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동물실험 폐지 움직임 ‘가시화’... AI와 오가노이드는 동물실험 대안 될까

제주=홍아름 기자 2023. 9. 14.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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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아시아실험동물학회 정기학술대회
실험실에서 과학자가 실험용 쥐를 살펴보고 있다. /Adobe Stock
제9회 아시아실험동물학회(AFLAS) 정기학술대회에서 티에리 데셀 DCL 솔루션 대표가 발표하고 있다./아시아실험동물학회

미 식품의약국(FDA)은 최근 동물실험 의무화 조항을 80여 년 만에 삭제하고 비동물 실험을 거친 약물이나 생물학적 물질의 인체 대상 임상시험을 증진하겠다고 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도 동물 실험을 중단하라는 시민단체의 압박에 동물 실험을 점진적으로 폐지하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이처럼 미국과 유럽에서 신약 개발이나 화장품 개발 과정에서 동물실험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기로 추진하는 가운데 국내외 실험동물 전문가들이 동물실험 대체에 대한 의견을 공유하는 자리가 국내에서 열렸다.

티에리 데셀 동물실험 컨설팅 회사 ‘DCL 솔루션’ 대표는 14일 제주 국제컨벤션센터(ICC)에서 열린 제9회 아시아실험동물학회(AFLAS)에서 “생물학 분야의 과학자들은 동물을 모델로 사용하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며 “과학자들이 이제는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데셀 대표는 이날 동물 실험을 대체할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이를 위한 ‘3R 원칙’을 소개했다. 3R 원칙은 인도적인 동물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대체(Replacement), 감소(Reduction), 개선(Refinement)을 우선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동물 실험을 대체하고, 사용하는 동물의 수를 최소화하며 동물이 경험할 고통 등의 피해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데셀 대표는 “동물 복지를 개선하고 동물 실험을 줄여야 한다”며 “과학자들이 동물 실험을 대체할 방법을 꾸준히 보여줘야 한다”고 밝혔다. 대체 방안이 자리 잡기 시작하면 동물 실험의 감소와 개선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이를 위해 연구기관이 대체 연구를 주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미 EU의 제약 업계에서는 실험에 쓰이는 동물 수를 꾸준히 줄여나가고 있다. 데셀 대표는 “앞으로도 실험 총량을 줄이기 위한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며 “연구 기관의 모든 구성원이 적극적으로 동물 모델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나가며 동물 복지 개선을 위해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종권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실험동물자원과장은 국내의 동물 실험을 줄이기 위한 ‘한국실험동물자원은행(LAREB)’을 소개했다./아시아실험동물학회

◇ 국내 과학계도 동물대체시험법 연구 활발

국내에서도 동물실험이 금지될 것을 대비해 대체 시험 방법 연구가 활발하다.

이종권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실험동물자원과장은 국내의 동물 실험을 줄이기 위한 ‘한국실험동물자원은행(LAREB)’을 소개했다. LAREB는 식품의약품의 안전성과 유효성 평가, 생물학적 연구 등의 실험에 사용되는 실험동물 유래 자원을 수집하고, 이를 새로운 연구 목적으로 활용하도록 공유하는 기관이다.

LAREB는 국내에서 실험동물 사용을 줄이고 3R 지원을 위해 유래 자원을 공급하고 있다. 냉동 장기, 세포, 혈청, 조직과 슬라이드 디지털 이미지 자원을 관리하며 지금까지 약 3000여 종의 동물 유래 자원을 배포했다. 이 과장은 “LAREB의 지원으로 4개의 논문을 발표했고, 7개의 특허를 출원하고, 1개의 기술 이전 성과를 냈다”고 밝혔다.

이날 세션에서는 동물 실험을 대체할 다양한 방법들이 소개됐다. 김선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는 저분자 약물 후보물질의 독성과 부작용을 예측하기 위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소개했다. 김 교수는 “독성을 조사하기 위한 동물 모델은 대체되어야 한다”며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화합물과 유전자 수준에서 독성을 예측했다”고 설명했다.

먼저 약물 자체의 독성과 부작용을 예측하기 위한 ‘그래프 마이닝 방법’과 딥러닝 모델을 소개했다. 그래프 마이닝 방법은 그래프를 이용하여 유의미한 결과를 추출하는 방식을 말한다. 김 교수는 “약물 구조에서 독성을 보이는 부분을 식별해 화학 구조로 독성을 예측할 수 있다”며 “화학 구조와 부작용을 딥러닝 모델에 학습시켜 약물의 부작용을 예측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약물이 우리 몸에 들어왔을 때 유전자가 약물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예측하는 도구도 개발했다. 화학구조 자체가 아닌 신체와의 상호작용을 파악해 독성과 부작용을 보다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김 교수는 “2만 개 이상의 유전자가 약물에 반응한다”며 “독성 메커니즘을 시각적으로 나타내는 이 도구를 이용해 약물의 독성과 부작용을 파악한다면 약물 개발을 위한 동물 실험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말했다.

김선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는 저분자 약물 후보물질의 독성과 부작용을 예측하기 위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소개했다./아시아실험동물학회

전누리 서울대 기계공학부 교수는 세포를 3차원으로 배양해 만든 구체 ‘스페로이드(spheroid)와 실제 장기의 구조와 기능을 재현한 ‘오가노이드(organoid)’를 소개했다. 전 교수는 “3차원 세포가 동물 실험을 대체할 수 있으나 여전히 적용 범위나 제조 방식에 한계가 있다”며 “스페로이드와 오가노이드에 혈관 형성을 유도해 신체와 유사한 조직을 만드는 플랫폼을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전 교수 연구진은 일반적으로 세포를 키울 수 있는 플레이트에 3개의 채널로 혈관을 구현한 플레이트를 개발했다. 원하는 세포와 패턴으로 오가노이드와 스페로이드를 배양해 3차원 종양의 미세 환경을 재현할 수 있었다. 전 교수는 “최근 유도신경줄기세포를 배양해 1차 뉴런과 신경구(neurosphere)를 형성했다”며 “미세 생리학적 시스템을 구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예상했다.

아시아실험동물학회는 2003년부터 아시아 11개국이 함께 진행하는 학회로 2년마다 개최된다. 15일까지 열리는 이번 정기학술대회에서는 실험동물 과학의 과학적, 기술적, 교육적 문제를 검토하고 동물 복지에 기여하기 위한 방안이 논의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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