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급한 푸틴 ‘지각 전략’ 버리고 김정은 30분 기다려 [핫이슈]

김인수 기자(ecokis@mk.co.kr) 2023. 9. 14.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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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에게 모욕감 안겨
협상 우위 점하는
스트롱맨 전략 버리고
김정은 비위 맞추기
그만큼 다급하다는 증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 둘째)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앞줄 왼쪽 둘째) 일행이 13일(현지시간)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만나 현지 관계자에게 설명을 듣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급하긴 급했나 보다. 정상회담에서 상대국 정상을 몇 시간씩 기다리게 하는 ’지각 전략‘을 즐겨 구사했던 그가 13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에서는 30분 일찍 나와 김 위원장을 기다렸다. 김 위원장의 비위를 맞추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처해 있다는 뜻일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2014년 당시 독일 총리이던 앙겔라 메르켈과 정상회담에서는 무려 4시간 15분을 지각했다. 2016년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는 3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2014년 모디 인도 총리는 1시간을,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 역시 45분을 기다렸다. 심지어 프란치스코 교황도 그를 50분이나 기다려야 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2019년에 1시간 50여 분을 기다린 바 있다.

푸틴 대통령이 지각을 고집하는 이유는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나는 당신의 기분은 신경 쓰지 않아. 기분이 나빠서 나와 협상이 싫으면 하지 않아도 돼. 그러나 나와 협상하려면 당신이 양보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이 지각을 협상 전략으로 쓸 수 있는 원동력은 그의 독재 권력에서 나온다. 권위적인 스트롱맨 독재자들은 민주국가의 지도자들에 비해, 협상 실패로 발생할 손실을 무시하는 게 쉽기 때문이다. 협상 실패로 국가 이익에 손해가 발생한다고 한들, 그 손해는 국민이 진다. 스트롱맨 본인은 계속 권력을 유지할 수 있기에 그가 볼 손해는 사실상 없는 셈이다. 과거 푸틴 대통령이 그런 경우였다. 그는 러시아에서 절대 권력자였다. 러시아가 협상에서 손해를 본다고 한들, 러시아 안에서 그의 권력이 훼손당할 가능성은 없었다.

그러니 그는 마음 놓고 상대국 정상을 압박할 수 있었다. 상대국 정상의 기분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됐다. 유럽연합의 리더 격인 독일 총리를 4시간 이상 기다리게 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자신이 협상에서 우위에 있음을 상대에게 각인시켰던 것이다. 다시 말해 ‘ 협상하고 싶다면 내 말을 들어야 할 거야”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그랬던 그가 13일 김정은 위원장과 회담에서는 무려 30분을 먼저 나와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이나 푸틴 대통령이 이번 회담에 절박했다는 뜻이 된다. 김정은 위원장의 비위를 맞추어야 할 정도로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을 치르는 데 북한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부족한 포탄을 북한으로부터 반드시 공급받아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는 뜻이다.

회담 장소를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로 정한 것 역시 김 위원장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우주기지는 로켓에 위성을 실어 발사하는 곳. 그 로켓은 언제든지 대륙간탄도 미사일(ICBM)이 될 수 있다. 정찰위성과 ICBM은 김 위원장이 가장 원하는 기술이다. 이런 기술이 집약된 현장을 김 위원장에게 보여준 것은 ‘포탄을 다오. 그러면 위성 기술을 줄 수 있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상대에게 내줄 카드를 제시하기는커녕 몇시간씩 기다리는 모욕을 안겼던 과거 푸틴의 태도와는 아주 달라진 것이다.

문제는 푸틴 대통령의 이런 태도 변화가 한국 안보에는 큰 위협이라는 점이다. 북한이 러시아의 기술을 도입해 고해상도 정찰위성을 한반도 상공에 쏘아 올릴 수 있다면,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움직임을 세세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만에 하나라도 핵추진 잠수함 기술이라도 이양할 경우, 한국 안보에는 상상할 수 없는 위협이 된다. 한국이 앉아서 당할 수는 없는 일이다. 러시아에 암묵적으로라도 경고해야 한다. 북한이 러시아에 제공하는 낡은 포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최신식 포탄을 우크라이나에 공급할 수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김인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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