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 & Cinema] 9.11 희생자 보상금 합의, 중재의 대가는 어떻게 유족을 설득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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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러 콜앤젤로 감독의 영화 ‘워스’(Worth·2020년)의 첫 장면입니다. 변호사 케네스 파인버그(배우 마이클 키턴)는 로스쿨 학생들에게 “생명의 가치는 무엇인가”라고 묻습니다. 그는 “생명의 가치는 숫자이며 그걸 도출하는 것이 우리의 업무”라고 답합니다. 수업이 있던 날은 2001년 9월 11일입니다.
9·11 테러 발생 후 극도의 혼란에 휩싸인 미국에서는 경제가 수렁에 빠지지 않게 하려는 다양한 조치가 나옵니다. 그중 하나로 미 의회는 ‘항공안전 및 시스템 안정화법’을 통과시켜 ‘9·11 희생자 보상 기금’을 만듭니다. 미국 정부가 예산으로 테러 희생자들에게 직접 보상한다는 겁니다.
이런 방식으로 보상하려는 핵심 목적은 기업 파산과 경제 붕괴를 막기 위한 것입니다. 희생자 가족은 보상금을 수령하는 조건으로 항공사, 공항, 보안회사, 세계무역센터 등을 대상으로 소송을 낼 권리를 포기해야 합니다. 기금은 24개월 이내에 80% 이상의 희생자 가족이 동의해야만 작동합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기금의 운영자로 과거 고엽제 보상과 같은 까다로운 소송을 합의로 마무리했던 중재의 대가 파인버그(78) 변호사를 임명합니다.
보상금 산출은 희생자의 미래 예상 소득에서 출발했습니다. 파인버그는 격차가 너무 커지지 않도록 했습니다. 모든 희생자에게 25만달러의 최소 금액을 책정하고, 부양 가족 1명당 10만달러씩을 추가했습니다. 미래 소득 계산은 초고소득자라고 하더라도 연 23만달러를 상한선으로 정했습니다. 소송은 결과가 불확실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희생자 가족들이 동의할 것이라고 파인버그는 낙관했습니다.
그러나 설득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숨진 이들의 소득 수준은 천차만별이었습니다. 초고소득자 편에서는 파인버그가 설정한 미래 소득 상한선이 자의적이라며 반발했습니다. 반면, 타인의 생명을 구하다 숨진 이들 쪽에서는 금융업 종사자에 비해 너무 작은 액수라는 불만이 있었습니다.
마감 직전까지 동의율이 미미하자 파인버그는 희생자 가족을 한 명 한 명 직접 만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문제가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과 감정적으로 교류하지 않아 불신이 쌓인 것입니다. 파인버그는 총 1600건의 가족 미팅 중 900건을 직접 주재하면서 가족들의 말을 경청하고 설득해 나갑니다. 결국 전체 희생자 가족의 97%가 동의해 총 70억달러가 지급됩니다.
인간의 생명은 소중합니다. 그래도 숫자로 도출한 가치를 부여할 수밖에 없는 순간을 마주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전쟁과 테러 이외에도 의료과실, 교통사고, 건설사고 등에서 생명을 잃은 이들에게 얼마를 보상할지 정해야 합니다. 인간의 목숨에 대해서는 어떠한 가치 산정도 완벽할 수 없습니다. 다만, 생명의 가치를 정할 때 공감할 줄 알고 겸허해야 한다는 것만큼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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