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문제 뿌리에 ‘평준화’ 있다[시평]

2023. 9. 14.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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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웅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교사의 잇단 죽음과 폭행 피해
교권 강화 입법은 출발점일 뿐
학교의 사회적 가치 하락 심각
국가 중심주의 교육 돌아볼 때
지적 수준 반영한 교육 위해서
학교의 자유와 자율 존중돼야

초·중등교사 자살과 폭행 피해 뉴스를 접하면서 교육계 동료로서 가슴 아프다. 정부가 아동학대의 면책 규정, 교권 강화 입법을 검토하는 것도 수긍할 만하다. 그러나 이는 문제 해결의 출발점일 수 있지만, 경유지도 종착지도 아니다. 작금의 사태는 학교의 사회적 가치 하락과 밀접하기 때문이다.

주위를 보면 자기 자식을 엄히 훈육해 달라고 학원 강사에게 부탁하지만, 교사가 아동을 야단치면 ‘내 아이 학대하지 말라’고 당장 문제를 제기하는 부모가 적지 않다. 학원에서는 졸려도 억지로 버티지만, 교실에서는 엎드려 자거나 휴대전화를 보는 학생도 적지 않다. 비싼 학원 수강료는 기꺼이 내지만, 대학교육마저 등록금 동결을 당연시한다. 부모 갑질 때문에 교사가 자살했다는 소식이 이어지지만, 학원 강사가 자살했다는 뉴스는 아직 못 들었다. ‘지식 교육’에서 학교가 학원보다 후순위라는 사회적 인식이 잘 드러나는 사례다.

학교의 사회적 가치 하락은 국가 중심주의에 따른 평준화에 그 뿌리가 있다.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평준화를 일부 사회지도층이 소리 높여 주장했지만, 그 정책은 자녀의 경쟁력을 높이려는 교육 수요자들을 만족시킬 수 없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교육을 통한 지식 획득’을 평가의 잣대로 삼았기 때문이다. 특화된 ‘점수 제조기’ 지식 교육을 제공하는 학원을 부모들이 선호하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 결과 공교육 현장은 대학 입학이나 취업의 형식 요건을 채우는 수단으로 전락해 버렸다. 교육 현장에서 발생했던 일부 교원들의 촌지·폭행·성추행 등의 사건도 학교에 대한 불신을 가중시켰다. 일부 양식 없는 부모가 갑질을 마치 정당한 자기 권리 행사라고 착각하는 것도 이런 학교의 사회적 가치 하락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학교의 자생력을 높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 해결 수단이다. 학생을 위한 교육, 학교 문제의 자율적 해결, 즉 ‘자유와 자율’의 원칙이 작동하는 학교, 학교를 교육 수요자가 선호하는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게 우선이다. 가령 영국은 학업·시험·친구 관계 등으로 정신적 스트레스를 경험하는 아동·청소년에게 그 스트레스를 관리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을 학교의 주요 기능으로 삼는다. 행동 문제나 정서적·정신적 문제가 있는 아동을 특별히 지원하도록 학교마다 베테랑 교원을 지정하게 한다. 비행(非行)의 정도가 심하거나 정신질환으로까지 비화할 위험에 처한 학생들을 지자체의 사회복지기관과 연계하는 것도 학교의 역할이다.

공립학교라 하더라도 학생의 지적 수준과 개성, 선호도를 반영해 교육하는 게 학교의 주요 역할이라고 본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을 국가가 주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학교·부모·학생의 연대를 더 중요시한다. 이것이 학교 자생력을 높이는 ‘자유와 자율’ 원칙에 입각한 교육정책의 예다.

교원은 지식 교육만 하는 학원 강사가 아니다. 학생의 신체적·지적·정서적인 발달을 지원하는 교육자다. 학생의 지적 수준과 개성, 선호도를 반영한 개인 맞춤형 교육을 하는 게 학교의 본연의 역할이다. 학교는 교사·부모·학생이 교육과정을 통해 자신과 타인의 권리 경계를 존중하며, 상호 협력하는 것을 배워가는 공간이어야 한다. 이런 본연의 교육 기능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때 비로소 학교의 경쟁력이 높아진다. 그래야 그 구성원이 사회적으로 존중받게 된다.

국가가 모든 것을 통제하기보다 정책 방향 설정과 모니터링이 자기 역할이라고 인식하는 게 필요하다. 개별 학교가 각자의 특성에 따라 개인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고, 학교와 부모가 연대와 협력을 통해 학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국가의 주된 역할로 삼아야 한다는 말이다.

교권을 강화한들 학교에 대한 신뢰가 높아지지 않으면 실효성이 있을까? 급격한 사회 변화의 결과 학생과 학부모의 개성도 갈수록 다양해진다. 학교에서 발생하는 문제도 더 복잡해진다. 현대사회와 그 가족이 직면하는 이런 문제까지 고려해 학교의 역할을 설정해야만 변화한 시대 환경이 요구하는 학교가 된다. 그래야 학교가 우리 모두에게 소중한 공간이 되고, 교사들의 가르침이 학생들의 삶에 울림 있게 다가갈 것이다.

제철웅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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