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M로드’를 따라가다 만난 장욱진·강서경

2023. 9. 14. 15: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내년까지 장욱진 회고전
리움미술관, 연말까지 강서경 기획전
리움미술관에서 열고 있는 ‘강서경 : 버들 북 꾀꼬리’를 찾은 방탄소년단 RM [RM인스타그램 캡처]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RM 투어’라는 것이 있다. 방탄소년단(BTS) RM의 취향과 관심사를 따라가는 ‘미술관 투어’다. ‘미술애호가’를 넘어 전문가 수준의 해박한 지식과 안목으로 잘 알려진 RM이 갔던 미술관을 방문하는 ‘아트 투어’가 인기를 얻자 세계적인 미술관에서 그에게 “우리 미술관에도 방문해달라”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공개 ‘러브콜’을 보낼 정도다.

지금 국내 미술계에도 RM이 각별하게 돌아본 두 곳이 있다. 평소에도 몇 번이나 애정을 드러낸 장욱진과 새롭게 관심을 보인 중견 작가 강서경이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고 있는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에 나온 장욱진의 ‘자화상’. [연합]
닮고 싶은 ‘욱진 바이브’…RM 소장품도 ‘눈길’

“저도 심플하게 살고 싶습니다.” ( RM이 남긴 과거 장욱진 전시 방명록)

미국 텍사스에 있는 ‘메닐 컬렉션’ 정원. 몇 해 전 이곳을 방문한 RM은 떡갈나무 아래에 앉아 찍은 사진에 ‘ucchin vive’라는 글을 적었다. 장욱진 이름의 영어 표기와 함께 ‘욱진 바이브(느낌)’이라고 써넣으며 그를 향한 경의를 표현한 것이다. 장욱진은 유화에 영어로 이름을 쓰고, 서기로 날짜를 표현했다.

RM이 사랑한 한국 근현대 작가 중 한 명인 장욱진의 회고전 ‘가장 진지한 고백 : 장욱진 회고전’(2024년 2월 12일까지)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열린다.

1920년대 학창시절부터 1990년 작고할 때까지 60여년간 이어온 장욱진의 화업 인생을 망라한 이번 전시엔 최근 일본에서 발굴한 장욱진 최초의 가족도인 ‘가족’(1955)부터 생전 마지막 작품인 ‘까치와 마을’(1990)까지 유화, 먹그림, 매직펜 그림, 삽화 등 270여점을 볼 수 있다.

미국 텍사스에 있는 ‘메닐 컬렉션’ 정원에서의 RM [RM 인스타그램 캡처]

RM이 사진을 통해 ‘장욱진 바이브’라고 표현한 것처럼 나무는 까치, 아이, 산수 등의 모티프와 함께 그의 그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재다. ‘까치’가 장욱진의 분신이자 페르소나였다면, ‘나무’는 그의 세상을 품은 우주였고, ‘해와 달’은 시공을 초월한 영원성의 매개였다. 작품마다 완벽한 대칭과 구도를 보여주며 소박하고 따뜻한 풍경을 담아낸 장욱진의 작품엔 온화한 감정이 일렁인다. 엄혹하고 고통스러운 시대를 살아왔음에도 그의 그림엔 불안과 고통 대신 치유와 행복이 있다.

장욱진은 “나의 꿈속엔 나만의 동산이 있다. 나무가 서 있고, 그 나무 위에 집이 있고, 송아지와 개가 있고, 하늘엔 해와 달이 있다. 새해에는 나는 나의 동산에 살며 마냥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그림 ‘동산’에 대해 설명했다.

까치는 그의 유화 730점에서 60%를 차지할 만큼 많은 지분을 갖는다. 1925년 처음 그린 이후, 말년까지 담아낸 까치는 시대에 따라 달리 그려졌다. 날카로운 필촉으로 화면의 물감 층을 긁어내 새해를 알리는 까치 소리를 상징, ‘청각적 요소’까지 표현(1958년 ‘까치’)했다. 날렵한 모습에서 점차 둔탁한 체형으로 달라지는 까치를 통해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기도 했다.

13일 오전 서울 중구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마련된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에 1955년작 '가족'이 전시되어 있다. [연합[

이번 전시에선 준비 과정 중 발굴한 장욱진의 첫 가족 그림인 ‘가족’을 만날 수 있다. 1964년 일본인에게 판매돼 행방을 알 수 없었던 이 작품은 현지 한 소장가의 옷장에서 발견됐다. 발견 당시 상황을 담기 위해 전시에서도 낡은 벽장 속에 있는 ‘가족도’의 모습으로 전시를 구성했다. 이날 전시장을 찾은 장욱진의 장녀 장경수 양주시립미술관 명예관장은 “200여점을 총망라한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라면서 “특히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인 ‘가족’ 그림이 귀환해 정말 기쁘다”고 했다.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 [연합]

전시의 제목인 ‘가장 진지한 고백’은 “그림처럼 정확한 내가 없다”고 이야기 한 장욱진의 말에서 착안했다. 학창시절 공모전에서 수차례 입상하며 자신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장욱진은 노년기까지도 작업이 왕성했다. 그가 남긴 유화 730점 중 80%는 마지막 15년간 그렸다. 장욱진은 “산다는 것은 소모하는 것으로 내 몸과 마음과 모든 것을 죽는 날까지 그림을 위해 다 써버려야겠다”고 할 만큼 오래도록 붓을 놓지 않았다. 말년으로 갈수록 장욱진의 그림이 달라져가는 과정도 전시를 통해 만날 수 있다. 1973년 이후엔 강한 질감이 사라지고 색층이 얇아진다.

