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F 300억 거래하면 300만원 쏘는 금투업계… 질적 성장은 물음표
거래 금액 기준이라 샀다 팔았다 반복하면 채울 수 있어
ETF 점유율 및 MTS 점유율 등 순위 왜곡돼
자산운용사도 이벤트 전쟁 참전…단기적 효과 그칠 가능성
최근 한 재테크 카페엔 퇴사하고 KB증권 이벤트로 먹고살려고 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KB증권은 지난해부터 월 수억원 규모로 상장지수펀드(ETF) 거래를 하면 비교적 고액의 상금을 지급하는 이벤트를 실시 중이다. 하루 300억원을 거래하면 300만원, 5억원을 거래하면 7만원을 준다. 이 글을 올린 작성자는 “온 가족 계좌에 100만원만 넣어두고 매일 ‘사팔(샀다 팔았다 반복하는 행위)’을 하면 지금 회사에서 받는 월급보다 더 많은 수익이 나온다”면서 “유일한 걱정은 KB증권이 이 이벤트를 언젠가는 끝낼 수 있다는 것이다. 저 정말 사표 내도 될까요?”라고 적었다.
최근 ETF 거래량이 폭증하는 이유와 관련해 KB증권 이벤트를 지목하는 증권업계 관계자들이 있다. 해당 이벤트는 2020년 1월 처음 시작했는데, 그 직전 연도 상반기와 올해 같은 시점의 KB증권 광고선전비는 69억원에서 128억원으로 늘었다.
한 관계자는 “KB증권의 모바일 거래 점유율이 대폭 상승했고, 일부 ETF는 거래량이 아주 많은 걸로 나오는데 모두 KB증권 이벤트 때문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벤트 하단에 ‘동일 종목 과대 거래 등 투자 목적 이외의 거래를 자제해달라’고 적어 놨는데 투자 목적으로 하루 300억원을 거래하는 개인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라며 “이제는 ETF 전체 수치 왜곡의 현상마저 빚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1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12일 기준으로 코덱스(KODEX) CD금리액티브(합성) ETF는 KB증권을 통해 매수는 113만7104주(정규장 기준), 매도는 113만6540주 이뤄졌다. 그다음이 키움증권(58만여주), 이베스트투자증권(46만여주) 순이다. 한 시장 관계자는 “삼성자산운용은 CD금리 액티브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보도자료도 냈지만, 실상은 이벤트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CD금리 액티브 외에도 변동성이 낮은 코덱스 단기채권 ETF도 같은 날 KB증권을 통해 36만여주, 코덱스 단기채권플러스도 40만여주 거래됐다.
CD금리액티브와 코덱스단기채권 등이 인기 있는 이유는 가격 때문이다. 코덱스 CD금리 액티브는 12일 기준 주가가 101만780원이라 한번만 매수 후 매도를 해도 거래대금은 202만원 이상이 잡히고, 손실은 호가 단위인 5원뿐이다. 만약 5억원을 거래한다고 했을 때 248회만 매매하면 1240원의 손해만 보면 7만원을 벌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상금은 제세공과금 22%를 제외하고 받을 수 있다. 기준을 충족해 상금 300만원을 받는다면 실제 손에 쥐는 금액은 234만원이다. 상금으로 받는 금액을 포함한 기타 소득이 연간 300만원을 초과하면 종합소득 신고 대상에 해당된다.
거래량 폭증뿐만이 아니다. 최근 수치상으로는 ETF를 매매하는 투자자 자체가 대폭 늘어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역시 거래 이벤트 때문이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ETF 시장 점유율이 97%에 달하는 상위 7개 자산운용사(삼성·미래에셋·KB·한국투자신탁·한화·키움투자·신한자산운용)의 영업보고서에 따르면, 7개사가 집행한 이벤트 비용 등은 지난해 상반기 114억원에서 올해 상반기 120억원으로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최근 자산운용업계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신한자산운용도 사실은 이벤트 효과가 적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신한자산운용의 이벤트는 짠테크(짜다와 재테크의 합성어)족 사이에서 화제다. 1만원 상당의 신한자산운용의 월배당 상장지수펀드(ETF)를 1주만 사도 4500원짜리 스타벅스 커피 기프티콘을 받을 수 있는 이벤트다. 들인 돈에 비해 얻는 수익이 커 인기를 끌고 있다.
ETF 투자를 인증하면 리워드를 주는 곳은 신한자산운용뿐만이 아니다. 대형 운용사는 거의 모두 관련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올해 6월 미국 배당 ETF 3종을 상장하면서 10주 이상 산 고객 200명에게 매월 커피 기프티콘을 증정했다. 올해 6월 ETF의 순자산총액(AUM)이 100조원을 돌파하면서 자산운용사 간 ‘고객 끌어오기’ 경쟁이 심해지면서 이벤트도 점차 과열되고 있다.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들이 대규모 이벤트를 진행하는데 부정적인 시선도 있다. 리워드를 주는 이벤트로는 체리피커(리워드만 취하는 투자자)만 늘어날 뿐 ETF의 장기적인 성장을 도모할 수 없다는 뜻에서다. 자산운용사 외에 증권사 역시 자사에서 ETF를 거래하는 고객을 늘리는 시도를 진행 중이다.
이벤트는 결국 이벤트일 뿐 고객을 오래 잡아두는 데는 힘이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한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ETF 상장 초기 단계에 이벤트로 고객들을 끌어모을 순 있지만 그 고객들이 지속적으로 ETF를 가져갈 가능성은 작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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