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 지탱하는 최후의 보루 공공서비스 붕괴 막아야”

한겨레 2023. 9. 14.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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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성의 역행]공공성의 역행
민영화 저지 공공성 강화 시민사회 공동행동 구성원들이 8월17일 오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마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공동행동은 고속철도 분할을 더욱 고착화하는 에스알티(SRT) 확대 투입 결정과 공공교통요금 대폭 인상 등 윤석열 정부의 민영화 강행 및 공공성 후퇴 정책에 맞서는 88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됐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사회 체계나 생태계의 위험 상황이 복원력을 넘는 수준까지 커지면 쉽게 회복하기 어려운 상태가 된다. 갈수록 앞당겨지는, 산업화 이전보다 지구 평균 기온이 1.5도를 넘는 순간이 그러하다. 기후 위기에 있어 1.5도는 생태계 복원력의 임계점이자 더 큰 위기로의 전환점이다.

임계점을 향해 폭주하는 것이 지구의 온도만은 아니다. 윤석열 정부의 민영화 정책도 그러하다. 정부는 민영화를 검토한 적도 추진 계획도 없다고 주장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정부는 출범 이후 지금까지 철도, 의료, 연금, 에너지, 돌봄, 방송에 이르기까지 공공서비스 전반을 시장화-영리화하고 공급 체계를 민영화하는 정책을 일관되게 실행하고 있다. 국민 여론을 의식해서 민영화를 혁신, 효율로 포장하고 단계적이고 순차적으로 정책을 추진하다 보니 잘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철도는 쪼개기를 통한 민영화가 추진되고 있다. 2013년 정부는 수서역으로 오고 가는 고속철도의 운영을 철도공사 대신 ㈜SR이라는 회사를 신설해 맡겼다. 국민 편익을 높이겠다는 명분이었으나 국민 불편과 피해만 남았다. 교차보조가 줄어 일반노선이 축소되었고 중복투자와 관리 비용이 연간 400억이 넘게 발생했다.

하지만 정부는 고속철도 재통합이라는 대안을 거부하고 분할을 강화하는 길을 선택했다. 투자자들의 자본금 회수로 부채가 1600%를 넘어 철도면허권을 상실할 위기에 처한 SR에 3590억원의 국유재산을 긴급 투자했다. 9월1일부터 수서역과 창원, 진주, 순천, 여수, 포항을 오가는 SR의 고속열차 노선을 확대했다. SR은 철도공사에 위탁해온 고객센터, 차량정비 업무를 민간으로 외주화할 계획이다. 철도를 열차 운영, 역 운영, 차량 정비, 시설 유지보수 등으로 쪼개서 돈이 될 만한 영역은 민간에 넘기는 ‘쪼개기 민영화’가 SR 신규 노선 투입 확대 속에 감춰져 있는 것이다.

의료 민영화도 위험 수위다. 한국의 의료체계는 민간 중심의 시장화된 의료 공급 구조라는 근본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의료체계가 최소한의 공공성을 유지하는 것은 영리병원 금지와 국민건강보험의 당연지정제라는 규제 장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이 두 가지 규제를 위협하는 치명적인 정책을 추진 중이다.

하나는 비대면 진료를 명분으로 추진되고 있는 의료기관과 환자를 연결하는 영리 의료 플랫폼의 제도화다. 이는 대기업, 민간보험사, 거대제약사, 그리고 사모펀드 같은 온갖 투기꾼들의 의료시장 진출을 열어 준다. 다른 하나는 공공기관과 의료기관이 개인의 의료정보를 민간보험사에 직접 제공할 수 있도록 하고 더욱 확대하는 조치들이다. 이는 민간보험사와 의료기관을 직접 연계하고 국민의 민감한 의료정보를 돈벌이 목적으로 악용할 수 있도록 하며, 공보험과 사보험이 경쟁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든다. 영리 기업들이 의료 공급을 장악하고 민간보험이 공보험을 대체하는 미국식 민영화의 길이 활짝 열리는 것이다.

연금 개혁은 공적연금 개악, 사적연금 활성화라는 정부의 각본대로 진행되고 있다. 9월1일 발표된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 보고서는 국민의 안정적 노후 소득 보장이라는 목표는 실종됐고,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을 부추기고 세대 갈등을 조장하는 내용이 편향적으로 담겼다.

전력 산업은 발전 영역은 이미 40%를 민영화했고, 송·배전망에 민간 투자 허용을 추진하고 기업이 한국전력공사의 전력거래소를 거치지 않고 민간 발전소와 직접 계약해 에너지를 구매할 수 있는 전력구매계약(PPA) 확대까지 검토되고 있다. 천연가스를 직접 수입하는 민간 기업들이 국내에서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에너지 산업이 지금보다 더 민영화된다면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온다. 요금이 인상되고 수급은 불안정해지며, 에너지 전환을 제대로 해낼 수 없다.

공공교통, 보건의료, 공적연금, 에너지, 돌봄 등 공공서비스는 우리 국민의 삶을 지탱하는 최후의 보루이다. 우리 사회의 공공성이 붕괴하기 전에 막아야 한다. 공공운수노조가 2023년 하반기 민영화 저지 공공성 강화 공동파업을 결정한 이유다.

※‘공공성의 역행’ 기획은 한겨레가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의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공성식 공공운수노조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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