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청설모와 골퍼의 공통점

방민준 2023. 9. 14.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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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9월은 청설모가 바빠지는 계절이다. 도토리 밤 잣 가래 등 가을 열매를 부지런히 모아두어야 무사히 겨울을 날 수 있다. 다람쥐도 청설모 못지않게 바삐 움직이지만 겨울잠을 자기 때문에 청설모에 비하면 다소 느긋한 편이다. 겨울 양식을 충분히 모아두지 못한 청설모는 추운 겨울에도 눈 쌓인 숲을 헤매야 한다.



 



다람쥣과의 설치류인 청설모의 본래 이름은 청서(靑鼠)다. 전체적으로는 짙은 회색이고 배는 흰색이지만 얼핏 보기엔 푸른빛으로 보여 붙은 이름이다. 청설모의 털이 붓의 재료로 쓰이면서 청서모(靑鼠毛)가 아예 이름이 되어버렸다. 청설모의 꼬리털로 만든 붓은 부드러우면서 탄력이 있어 섬세한 표현을 하는 데 적합하다고 한다. 청설모로 변음이 된 것은 겨울철 눈 쌓인 숲에서 볼 수 있기에 자연스럽게 눈 설(雪)이 연상됐기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요즘 등산로를 걷다 보면 '찌익 찌익'하는 날카로운 비명을 자주 들을 수 있다. 청설모들의 '이유 있는 항변'이다. 등산객들이 밤이나 도토리를 주우면 주변까지 다가와 팔짝팔짝 뛰며 비명을 지른다. "내 겨울 양식을 주워가면 나는 어쩌란 말이냐?"라고 부르짖는 것처럼 들린다.



 



나도 얼마 전 등산로 부근을 걷다가 떨어진 나무에서 떨어진 잣송이를 주우려다가 나무에서 내려온 청설모의 팔짝팔짝 뛰며 화는 내는 모습에 물러난 적이 있다.



 



청설모는 잡식성이다. 딱딱한 견과류는 물론 산수유 딸기 살구 자두 등 과실류와 버섯 등을 즐기고 먹이가 없을 땐 나무껍질이나 잎을 섭취하기도 한다. 



 



청설모는 긴 겨울을 나기 위해 양식을 숲속 여기저기에 숨겨둔다. 한곳에 모아두면 다른 포식자에게 들켜 빼앗길 것에 대비한 생존전략이다. 활동 반경 500미터 안에 20~40군데에 양식저장소를 만들어둔다. 그런데 동물학자들의 조사에 의하면 청설모가 찾아내는 먹이는 숨겨둔 곳의 4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숨겨놓은 장소를 다 기억해내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동물학자들은 청설모에게 '숲속의 정원사'란 칭호를 선사했다. 청설모가 찾아내지 못한 열매들이 싹을 틔우면서 전체 숲의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데 큰 몫을 하기 때문이다.



 



매일이다시피 연습장을 찾다 보면 원 포인트 레슨 요청을 가끔 받는다. 대개 구력이 10~20년은 된 사람들이다. 이 정도면 기술적으로는 골프의 원리를 이해하고 기본은 거의 익혔다고 봐야 한다. 다만 자연스런 동작으로 체화(體化)하지 못했을 뿐이다.



이런 사람들의 공통점은 들어가지 말아야 할 방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바로 '시건방'이다.



 



스윙의 원리와 정석을 설명하고 문제점을 지적하면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그런 것은 나도 알고 있는데 몸이 안 따라주네요" 말은 젊잖게 하지만 '그런 것 말고 바로 약효가 듣는 비방이 없는가'라는 투다.



 



바로 약발이 듣는 비방이 있다면 전국의 골프연습장이 붐빌 까닭이 있겠는가. 구력이 30~40년이 된 골퍼들이 연습장을 찾는 것은 탐구와 수련 없이는 골프의 진수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골퍼들은 너무나도 청설모와 닮았다. 골프를 잘 하기 위한 수많은 원리와 지침을 진작 깨닫고 몸으로 익혔으면서도 기억해내지 못하는 것이다. 마치 청설모가 귀한 양식을 여기저기 숨겨두고 찾아내지 못하는 것처럼. 많은 골퍼들이 그동안 열심히 깨닫고 익힌 '골프 양식'을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모습이 안타깝다.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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