3자 관계가 긴밀하지 않다는 논리다.
일반에도 대외 정세론의 일종으로 곧잘 회자되는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는 국제 사회에서 고립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정권 안정·체제 결속을 위해 가장 바라고 있는 구도라는 측면도 있다는 해석이 그간 외교 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기돼 왔다. 미국과 갈등 구도인 중국 러시아의 전면적 지원을 받아 대북 제재 완화 협상 등에서 북한이 목소리를 높이기 쉬운 구도라는 논리다. 아울러 윤석열 정부가 미일과 안보 공조·관계 개선을 정책 성과로 부각함에 따라 북중러도 결집하는 부작용이 발생했다는 식의 주장도 더불어민주당 측에서 나오곤 했다.
통일부 고위 당국자는 14일 기자들과 만나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론에 대해 "한미일과 북중러를 비교하면 북중러는 상당히 협력 강도가 허접하다고 봐야 한다"며 "중국은 한 발을 빼고 있는데 북한, 러시아하고 연대하고 같이 가면 얻는 손해는 엄청나 적극 가담하지 않는 상황에서 북중러를 마치 하나의 블록처럼 보는 것은 잘못됐다"고 답했다.
이 당국자는 과거 미소 냉전 상황과 '신냉전'으로 불리는 현재를 비교하며 "과거 미국하고 소련은 상호 의존성이 전혀 없었고 블록이 완전히 분리된 상태였다"며 오늘날 중국에 대해 "상호 의존성이 굉장히 심하고 국제 사회에 발을 한 발 담그고 있어 북러 연대에 가담을 한다면 견딜 수 없는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중국도 굉장히 신중한 입장"이라고 했다. 이어 "북한은 서울을 거치지 않고선 도쿄나 워싱턴에 갈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라며 대외 협상 창구로서 한국 정부의 중요성과 한미일 공조 체계를 함께 부각했다.
다만 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이날 북러 정상회담과 관련, "군사 협력과 무기거래에 대해 깊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는 등 우리 정부에선 북러 군사 협력 가능성에 대한 견제 메시지가 이어졌다.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북러의 동해상 연합훈련 가능성과 관련, "그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 대사도 이날 화상포럼에서 러시아의 대북 위성 기술 이전 가능성 등을 거론하며 "엄청난 우려사항"이라고 했지만 북중러 3각 연대 가능성에는 선을 그었다. 골드버그 대사는 "중국은 러시아와 양자 관계가 있다"면서도 "3자 관계로 들어가는 것은 다소 망설이고 있다"며 "중국은 아마도 그런 협력은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중국은 중러 외교 장관 회담을 앞두고 있어 푸틴 대통령의 외교적 고립 해소에 일정 부분 기여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최근 한국 단체관광을 허용한 데 이어 한국 고위층과 잇따라 접촉하는 행보도 보이고 있다.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론은 김 총비서가 대미 협상에서 제재 완화를 이끌어내지 못한 결과 의존하고 있는 정세론이라는 관측도 제기돼 왔다. 앞서 김 총비서는 2022년 말 주재해 열린 당 중앙위 8기 6차 전원회의에서는 "국제관계구도가 '신랭전'체계로 명백히 전환되고 다극화의 흐름이 더욱 가속화"됐다는 정세 판단이 들어갔다. 대미 협상보다 중국, 러시아 등과의 관계 강화로 대외 정세에 대처하려는 김 총비서의 속내를 반영한다는 분석을 받아 왔던 문구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는 성립되기 어렵고 냉전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1940년대부터 90년대까지 경험했던 냉전도 불가능하다"라며 "양자 교역 규모가 1위인 상대국이 중국인 나라가 한국을 포함해 120여개국인데 중국과의 디커플링(탈동조화)이 불가능한 것이고 북한의 입장에선 진영이 구축될수록 외교적 고립에서 탈피할 수 있어 외형적으로 신냉전을 비판하지만 속마음은 원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 국책 연구기관 관계자는 "한미일 대 북중러 3대3 구도는 김정은이 지금 가장 원하고 있는 것일 것"이라고 했다.
김지훈 기자 lhsh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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