전시를 기획한 배원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나는 심플하다’고 했던 장욱진 작가의 말에서 의미하는 ‘심플’은 본질을 추구하는 조형 의식일 뿐만 아니라, 정직함을 뜻하기도 한다”며 “앞과 뒤가 똑같아 예술과 생활의 차이가 없었고, 청년부터 노년까지 한결같은 소재로 1000점 이상의 성실한 작업 세계를 이어온 작가”라고 소개했다.

장욱진의 20대 시절부터 시작해 생애 마지막 작품까지 이르는 그의 화업은 총 4개의 관으로 꾸며졌다. 특히 전시된 270여점 중 6점은 RM이 소장한 작품이다. 초년기부터 노년기까지의 작품을 담은 첫 섹션과 불교적 세계관을 담아낸 세 번째 섹션에서도 RM의 소장품을 볼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는 “소장가(RM)가 자신의 작품으로만 관심이 쏠리기 보다는 장욱진 작가의 다양한 작품을 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어떤 작품인지는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귀띔했다.

강서경 “보테가 베네타가 연결해 준 인연”

강서경은 최근 해외에서 주목받는 중견 작가다. 올해 말까지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에서 이어지는 강서경의 대규모 개인전에선 그의 초기 대표작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된 최신작에 이르기까지 130여점의 작품 세계를 만날 수 있다. 특히나 강서경의 전시는 리움에서 연 네 번째 한국 작가다. 국제 무대에서 주목받은 젊은 한국 작가를 지원하기 위해 기획됐다.

전시의 제목은 ‘강서경 : 버들 북 꾀꼬리’. 강서경의 신작 영상의 제목이기도 한 ‘버들 북 꾀꼬리’는 전통 가곡 이수대엽의 ‘버들은’에서 따왔다. 곽준영 리리움미술관 전시기획실장은 “버들은 실이 되고, 꾀꼬리는 북이 돼 소리를 풍경의 직조로 읽은 비유을 가져온 것”이라며 “회화에서 시작해 시각, 청각, 촉각, 움직임, 시공간의 차원으로 나아간 작품의 전시 의도를 반영한 제목”이라고 설명했다.

리움미술관에서 열고 있는 ‘강서경 : 버들 북 꾀꼬리’를 찾은 방탄소년단 RM [RM인스타그램 캡처]

지극히 현대적이지만, 그의 작품엔 전통에 대한 깊은 관심이 곳곳에 묻어난다. 조선 시대 악보인 ‘정간보’에서 음의 길이와 높이를 표현하는 ‘우물 정’자 모양의 사각 칸(間)에서 착안해 선보인 초기작 ‘정井’, 전통 한국화의 방식을 이어온 회화 작업 ‘모라(Mora)’, 작은 화문석이 무대가 되는 조선시대 궁중무용 ‘춘앵무’에서 착안한 ‘자리’ 연작이 대표적이다. 옛 그림 속 산의 능선에서 모티브를 얻은 조각 설치 연작 ‘산’과 모빌 형태의 ‘귀’ 연작을 등을 통해서도 강서경이 천착한 작품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최근 리움미술관에서 만난 강 작가는 “한국 문화와 역사는 내겐 편안했던 지식이다. 그간 내가 느끼고 경험했던 그 때의 시간과 이야기가 그림이라는 화면 안에 많이 담겨있었다”며 “그림이라는 것이 그 시대의 이야기와 움직임, 풍경을 공감각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작업이라는 생각으로 실험한 작품이 많다”고 말했다.

리움미술관에서 열고 있는 ‘강서경 : 버들 북 꾀꼬리’를 찾은 방탄소년단 RM [RM인스타그램 캡처]

이번 전시는 작품의 내용은 물론이고, 전시의 구성에서도 작가의 예술관과 작업의 방향성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강서경은 지난 2년간 암 투병을 해왔고, 지금도 항암 치료를 이어가도 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병마와 싸우며 그의 예술관은 더 큰 세계로 향하게 됐다. 강 작가는 “이제는 미술이 저 혼자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라며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다름을 이야기하고 나눌 수 있는, 함께 하는 예술로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과거의 작품들이 전시장이라는 커다란 공원에 조형물처럼 자리하고, 관람객은 산책하듯 그곳을 거닐며 지나온 시간을 현재에서 만나 함께하는 풍경으로 만들었다. 전시를 기획한 곽준영 실장은 “작품 사이 사이를 거닐며 각기 다른 존재들이 관계 맺고, 여기에 함께하는 풍경을 더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가는 전시”라고 귀띔했다.

RM도 일찌감치 이 전시에 다녀왔다. RM과 강 작가의 연결 고리는 보테가 베네타다. 이번 강서경의 전시는 이탈리아 패션하우스 보테가 베네타가 후원하고 있고, RM은 보테가 베네타의 앰버서더로 활동 중이다. RM은 자신의 SNS에 이 전시를 방문한 사진을 올리고 “한국 문화를 지원해준 보테가 베네타에게도 고맙다”는 글을 남겼다.

shee@heraldcorp.com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