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의 명과 암…모로코 지진 피해자들이 관광객 환영하는 사정
큰 재난을 입은 국가로 여행을 가는 것은 윤리적으로 옳은 일일까. 하와이에 이어 모로코까지 세계적인 관광지가 잇달아 큰 재해를 입은 상황에서 관광객들도 윤리적 딜레마에 빠졌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국가적인 집단 애도 상황에서 외지인이 관광을 하는 행위가 비윤리적이라는 목소리도 있지만, 여행을 가서 지출을 하는 것이 현지인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지난달 큰 화재로 100명 이상이 숨진 하와이에서는 관광객을 몰아내려는 움직임이 일어난 바 있다. 구조대가 생존자를 수색하는 동안 관광객들이 해변에서 일광욕하는 장면이 주민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당시 마우이섬의 한 주민은 BBC와의 인터뷰를 통해 “사흘 전에 우리 주민들이 (산불을 피하려다) 바다에 빠져 죽었는데 바로 다음날 관광객들이 같은 물속에서 수영을 했다”며 “주민들이 살아가는 곳과 그들(관광객들)이 방문하는 곳, 두 개의 하와이가 있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최근 하와이 관광청이 산불 피해 지역 일부를 재개방하기로 하면서 또다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모로코 현지인들은 다르게 생각한다고 NYT는 전했다. 위르가네의 부티크호텔 매니저 아이트 압델카림은 “관광객들이 전 세계에서 모여들어 사진을 찍는다”며 웃음을 지었다. 그는 집이 무너진 후 아내와 딸과 나흘 동안 노숙한 처지다. 그러나 이미 지진 이후 호텔 예약이 50건 취소된 상황에서 가을 성수기까지 놓친다면 그는 더 혹독한 상황으로 내몰리게 된다. 인근 리조트의 설립자 역시 “모로코를 돕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모로코를 방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농업 위주인 모로코에서 관광업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 국내총생산(GDP)의 7.1%를 차지했고 일자리 50만개를 만든 주요 산업이다. 이번 지진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모로코 아틀라스 산맥 인근 마을의 주 생계수단 역시 관광업이다. 하이킹 여행자를 위한 숙소, 고급 리조트 등이 자리했으며 관광업은 지역사회에 가이드, 운전사, 웨이터, 호텔리어 등의 일자리를 창출하며 주민들을 부양했다.
한 여행사 직원은 “모로코로 관광을 오거나 수영장에서 노는 등의 활동은 절대적으로 허용된다. 모로코는 여전히 활기찬 여행지”라며 “다만 주변 상황을 염두에 두고 지역 사회를 존중할 것을 권장한다”고 밝혔다. 한 현지 가이드도 “관광객이 와서 연대를 보여줄 수 있다”고 했다.
실제 현지 언론에 따르면 지진 발생 이튿날인 지난 10일 마라케시 헌혈센터에는 6000명 이상이 줄을 섰다. 가족들과 여행 중인 한 영국인은 “헌혈센터를 보고서는 (헌혈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모로코인들은 무척이나 반겨줬다. 더 많은 도움을 주고 싶다”고 NYT에 말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정부가 관광객이 많이 찾는 마을의 가옥을 옛 스타일로 건축하도록 지정한 법이 지진 피해를 키웠다고도 지적한다. 아름다운 외관을 위한 전통 양식 건축은 진흙 벽돌집이어서 이번 지진에 특히 취약했다. 압델카림은 “이러한 제한을 없애준다면 주민들이 더 튼튼한 집을 지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관광객들이 모로코에서 사진을 찍고 심지어 우리 집을 방문하는 것도 환영한다. 그러나 우리 또한 좋은 삶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모로코 정부는 12일 오후 1시 기준 사망자가 2901명, 부상자는 5530명이라고 발표한 이후로 후속 집계를 발표하지 않았다. 부정적 이미지가 관광업에 영향을 끼칠까 우려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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