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어파이어’ 내놓은 독일 거장 크리스티안 페촐트 [인터뷰 줌-in]
예술영화와 독립영화를 즐기는 영화 애호가들 사이에서 최근 소환되는 이름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독일 출신 거장 크리스티안 페촐트의 이름을 빼놓을 수 없다.
페촐트 감독은 주로 멜로드라마를 통해 남녀 사이 감정선을 섬세하게 포착하면서도 홀로코스트, 인종 간 충돌 등 독일의 근현대사에 얽힌 소재들을 함께 녹여내면서 독특한 영화세계를 구축해왔다. 그는 2000년 첫 장편 영화 ‘내가 속한 나라’를 연출한 이래로 자국 독일뿐 아니라 유럽을 거쳐 유명세를 얻어 갔다. 2010년대 이후 ‘피닉스’, ‘트랜짓’, ‘운디네’ 등으로 국내에 이름을 알렸다.
지난 13일 개봉한 ‘어파이어’는 한 예술가의 내면이 주변 사람들, 또 세상과 맞닥뜨릴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관찰하는 영화로, 청춘들이 휴가지에 놀러갔다가 산불을 만나면서 점점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빠져드는 모습을 포착한다. 올해 2월 제73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평단의 호평과 함께 은곰상(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지난 1일부터 7일까지 한국에 처음 머문 그와 6일 서울 종로구의 한 호텔에서 만나 신작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
그의 영화에서 중요한 점은 함께할 수 없는 요소들이 공존한다는 것. 과거와 현재가 겹쳐지는 순간을 만들거나, 대상을 보는 주체와 눈길을 받는 객체 사이 엇갈리는 시선을 함께 담아내는 데에서 그런 점이 엿보인다.
‘어파이어’는 번져가는 감정을 불의 이미지로 은유하고 있지만, 사실 감독은 영화에서 시각 요소뿐 아니라 사운드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특히 ‘어파이어’는 소리를 통해 감독의 세계를 표현한다. 영화의 후반부에 이르면 별장에서 소설을 집필하던 레온이 내내 써내려간 원고를 뒤엎고 새 소설을 완성한다. 이때 소설 속 내용이 글을 평가하는 출판사 대표의 입을 통해 내레이션으로 관객에게 스며든다. 이 줄거리가 관객이 앞서 봐왔던 별장에서 벌어졌던 일과 겹쳐져 있기에, 영화 전체가 레온의 소설 속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하는 모호한 감상을 만들어낸다.
이에 페촐트 감독은 “목소리로 서술되는 사건이 중요한 이유는 관객들이 지금 보고 듣는 순간이 현재이면서 동시에 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지금 이 순간 존재하면서도 동시에 기억 속 경험으로 전환도 가능한 성질이 특히 흥미로웠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여름날의 감각은 마치 지나간 과거를 회상하게 만드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우리의 현실은 이미 가을에 접어들었기에, 그저 할 수 있는 건 여름을 추억하는 과정에서 피어나는 멜랑콜리한 분위기를 음미하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소리뿐 아니라 타오르는 숲 위로 일렁이는 붉은 하늘을 담아내는 장면들도 강렬하다. 이처럼 ‘어파이어’ 속 산불은 인물들을 고립시키거나 위험을 주는 소재로 사용되지만, 그 자체로 영화를 지배하는 이미지가 되기도 한다. 그는 “화염이 지나간 자리의 고요함, 자연이 죽어있는 모습이 내겐 강렬하게 다가온다. 한순간의 화재가 이들의 아름다운 순간을 앗아가 잿더미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는 점에 사로잡혔다”고 전했다.
페촐트 감독의 영화를 살펴보면 대체로 독일의 역사가 녹아 있는 데다 신화 등의 인문학적인 지식이 뒷받침될 때 더욱 깊이 있는 관람이 가능할 때가 많다. 하지만 감독은 이를 두고 감상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사실 영화에 드러나는 요소들에 관해 깊이 이해하지 않으려고 하면 할수록 오히려 영화가 더 멋지게 다가올 때가 많다. 그것이 바로 영화의 역설적인 점”이라며 “영화는 추측의 공간이자 꿈의 공장이다. 영화는 배워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송상호 기자 ssho@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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